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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Apr 23. 2023

서구로 향하는 무슬림의 대이동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해와 어울림, 제3화)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

서구의 대이슬람 접근 방법 (무슬릠 인구 증가와 서구의 안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에 비유되는 '무슬림'의 대이동 

미국은 어떨까?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

전 세계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나라들이 모여서 ‘이슬람 협력기구(OIC)’라는 정부 간 기구를 결속하였다. 이들은 아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구대비 2/3 이상이 무슬림인 국가들로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로부터 동쪽으로 아랍 연맹 22개국을 포함하여, 터키, 이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까지, 그리고, 남북으로는 카자흐스탄으로부터 탄자니아까지 3개 대륙에 걸친  57개의 거대한 국가군으로, 대략 18억 정도의 인구로 전 세계 인구의 1/4 정도이다. 


이들 중, 아랍권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아랍어로 쓰인 ‘꾸란’을 경전으로 믿는 이슬람 종교와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므로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산유국인 이들은, 이런 종교적 결속력 위에, 막강한 ‘오일 (Oil)’ 달러로 새로운 금융체제를 구축하여,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도 안보, 경제문제 등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 경제권에서도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였다.


세계 이슬람 국가의 무슬림 인구 비율

물론, 이 기구에 참여한 국가가 이슬람을 ‘국교’로 한다지만 모두가 ‘정교일치’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무슬림 비율이 높은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 종교가 이들 나라의 국민생활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도표에서 연한 하늘색 지역)


이 중, 사우디, 이란은 이슬람 종교가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우위에 있는 강력한 정교일치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사우디는 수니파 원리주의이고, 이란은 시아파 원리주의이다. 같은 수니파라도 이집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은 사우디처럼 원리주의라기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여, 법과 국제 규범을 따르는 ‘세속주의’ 국가들이다. 


그런데, 도표에서 보듯이, OIC 이외의 국가인 인디아(약 1.3억)나, 중국(약 0.4억), 러시아 등지에도 수많은 무슬림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주류세력과 정치, 종교적인 분쟁도 감내하며 자신의 종교를 지켜가려 한다. 예컨대, 전 세계의 분쟁지 중 대표적인 지역은, 러시아(체첸), 중국(신장-위구르 분리주의), 인디아-파키스탄(‘캐시미르’ 분쟁), 서부사하라 등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많은 지역에서 소규모 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서구의 대이슬람 접근 방법 (무슬릠 인구 증가와 서구의 안전)

동, 서양 교류 중 가장 역사적인 사건의 하나는, 중국 ‘한무제 (漢武帝)’의 흉노족 정벌 (BC 133~90년)로 촉발된 ‘게르만' 민족 대이동일 것이다. 우랄 산맥 서쪽에서 야만인으로 흩어져 살던 ‘게르만’ 민족은 어느 날 갑자기 출몰한 '흉노'에 떠밀려 400여 년 간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다 로마의 영역에 들어서며 유럽 역사에 등장한 이래, 로마의 용병 노릇을 하다가 로마제국을 멸망시켰고, 로마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받았다. 소수의 유약한 로마의 집권세력과 장군들로는 게르만족의 기세를 누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이들의 후손은 독일 (영어식 국명 Germany, 독일식은 ‘게르만’)은 물론, 거의 전 서구와 북미지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정치, 경제, 문화, 군사적인 측면에서 그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치, 경제적 이유로 수많은 무슬림 이민자가 서구로 유입되었다. 더구나, 21세기 들어 중동국가 간의 내분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런 걸 바라보는, 일부 사회학자의 눈에는 마치, 약 2,000여 년 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과 유사한 사회적 현상으로 비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서구로 향한 '무슬림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일까? 지금까지는, 이들이 서구에 정착하여 열심히 살며 점점 세력이 확대되는 동안, 많은 무슬림 2세 중 일부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도 하였다. 


파키스탄계 무슬림 런던시장, 재선으로 현 시장. 

