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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16. 2023

아름다운 자연과 억압받는 사람들 - '스리나가르'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 (인디아-파키스탄 유엔 평화유지군, 제15화)

아름다운 자연환경 - 동양의 '베네치아', 동양의 '알프스'

주인행세도 못하고 억압받는 무슬림

'스리나가르' 외곽의 벼농사 사진 참조



아름다운 자연환경

인도 북부 카슈미르 계곡은 아름다운 지역이다. 특별히, '잠무 카슈미르'의 주도 '스리나가르'에는 동양의 '베네치아', 그리고 '소나막', '굴막', '파할감' 등 주변 지역은 동양의 '알프스'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황량한 인디아만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인디아인들은 "무슨 일에든 서구 것을 갖다 붙이길 좋아하나 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에서 오래 살아본 필자로서는 저들의 호들갑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스리나가르'는 인디아 수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80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는 '카슈미르' 주의 주도로서, 해발고도 1,600m 지역이라 하계에도 무덥지 않은 날씨와 눈 덮인 산, 도시에 속한 '달(Dal)' 호수로 그 풍광이 아름다워 휴양지의 면모를 갖추었다. 

유엔군 본부 뒷산에서 내려다본 스리나가르 '달(Dal)' 호수의 '하우스 보트'. 호수의 도시로 동양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동양의 '베네치아'

'스리나가르' 시의 인구는 약 100만으로 대부분이 육상에 거주하나, 동북쪽을 점하고 있는 거대한 '달' 호수주변에도 거주 인구가 많다. '달'호수와 연결된 '스리나가르' 시내에는 운하가 종횡으로 뻗어있어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특히, '달' 호수에는 이 호수의 명물로 알려진 약 500여 개의 '하우스 보트'(호수에 붙박이로 붙어있는 보트)가 있다. 이들 '하우스 보트' 중에 호텔로 사용되는 곳은 호두나무로 장식하고 캐시미르 카펫으로 장식하여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달' 호수 전경

이들 '하우스 보트'에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면, 저 멀리 보이는 '피르판잘' 산맥과 거대한 '달(Dal)' 호수에 비친 눈 덮인 설산의 자태, 수면 위에서 피는 연꽃과 수련, 그리고, 수면을 스치듯 지나치는 작은 배(시카라)가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느껴진다. 왜, 낭만에 찬 인디아 젊은이들이 이곳을 '신혼 여행지'로 선호하는지 알 것 같다. 




달 호수에서 만나는 물 위에 떠 다니는 '시카라'(배) 야채가게

'스리나가르'의 '달' 호수 주변지역 거주자는, 도시 중심지역에 비해 인구수는 많지 않지만, 수상 도시인만큼, '시카라'라는 배가 없으면 거동이 불가능하다. 육지에서 '하우스 보트'로 갈려면 이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보트와 육지로 오가는 동안 호수에 접한 서민들의 집에서 닭이나 거위를 키우는 모습에서부터 다양한 살림살이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또, 호수는 호수대로 수련이나 연꽃 등 수상 식물도 가까이서 보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배나, 관광을 하는 배 등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다만, 호수의 물이 잔잔한지라 부생초 등 수중 식물이 급격히 성장하여 시 당국은 이를 걷어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는 그들의 노력이 식물 성장에 비해 버거워 보였다.  


호두나무로 만든 조그마한 보석함(비밀 열쇠가 있다)

필자는 유엔군 본부에 출입하는 '굴람'이라는 현지 안내인(유엔군 장교들의 편의를 봐주고 물건을 파는)의 도움을 받아, '시카라'를 타고 호텔형 '하우스 보트'를 둘러보고 난 뒤, '하우스 보트' 밀집지역 육상 동네의 호두나무 가구상도 둘러보았다. 이들 가구 기술자는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로 수십 년 동안, 궤짝이나 장식장, 식탁이나 탁자 등을 수작업으로 만들어 왔다는 장인들이었다. '재주는 곰이하고 돈은 떼 놈이 버는' 것 같은데... 굉장히 섬세하고 작품성이 있어 보이는 제품들도 많고, 귀한 호두나무로 만든 수공예 작품치고는 값도 저렴해서 그 중 하나를 사기도 했다...


이처럼, '스리나가르'는 호두나무를 비롯하여, 플러타너스, 사과나무 등이 많은데 이 나무들이 엄청나게 커서 숲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 많고, 그 나무로 만든 여러 수제품들이 이 지역의 명산품이 되었다. 


동양의 '알프스'

'스리나가르' 북부 '파할감' 일부

'스리나가르' 일대는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스리나가르'로부터 멀지 않은 북부 산악지대의 '소나막', '굴막', '파할감' 등 주변 지역은 동양의 '알프스'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눈 덮인 산과, 청정하고 맑은 하늘, 푸른 나무 그리고 풍부한 물 등으로 산수가 잘 어울려져 있다. 이곳은 수종도 다양한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아 있다.


