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장부

미수금

by 다소느림

우리는 식당의 위생에는 민감하다.


바닥이 미끄럽다거나
주방이 지저분하다거나
식재료 관리가 엉망이라는 장면은

곧바로 문제로 인식된다.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문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대금 지급, 미수금, 정산, 외상, 세금계산서,
납품업체와의 관계 같은 것들이다.

이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보여도 숫자로 보이고,
숫자로 보여도 속사정까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묻힌다.

최근 연예인 식당을 둘러싼 미정산 논란도
결국은 이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꺼내게 했다.


잘되는 가게에서조차
왜 돈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한가.


경험


내게 이 문제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카페와 식당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었고,
그 과정에서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조차
미수금을 쌓아두는 장면을 보고 들었다.


그건 망해가는 가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손님이 없어서 하루하루 버티는 가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오히려 꽤 잘되는 가게였다.

내가 일했던 가게의 사장님은

미수금이 좀 쌓여 있다고

푸념하듯 이야기하곤 했다.


그 말투는 죄책감이나 위기감보다
일종의 운영 노하우를 말하는 듯한 분위기에 가까웠다.


더 놀라웠던 건 그게 한 사람의

우연한 습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사장님의 부모님 역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사람들이었고,
유명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미수금을 어느 정도 쌓아둔다고
마치 당연한 기술처럼 자랑스럽게

종종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장면이 내게 남긴 감정은 단순했다.

이건 정말 일부의 일탈로만 볼 수 있을까.
생각보다 넓게 퍼진 감각은 아닐까.


외식업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
먼저 인정해야 할 사실들이 있다.


외식업은 구조적으로
현금흐름 압박이 큰 업종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4년 외식업체 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외식업체의 2023년 평균 영업이익은 2,247만 원이었고,
영업이익률은 8.9%였다.


비용 비중을 보면

식재료비가 40.4%로 가장 컸고,
인건비가 29.4%,

임차료가 8.7%,

세금과 공과가 5.0% 수준이었다.


팔아서 남는 돈이 생각보다 두껍지 않다는 뜻이다.

이 숫자는 외식업 사장들이 자주 하는
“남는 게 없다”라는 말을
완전히 거짓이라고만 보기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남는 폭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매출이 늘어도 식재료비,

인건비, 임차료가 함께 뛰면
손에 쥐는 현금은 얇아진다.


통계청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2023년 소상공인 실태조사 잠정결과에서도
소상공인 기업체당 연 매출액은 1억 9,900만 원,
연간 영업이익은 2,500만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부채 보유 비율은 60.9%,
기업체당 평균 부채액은

1억 9,500만 원이었다.


즉, 한국의 자영업과 소상공인 전반이
수익은 얇고 부채 부담은 큰

구조 속에 있다는 점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여기까지는 구조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구조가 어렵다고 해서, 미루는 것이 정당해지지는 않는다


외식업이 힘들다는 사실과
대금을 미루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은
전혀 같은 문장이 아니다.


어떤 가게가 식자재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누군가의 비용이 먼저 투입됐다는 뜻이다.


납품업체는 물건을 확보하고,
운송하고, 인건비를 쓰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자기 쪽 거래처에도 돈을 돌려야 한다.


그런데 식당은 “지금 남는 게 없다”는 말로 버틴다.

이때 생기는 문제는 단순히

한 장의 영수증 문제가 아니다.


한쪽의 자금난이
다른 한쪽의 생계를 잠식하는 구조가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적인 돈거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계의 사슬을 끊는 문제이기도 하다.

자영업자들에게는 ‘현금흐름 관리’일지 몰라도,
납품업체에게는 ‘왜 나는 일하고도 제때 못 받는가’의 문제다.


더 불편한 사실


장사가 안 돼서 돈이 막히는 가게라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한다.


하지만 줄 서는 가게,
늘 손님이 많은 가게,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가게가
미수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못 줘서일까.
아니면 안 주는 쪽이 더 정확할까.


여기서 많은 사업자들이
“세금 떼고, 인건비 떼고, 임대료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태도다.

남는 게 적다는 이유로
납품업체 대금을 뒤로 미루는 것이
일종의 경영 기술처럼 소비될 때가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미수금을 어느 정도 쌓아두는 것을
무용담처럼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대목이 가장 불편했다.

장부에 적힌 미수금은
누군가에게는 ‘운영 여유’처럼 보이지만,
그 돈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당장 돌아와야 할 생계비용이기 때문이다.


외상은 관행


여기서 구분이 필요하다.

외식업과 유통업, 건설업처럼
먼저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중에 대금을 받는 산업에서는
후불 구조 자체가 흔하다.


그 자체를 모두 비정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래처 간에 월말 정산,

익월 정산 같은 방식은
현실의 운영 관행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상과 방치는 다르다.

서로 합의한 지급기일 안에서
정산이 이뤄지는 것과,
지급을 계속 미루면서
상대가 버티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2024년 하도급거래 실태조사를 보면
원사업자가 법정지급기일 내에

대금을 지급한 비율은 93.1%였다.


뒤집어 말하면 법정지급기일을 지키지 않은 경우도

6.9% 존재한다는 뜻이다.


현금 또는 현금성 결제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은 개선 신호이지만,
지연 지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또 공정거래조정원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분쟁조정 현황에서

하도급거래 분야 1,044건 중
하도급대금 미지급이 648건으로

62.1%를 차지했다.


돈을 제때 주지 않는 문제는
개별 일화가 아니라

반복되는 분쟁 유형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통계는 하도급 분야 중심이고,
외식업 납품 미수금만 따로 집계한 숫자는 아니다.