예컨대, 2016년 5월 초, 영국의 수도 런던 시장 선거에서 파키스탄계 무슬림 이민자가 당선되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 나라의 심장 수도에서 백인 후보를 제치고 이민자, 그것도 무슬림이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주류 사회로 동화시킨 영국인의 성숙된 시각이 돋보인다. (런던시 33개 자치구 중 23개 자치구는 백인이 '소수'로 알려져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 서구 무슬림 2세의 문제는, 혹심한 차별과 소외 속에서 생채기를 내며 성장하는 동안, 정체성을 온전히 또는 일부 유지하거나, 극단적으로 드러내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하는 부류로 나누어졌다는 거다. 차별이나 소외를 당하는 자는, 나는 이쪽인가저쪽인가...?” 무엇보다도, '소속된 자'와 '소외된 자'로 구분되는 고통을 가졌으며, 이는 누군가에겐 지독한 과제가 되었다. 일제 식민치하의 우리 조상들도 그런 문제를 겪었고, 그 여파는 지금껏 남아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이들이 기독교와 충돌하는 것은 물론, 서구의 세속주의인간주의(휴머니즘)와도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공산주의 등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이후에 대두할 국제적인 문제로 ‘이슬람’을 거명한 적이 있다.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역사에서 “이상을 위한 투쟁’이 이제 끝난 것인가?” 하는 의제에서, ‘이슬람’을 주요 테마로 삼았다. ‘후쿠야마’는 “어디가 더 행복한 세상인가?” 하는 의미에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 싸움은 공산주의의 패배로 끝났고, 앞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둘러싼 싸움이 주가 될 것인데, 그 내용은 주로 ‘완벽한 종교를 믿는 이슬람주의’와 ‘물질적인 풍요를 지향하는 세속주의’ 문화와의 갈등’이 된다고 예견하였다. 


더불어, '후쿠야마'의 스승인 ‘새뮤얼 헌팅턴’도 그의 저서 ‘문명충돌론’에서 이슬람 종교가 창시된 이래 오늘날까지 여전히 1,400여 년 전의 계시에 충실하여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종교적 교리나 사회적 신념에서 인류문화에 중심에 서기에는 이 종교가 갖는 비무슬림과의 '비화합성'이 최대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았다. 예컨대, 그는 '지하드(성전)'의 원인을 무슬림 공동체 내에 만연된 종교적, 부족적, 인종적, 정치적 분열들이 진화하면서 서구 등 인접 문명과 충돌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비해, ‘후쿠야마’는, 테러 세력의 ‘지하드(성전)’의 원인을 민주화 과정의 산물로 이해한 듯하지만... 그는, 민주주의 국가와 무슬림 국가가 민주주의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 바로 '테러'라면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보편적 민주주의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학자들의 견해가 어떻든, 정작 이슬람의 시각은 다소 퇴행적이다. ‘지하드’와 테러에 대해 국제사회가 뭐라고 평가하든, 많은 무슬림은 지금까지 발생된 각종 테러의 가해자들을 ‘올바르고, 정당한, 심지어는 숭고한’ 행위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들의 범죄성을 ‘자랑스럽게’ 부각하는 이유가, 미국 등 서구가 비서구에 대해 저질러온 '정복과 지배'라는 형태로 가한 모든 일들에 대한 ‘응징’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즉, 지금껏 발생한 테러의 원인 제공자는 서구이니 그들을 처단한 행위는 ‘정당하다’는 논리로 일관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이슬람 외부에 대한 공격은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고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무슬림 내부의 상황은 다소 복잡하다. 이슬람은 물론, 만만한 문화가 아니지만 한동안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여 왔다. 그리고 독립한 후, 수많은 이슬람 국가는 이슬람을 국교로 내세웠지만, 왕정이나 군부 독재국가 등의 고만고만한 후진국으로는 오랫동안 서구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들 간의 내부적 주도권 다툼은 치열하였다. 예컨대, 중동에서 시아파와 순니파 대결은 예맨에서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이 치뤼 지고 있고, 시리아 내전에서도 무슬림 간의 대립은 금기를 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중동 내부의 정세의 불안은 엉뚱하게도 세계 평화에도 어두움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중동 정세의 불안으로 이라크, 시리아, 아프간 등으로부터 발생한 엄청난 난민들은 무작정 유럽으로 흘러들고 있어서다. 그런데, 서구는 이미 이주한 무슬림들로도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꾸란은 여전히 ‘불신자와의 대결’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평화에 대한 인식자체가 다르다. 당연히, 무슬림의 서구 이주와 함께 발생하는 각종 범죄행위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극단적인 테러 행위로 인하여, 무슬림과 서구 상호 간의 불신과 대립은 점점 심화되어, 이제, 서로가 상대방을 꺼려하는 추세로 흘러가고 있다. 


