현재 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자와 빈자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경제적 간극은, 국가가 그들의 재산을 모두에게 나누도록 종용하고 있다.
돈뿐만이 아니다. 경제적인 요인을 제하고도,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나 지능, 재능, 체력 등을 각자 다르게 타고난다. 괜히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유별나게 지능이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중에 유명세를 얻거나 돈을 매우 많이 번다.
누군가는 이 현상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게 노력했는데, 저들은 저렇게 쉬워도 되는 것인가?’
물론 그들을 일반화하며, 능력이 있기에 노력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도 우리처럼 열심히 노력할 수 있다. 단지 우리보다 출발점이 앞서 있고, 도착점 또한 더욱 가까이 있다는 조건이 있을 뿐.
‘나는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도 아직도 가난해. 그런데 저 사람은 단지 부잣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떵떵거리면서 사네?’
우리 사회는 명백한 상속자본주의이다.
당신은 이 현상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불평등하다.
그렇다면 ‘평등’이란 정의로운가?
선뜻 생각하면 평등은 우리 사회에서 정의롭고 마땅히 해야 할 행위처럼 느껴진다. 특히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평등은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이익에도 부합한다.
유복한 회장님의 돈을 조금 거둬서 힘들게 페지를 주우시는 할머니들께 나눠드리는 행위는 얼마나 합리적인가. 경제학 이론에서 쓰이는 소위 ‘한계수용의 법칙’도 있지 않은가. 그 법칙에 따르면, 어차피 회장님은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돈을 사용하는 편이 사회적으로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선천적으로 지능이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명예나 재산 등은 온전히 그들의 자격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 특혜를 다른 사회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이 주장에는 한 숨겨진 전제가 존재한다.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들에는 부당함이 수반하는가?’
모든 사람들은 각자 다르게 태어나고 필연적으로 모두 조금씩의 차이를 가진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개인의 외모나 지능, 재능 등이 있고, 집안환경이나 사회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전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크게 영향을 준다. 재능이 있는데도 집안이 가난해서 날개를 펴지 못하는 사례도 많고, 반대로 유복한 집안의 맏아들이 재능이 없어서 낙담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선천적인 요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를 완벽하게 지배한다는 것이다. 사실 노력도 재능의 일부이다. 외부 환경으로 인해 바뀌는 것을 후천적이라고 하나, 사실 그런 외부환경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선천적인 요인이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더 큰 의미에서 선천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정체성은 전부 태어날 때의 선천적인 요인에서 대부분이 결정되고, 이후에 나머지 정체성들이 외부환경으로 인해 결정되는 방식으로 파생된다.
자연에서 선천적인 요인의 차이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런 차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선천적인 요인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아무런 합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생이 있다면 모를까. 기억도 안 나는 전생은 있어서 뭐하겠는가. 아무튼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이 아무 이유 없이 다르면 누군가는 당연히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타고나는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평등이 마냥 좋기만 한거라면,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로 합의했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경제적인 평등. 국가가 모든 시민들의 사유재산을 금지하거나, 재산에 100% 세금을 붙여서 다시 완전히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경제체제로 생각하자면 현대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와 비슷하다. 사회 구성원의 전체 페이가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평등은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불공정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누군가는 돈을 벌려고 노력을 열심히 하는 반면 누군가는 게으름을 피워도 같은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평등과 공정이라는 개념이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모나 재능, 지능의 경우에는 평등을 이루는 것이 비교적 어렵다.
여느 SF 영화처럼 인류의 과학기술이 미래에 극도로 발전하면 유전자를 원하는대로 조작하고 배치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니까, 한 번 그렇게 가정해보자. 여느 영화에 나오는 양산형 클론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은 외모, 지능, 그리고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차이는 오로지 그들의 외부적인 환경에서 파생된 것 뿐이다. 게다가 그 외부환경 또한 거의 비슷할 것이다. 그 전세대도 다 같은 인간이었다고 가정하면.
이러한 사회의 모습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이러한 미래의 유토피아에 거부감이 든다. 완벽한 평등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완벽한 평등은 전혀 공정과 개인의 권리를 고려하지 않는다. 단순히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드는 개념일 뿐이다.
평등과 공정이라는 개념의 충돌은 그 자체로 사회적으로 인식하는 도덕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도덕은 인간의 본성에서 파생되어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개념이기에, 여러 가지에서 파생되는 만큼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는 개념도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목적을 잊지 않고, 도덕의 개념 간의 균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 공정이나 평등을 중시한다고 완전한 자유주의 체제나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보완책을 취하며 그 속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가 추구해야 할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