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주차
길을 걷다 보면
우리는 너무 익숙한 풍경을 본다.
횡단보도 앞에 차가 서 있고,
골목 입구는 반쯤 막혀 있고,
식당 앞 한 줄 주차는
이제 이상한 장면도 아니다.
누군가는 말한다.
“잠깐인데 뭐 어때.”
또 누군가는 말한다.
“주차장이 없는데 어디에 세우라는 거냐.”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의 주차 문제는
단순히 시민의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법주차가 많은 이유는
사람들이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규칙을 지키기 어려운 도시 구조가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국내 자동차 누적등록대수는
2,651만5천 대다.
전년보다 21만7천 대 늘었고,
인구 1.93명당 자동차 1대 수준까지 올라왔다.
차는 계속 늘고 있는데
동네의 골목과 상가는
그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는 일본처럼
건물을 지을 때
주차장을 의무적으로 확보하는
제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과는 다르다.
한국도 주차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나
주차수요를 유발하는 시설물에는
부설주차장 설치 의무가 있다.
주차장법 시행령 별표 1을 보면
예를 들어 판매시설·업무시설 등은
보통 시설면적 150㎡당 1대,
제1·2종 근린생활시설과 숙박시설은
대체로 200㎡당 1대 기준이 적용된다.
한국에도 제도는 있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기 시작한 시기보다
오래된 동네가 훨씬 많다는 데 있다.
도심의 오래된 상가와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은
자동차 보급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기에 형성됐다.
그때 설계된 골목은
지금의 차량 밀도를 감당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의 주차난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과거 도시계획이
현재의 자동차 사회를
못 따라간 결과에 가깝다.
이 모순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통계청 광주전남 생활권역 분석 자료에 따르면
광주·전남의 주차장 확보율은
2010년 69.3%에서
2020년 86.4%로 높아졌다.
주차면은 분명 늘어났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주차난은 여전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주차장은 늘었지만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방식으로
늘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차 통계는 종종 착시를 만든다.
전체 면수로 보면
도시는 그럭저럭 버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활은
총량이 아니라
거리와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집 앞 30미터,
가게에서 도보 3분,
장 보러 들렀을 때 10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거대한 수치가 아니라
바로 이 짧은 동선 안의 주차 가능성이다.
광주광역시는 2025년 5월 기준
시내 공영주차장 418개소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아 보이지만,
문제는 이 인프라가
도시 전체에 균등하게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특정 상권,
특정 구역만 주차 접근성이 확보되고
그렇지 않은 동네는 도로 가장자리와 골목 모서리에
비공식 주차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의 주차난은
단순히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활권 단위 공영주차가
부족하다는 문제다.
상인들의 불만도
현실을 모르는 투정으로 볼 수만은 없다.
서울연구원은 보행 활성화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면서
승용차 이용자의 1인당 소비액이
대중교통 이용자보다 약 4,700원 높았다고 봤다.
자가용 이용자는 평균 2만8,148원,
대중교통 이용자는 2만3,471원이었다.
차를 타고 오는 손님이
한 번에 조금 더 쓰는 경향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 데이터만 보면 상인들의 불만은 나름의 근거가 있어 보인다.
“주차가 불편하면 손님이 줄어든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 결론이 곧 불법주차 허용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비는
한 번의 객단가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권은 얼마를 쓰느냐만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오고,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편하게 걷느냐로도 유지된다.
같은 서울연구원 분석에서
보행 활성화 사업이 시행된 지역의 성과는 꽤 분명했다.
12개 사업구역의 유동인구는
2017년 2분기 헥타르당 644만 명에서
2018년 2분기 809만 명으로 25.7% 증가했다.
같은 지역 매출은
260억 원에서 282억 원으로 8.6% 증가했고,
이는 같은 기간 서울시 전체
매출 증가율 2.7%보다 높았다.
서울연구원은 이를 두고
보행 활성화 정책이
경제적 타당성을 갖는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국내 연구에서는
서울 상권의 워크스코어가 1점 상승할 때
서비스업 매출이 약 1.2%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걷기 좋은 환경,
섞여 있는 토지이용,
높은 상가 밀도,
대중교통 접근성은
모두 상권 매출과
유의미한 상관성을 보였다.