무슬림 난민들 '우리가 갑'이라며 독일 정부 고소

특히, 서구는 무슬림의 인구 증가로 인해, 서구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난 탈출을 위해 서구에 정착한 무슬림은 이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높은 인구 증가율을 보여왔다. 이미 정착한 무슬림 이민자의 인구 증가율이 서구인에 비해 거의 폭등 수준인 데다, 이슬람권의 정치, 경제적 이유로 인해 서구로 유입되는 무슬림이 매년 급증하고 있어, 이슬람이 ‘서구 제1의 종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출생신고를 하는 아이들의 이름 중 '모함마드'가 가장 많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사회의 주류가 되면 사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과거 자료를 보면, 무슬림 인구 증가와 사회적 체제 불안감의 증대는 매우 비례적이었다. 예컨대, '비이슬람 국가의 이슬람화 과정'을 인구비율과 상관성을 단계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비이슬람국가에서 무슬림 인구 비중이, 1% 미만 시는 무슬림은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선포하여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고, 2~3%대는 ‘사회 불만 계층’을 포섭하기 시작하고, 5%가 넘으면 정부에 ‘할랄식품’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도입을 강요한다, 그리고, 10%대에 이르면 ‘폭력’으로 이슬람적 요구를 관철하고, 20% 대가 넘으면 폭동, 소요는 물론, ‘타 종교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40%대 이상이면, ‘샤리아’율법로 통치하는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무슬림의 서구 이주(출처: 중앙일보)  

이와 같은, 통계적 자료의 검증에는 객관적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이 서구의 주류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정체성을 고집하는 비화합성으로 여길 근거로는 충분하다. 예컨대, 프랑스 인구가 6천600여만 명에 무슬림이 600만 이상이고, 독일은 8천여만 명 총인구 중 410만, 영국은 6,400만 중 150여만 명이 넘는다. 각각 9%, 5%, 2.5% 대로, 그 비율과 각국의 사회적 상황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이걸 보면, ‘파리 테러’가 발생하였을 때, ‘왜, 프랑스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현재 추세대로라면, 무슬림이 비교적 적은 비율인 오스트리아도 15세 이하 인구의 50%가 무슬림이고, 스웨덴도 조만간 무슬림이 전 국민의 20%를 넘게 된다는 관측이다. 벨기에 인구는 약 1,100만 명인데 무슬림은 불과 5% 정도인 50~60여만 명이지만, 무슬림 극단주의로 ‘무슬림 테러 모의’ 천국이다. 작은 나라지만 다중 언어 사용으로 치안조직 간 의사소통이 어려워 사건 발생 시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이처럼,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면 사회적 시스템 강화도 중요하다. 사회적 시스템이 약하면, 도발을 감당하기 어렵다.  


