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왕사탕이 May 13. 2021

물건을 향한 변심

미니멀 게임 start!

한번 들인 물건은 오래 쓰는 편이고 꼼꼼한 데다 요령까지 없어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내 주변엔  물건이 자주 쌓였고 물건이 많아지는 것이 곧 정리에 대한 부담으로 다가오자 스트레스가 되었다. 소유하고 있는 물건의 존재를 잊지 않으며 심지어 티셔츠 한 장까지도 기억해내는 편이었지 반 출산 후 최근 기억력이 쇠퇴한 것인지, 기억해내야 할 물건이 많아진 것인지 전과 다른 나의 모습이 생소하기만 했다.



미니멀 게임 start

미니멀 게임으로 나는 집안 곳곳의 물건을 불러 모았다. 비움 회로가 작동하니 예쁜 것에 사족을 못쓰던 나는 냉정하게 사물의 필요와 불필요를 구분하고 있었다.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소유의 범위에서 가차 없이 솎아냈다. 예뻐서 뿐 아니라 대부분은 당장 쓰지 않는 물건, 추억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간을 내어준 물건들로 존재 이유는 정말 다양하고 설득력 있었다. 미니멀 게임 앞에서는 필요와 불필요만 있을 뿐... 다른 이유로는 내 집에 남겨질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비운 물건들은 소위 예쁜 쓰레기였다. 예쁜 소품 위에 뽀얗게 앉은 먼지는 머리 감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돌도 안된 아이 엄마가 돌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특별하고 예뻐 보였던 물건들이 애물단지처럼 여겨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 자신이 이 많은 물건들의 주인이 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렇게 애정 하던 물건들은 빨리 비워 없애버리고 싶은 대상일 뿐 그 어떤 아쉬움 조차 남지 않았다. 그렇게 옷과 살림살이들을 하나둘 비워냈다. ‘언젠간 입고 쓰겠지’라는 아쉬움은 결국 정리할 시기만 늦출 뿐이었다.


사용기한이 지난 제품, 존재조차 몰랐던 물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온갖 수납제품 뒤에 숨겨져 깨끗해 보였을 뿐 그 안엔 정작 내가 쓸 물건은 거의 없었고 집안 곳곳은 비싼 쓰레기로 가득했다. 가격을 매기기 애매한 물건은 무료 나눔으로 거래가 가능한 상태의 물건은 중고나라 또는 당근 마켓을 통해 처분했다. 무분별하게 사들인 것까진 그렇다 쳐도 책임감 없이 버려 지구까지 아프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고 나는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져갔다.


아이의 식사와  낮잠시간을 피해 가며 거래시간을 잡고 팔고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피로했다. 아기가 어리다 보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약속시간 1시간 전부터 대기상태였기에 하루 두어 번 거래에도 진이 빠졌다. 거기다 초반에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로 집이 더 심난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작은 물건도 그냥 버리지 않고 나누고 팔았다. 수명이 남은 물건들이 최대한 끝까지 쓰임을 받도록 하는 노력은 여러 가지 의미로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과거의 무분별했던 소비를 회개하는 의미기도 했다.
​비우는 것이 이토록 에너지 소모가 많을 줄이야.
소비가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욱더 분명해졌다.


개인 간 중고거래 건수 114건/무료 나눔 약 40건 수익만 500만 원이 넘고, 명품 위탁 판매 업체를 통한 수익까지 생각하면 700만 원은 넘은 것 같다. 집안 곳곳 묵힌 물건들은 현금이 되어 돌아왔다. 사들인 돈은 생각도 안 하고 무척 좋아했다. 비싸고 좋은 물건은 다 우리 집에 있었다. 비워도 비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지난 1년간 집을 정말 열심히 탈탈 털었다.


작가의 이전글 비워야 사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