이 말은 꽤 중요하다.
상권은 단순히
차를 얼마나 가까이 세울 수 있느냐만으로는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걷기 편하고 머물기 좋은 거리가
장기적으로는 더 강한 소비를 만든다.
즉, 차량을 운전하는 손님은
한 번에 조금 더 쓸 수 있지만,
사람이 많이 걷는 거리는
더 많은 방문과 더 긴 체류를 만든다.
상권의 생명력은
주차선보다 보행 흐름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식사비나 커피값보다
주차비에 더 민감하다는 점이다.
8천 원짜리 점심은 자연스럽게 내면서도
2천 원 주차비는 유독 아깝게 느낀다.
이상하지만 실제 소비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음식값은 ‘내가 얻는 것’으로 느껴지고,
주차비는 ‘그냥 빠져나가는 돈’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권 입장에서는
주차비가 작은 금액이어도
손님 유입에 의외로 큰 장벽이 된다.
결국 시민들은
무료이거나 최소한
“합리적이라고 느껴지는 주차”를 원한다.
상인들이 무조건 불법주차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합법적이지만
접근 가능한 주차 체계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것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정책의 방향이 갈린다.
하나는 불법주차를 묵인하는 방식이다.
단기적으로는 상인 불만을 달랠 수 있지만,
보행 안전과 교통 질서를 무너뜨린다.
횡단보도 앞, 교차로 모퉁이,
버스정류장 주변의 불법주정차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위험과 직결되는 문제다.
행정안전부 주민신고제 시행 이후
불법주정차 신고는 크게 늘었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누적 신고 건수는 737만 건을 넘었다.
그만큼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과 위험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공공이 생활권 단위로
주차를 설계하는 방식이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동네마다 작더라도 공영주차장을 확보하고,
주변 상권 이용 시 영수증 인증으로
1시간 무료 또는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전통시장과 일부 공영주차장에서는
이미 이런 방식이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일부 구역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갖춰진 곳은 살아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가게 앞 한 줄 주차에 의존하게 된다.
도시는 여기서 선택해야 한다.
불법을 방치해 상권을 살리는 척할 것인가,
아니면 합법적인 주차를 설계해
상권과 질서를 함께 살릴 것인가.
주차장은 단순히
빈 땅에 선을 긋는 시설이 아니다.
특히 도심에서는
대부분 지하주차장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국내 지자체 자료를 보면
지하 공영주차장 조성 비용은
대략 주차면 1면당 7천만 원에서 1억 원 수준이다.
예를 들어
100면 규모 주차장
→ 약 70억~100억 원
이 정도 예산이 필요하다.
여기에 토지 매입,
공사비, 유지관리비까지 더하면
비용은 더 커진다.
그래서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주차장 필요성을 알면서도
예산 문제 때문에
사업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광주의 한 행정복지센터도
건물을 지으면서 지하 주차장까지 만들 계획이 있었지만
예산 문제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동네마다 공영주차장을 만드는 일은
그만큼 부담이 큰 사업이다.
법도 있고 설치 의무도 있고
주차면도 계속 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골목마다
잠깐이라는 말을 반복할까.
그 이유는 한국의 주차 문제가
법의 유무가 아니라
배치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총량은 늘었지만
생활권은 비어 있고,
규정은 있지만
오래된 동네는 그 규정을 따라
지어지지 않았으며,
상권은 차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합법적으로 잠깐 설 자리는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불법주차를 더 이해해 주는 태도가 아니라,
주차를 도로 위의 개인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는 행정이다.
동네마다 공영주차장이 필요하다.
밥을 먹고, 장을 보고, 병원을 들를 수 있는
짧은 체류형 주차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비용은
상권 이용과 연계해
시민이 손해가 아니라
서비스로 느끼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주차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건 도시가 누구의 시간을
더 존중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도로는
길이 아니라 임시 주차장처럼 쓰이고 있다.
그 풍경이 당연해지는 순간,
도시는 이미 한 번 설계를 포기한 셈이다.
상권을 살리려면
불법을 눈감아 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도시로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