게다가, 테러 대비나, 이민자 교육, 난민 수용 등에 대한 비용증가로 인해, 이민자든 난민이든 무슬림의 증가는 서구인에게 큰 정치, 경제,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다. 최근, 유럽 각국 의회는 극우파의 진출이 뚜렷하다. 특히, '반난민'을 외치는 극우파가 유럽의회에 20% 이상의 의석을 점하며 대거 진출하였다. 이들은 유럽 정치의 ‘난민 어젠다 세팅’과 이슬람 반대 등에 한 목소리를 내며 정책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서구는 무슬림 이민자 혐오와 서구로 오려는 무슬림 난민 거부 문제로, 서로 간 갈등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슬림의 '비화합성'이라는 교리에 의한 이러한 적대적 태도에 대해, 문화적인 관용성이나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서구도 차라리 이슬람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대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으로 이들을 포용하고 유화정책을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를 놓고 내부적 갈등도 점점 비등하고 있다. 과연 두 세력 간 갈등 해소를 위한 진정한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미국이나 서구든, 아랍이나 중동이든, 정치든, 경제든, 뭐든 극단적으로 나가는 것은 성숙지 못하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 내 무슬림은 약 300여만 명이나, 2050년까지 약 800여만 명선을 예상한다. 자유, 평등을 내세우던 '이민의 나라'로 미국은 합법적인 무슬림에 대해 차별 없이 수용하였지만, 9.11 테러 이후 이슬람을 향한 차별과 모욕이 빈번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하고, 20여 년간 아프간에서 지루한 전쟁을 이어갔다. 미국 내 합리적인 일부 중산층조차 그 비율이 60% 중반에서 50% 초반으로 급격하게 감소하여 안보를 명분으로 들이대는 ‘트럼프’나 ‘바이든’의 급격한(?) 행동에 대해 더 이상 완충작용을 하지 못한다. 


무슬림이 미국을 보는 관점도 서구와 다르다. 서구는 미국을,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앞세운 거대한 기회의 나라’로 보지만, 이슬람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함부로 모든 국제문제에 개입하는 나라’로 본다. 미국 또한 이슬람을 보는 시선은 ‘불안정성과 폭력’이다. 한쪽은 침략에 의해, 한쪽은 테러에 의해 각각 다른 시각으로 서로가 자신들이 피해자이므로, 상생은커녕,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지루한 논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 경제적인 힘으로 정치인의 입맛에 따라 이슬람 정책을 집행하면 무슬림의 큰 반발을 불러올 게 뻔하다. 미국은 몇 차례의 대 이슬람 군사작전에서 큰 상처를 입었고,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며 철수에 급급하였다.


2020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탈레반과 '아프간 미군 철수'에 합의했다. 대선 직전 이라크와 아프간 미군 철수로 무슬림과 갈등에서 벗어나려 하면서도, 오히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 인정과 이란과의 핵 합의서 탈퇴 등 무슬림에 대한, 인종과 종교 갈등으로 무슬림의 공분을 자초하였다. 그런데, '바이든'은 한술 더 떴다. 2021년 8월, 철수 시한이 다가오자 짧은 철수시한을 명기하고 일방적으로 철수해 버렸다. 아프간은 탈레반 천지가 되었다.


여태까지 미국은, 이슬람 국가가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매우 관용적이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속으로는 어떻든, 겉으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습'을 보여 온 나라이고, 중동이나 아프간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력사용으로 선진 군대의 이미지도 많이 악화된 터라 가급적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려 하였던 탓이다. 이에 비해, 무슬림은 비록 군사적인 힘은 약하지만 자기네 종교세력의 결집성을 믿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소란을 벌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이란이 핵무기 프로그램 재개로 무력 충돌 등 대이란 갈등이 유발되자, '술레이만' 혁명군 사령관을 제거해 버리는 강단에서 보듯, 미국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선제적 조치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모습이다. 다만, 대규모 지상 군사작전에는 발을 뺐다. 그렇지만 연일 보복을 다짐하며 '강 대 강'으로 치닫는 이슬람 저항세력에 대해, 이런 미국의 대 무슬림 정책이 어떤 효과를 거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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