이 점은 분명히 말해야 한다.
외식업의 납품대금 미지급 관행을

정면으로 측정한 국가 통계는 거의 없다.


하지만 돈을 늦게 주는 구조와,
그로 인한 분쟁이 산업 전반에 널리 존재한다는 사실은
간접 자료로 충분히 확인된다.


가장 위험한 합리화


현장에서는 자주 이런 말이 나온다.

다들 조금씩 미수금은 있다.
원래 장사는 그렇게 굴러간다.
납품업체도 다 알고있다.


이 말이 완전히 허구는 아닐 수도 있다.
오래 거래한 관계에서는
일정 수준의 결제 유예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더 위험하다.

자주 일어난다고 해서

정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됐다고 해서
건강한 문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처럼
미수금을 쌓아두는 것을 자랑처럼 말하거나,
납품업체가 더는 못 버티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적반하장식으로 대응하는 태도는
단순한 자금난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사업 윤리의 문제다.

돈이 없을 수는 있다.
장사가 흔들릴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비용이

한꺼번에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기준은 분명하다.

먼저 설명하였는가.
일정을 제시하였는가.
사과하였는가.
조금씩이라도 책임 있게 갚아나가는가.


아니면 상대가 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계속 밀어붙이는가.

이 차이가 사업을 가른다.


세금계산서 부풀리기


내가 더 충격을 받았던 건
미수금 자체만이 아니었다.


일부 가게들이 납품업체에
실제 거래보다 더 크게

세금계산서를 끊어달라고 요구한다는 이야기,
이를 납품업체가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완전히 거절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건 외상 거래의 문제와는 결이 다르다.
세금과 비용을 왜곡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행위의 규모나 빈도를
숫자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당연히 모든 가게가 그렇다는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영역이 위생 문제처럼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방은 눈으로 보이지만
세금계산서와 장부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쉽게 이 정도는 다 한다는 식의

회색지대로 굳어진다.

보이지 않는 문제일수록
양심보다 관성의 힘을 더 많이 받는다.


그리고 그 관성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선배에게서 후배로,
그리고 지인으로 옮겨간다.


“원래 장사는 이렇게 하는 거야.”

나는 이 문장이 어쩌면

많은 왜곡의 출발점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건 외식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문제를 너무 좁게 보면
오히려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건설업에서도 공사를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해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통업에서도 납품하고 나서

대금이 늦어지는 문제는 반복된다.


중소기업 자금 사정 조사에서도
판매대금 회수 지연은

늘 자금 압박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등장한다.


즉, 이건 요식업자 몇 명의 인성 문제로만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먼저 제공하고, 나중에 받는 구조가 있는 산업이라면
어디든 비슷한 유혹이 생긴다.


남의 돈으로 버티는 것.
내 자금난을 거래처로 넘기는 것.
대금 지급 지연을 운영 전략처럼 사용하는 것.

이건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외식업은
그 현장이 더 일상적이고,
더 생활 가까이에 있으며,
더 작은 규모의 납품업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생생하게 다가올 뿐이다.


문제는 태도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계속

한 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돈이 없는 것과
남의 돈으로 버티는 것은 다르다.


사업이 어렵다면
대출을 받든,
규모를 줄이든,
직접 비용을 감당하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책임 안에서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하지만 납품업체의 대금을 뒤로 미루고,
그 미뤄진 돈으로 가게를 계속 운영하고,
그 와중에 “우리도 남는 게 없다”라고 말하는 순간
문제는 경영의 어려움을 넘어선다.


그건 리스크를 가장 약한 쪽에

떠넘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사람들은 분노한다.

잘되는 가게일수록 더 그렇다.


손님은 많고,
매장은 돌아가고,
브랜드는 커지고,

직원들은 늘어가고,

가게에 머무는 시간은 줄어들고,
자신의 철학을 정답처럼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뒤에서는
누군가가 일한 대가를 제때 못 받고 있다면
그 사업은 과연 얼마나 건강한가.


최소 윤리


나는 모든 자영업자를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결제일을 성실히 지키는 가게도 많을 것이다.
어려워도 먼저 사정 설명을 하고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장님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반대편의 가게들이

생각보다 드물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직접 보고 듣고 나면
이제는 이렇게 묻게 된다.


이건 개인의 사정이니까
남이 함부로 관여할 수 없는 일이라고만 말해도 될까.


물론 모든 거래에
제3자가 끼어들 수는 없다.
하지만 관심은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돈은
그저 장부의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한 달 생활비이고,

직원들의 월급이고,
아이의 학원비이고,
부모님의 병원비일 수도 있다.


장부에 적힌 ‘미수금’이라는 단어는 차갑지만,
그 안에는 늘 사람의 시간이 들어 있다.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나는 외식업이 어렵다는 말을 안다.
장사가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좋아 보이는 가게가

실제로는 얇은 이익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기준은 더 선명해야 한다.


장사하는 것은 자유지만
대금 지급은 선택이 아니다.

받은 물건값을 제때 주는 것,
일한 대가를 늦추지 않는 것,
어려우면 먼저 설명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


이건 이상주의가 아니다.
시장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한 곳이라도 남의 돈을

당연한 운영자금처럼 여기고,
계속해서 미루고, 상대가 버티지 못하면

싸움으로 몰고 가는 식의 가게가 있다면
그건 단순히 장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장사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산업의 수준은
화려한 간판이나 긴 웨이팅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부를

어떻게 다루는가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