스리나가르 북부 '소나막' 일부

필자는 하계 시에만 '스리나가르'에서 근무하였기에 눈 덮인 이들 지역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잠무 카슈미르'의 '바라뮬라' 지역에는 우리 유엔군 감시 기지가 있어, 하계에는 방문하였다. 기지 가까이 '굴막'이라는 곳의 스키장에는 아시아 최고의 높이인 4,200m까지 곤돌라가 설치(16년간에 걸친 대규모 사업)되어 있어 4월 중순까지 스키를 즐긴다. 물론, 상대 고도를 따지면, 높이 차가 비슷하겠지만, '스키 천국'이라던 오스트리아의 '티롤' 지방에서도 3,000m까지 올라가는 곤돌라가 흔치 않았는데... 

스리나가르 북부 '굴막' 지역 곤돌라


주인행세도 못하고 억압받는 무슬림

'스리나가르'의 한 마을 행사에 참석하는 인디아 사람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나라가 독립했다. 그 과정에서 몇 나라는 자의나 타의로 분단됐다. 타의로 분단된 나라가 한반도라면, 인도인들은 협상의 대가들답게 독립도 분단도 협상을 통해 자의에 따라서 하였다. 그 결과,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아와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파키스탄으로 나눠졌다. 이 같은 평화로운 분리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성과였다.




'스리나가르'의 만원 버스

하지만, 마지막 걸림돌이 '카슈미르'였다. 해당 지역에서 다수를 점하는 종교에 따라 인디아와 파키스탄으로 나누던 원칙에 따라, 주민 중 무슬림이 절대다수인 '카슈미르'는 당연히 파키스탄 땅이 되어야 했지만, 힌두교도인 '카슈미르' 왕이 사전에 인디아에 귀부를 결정하자 분란이 야기되었다. 그리고, 서로 3차례에 걸친 전쟁을 벌인 끝에 '카슈미르'의 60%는 인디아 땅, 40%는 파키스탄 땅이 되었다.


인디아 내 전체 무슬림의 인구는 1.5억이 넘지만, 주별로 무슬림이 다수인 곳은 없다. 하지만, 각 주에 고루 분포되어 있어 카슈미르만큼 긴장이 맴돌 지경은 아니다. '카슈미르'만 인디아 내에서 유일하게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이다. 인디아 정부가 카슈미르 테러 사태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더 이상의 영토확장보다 자칫 무슬림 분리주의가 다른 주로 확산할까 봐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디아가 3차례의 인-파 전쟁으로 '카슈미르'의 60% 이상의 알짜배기 지역을 확보하자, 정작 인디아 지도자들은 살기 좋은 이곳으로 다수의 힌두교도들이 몰려와서 인구 역전 현상이 되는 걸 염려하여, 오히려 '카슈미르'를 우대하는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카슈미르' 반군의 다수인 독립파는 인-파 전쟁 이후에도 파키스탄의 무력 지원을 기대하였으나, 번번이 무산되자,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인도도 파키스탄도 싫으니 그냥 우리끼리 살게 해 달라!'는 새로운 구호를 내걸고 인디아와 투쟁하고 있다.


'스리나가르' 하계 유엔군 본부. 유엔의 상징인 푸른색이다. 

유엔 평화유지군 정전 감시단은 4월부터 10월까지 무덥고 습한 파키스탄을 떠나 온화한 인디아령 카슈미르’ 주도인 ‘스리나가르’로 하계(여름) 본부를 옮기고 '시알콧', '잠무' 등 통제선 연결 초소와 더불어, '델리', '바라뮬라' 등지에서 감시 기지를 운영한다. 하지만, 인디아 정부의 유엔군에 대한 입장은 유엔 결의에 따라 지원은 하지만, 유엔군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스리나가르’의 생활 여건은 파키스탄 '라발핀디'보다 훨씬 낫지만, 가족 동반은 일체 불허되고, 심지어 모두가 금족령이다. 특히, 무슬림이 밀집하여 사는 곳이나, 과거부터 테러 위협이 높은 지역에는 공무 외의 출입을 통제한다. 무실림 과격 분자들은 필자가 부임하기 바로 전 해에 사령부 앞 100여 m정도 떨어진 곳에서 인디아 군에게 폭탄 테러를 가한 적이 있었다.


무슬림은 억압받는다면서도 종교의 자유를 최대한(?) 누린다. 유엔군 본부 바로 코앞에 한 ‘모스크’가 있었다. 이 모스크는, 유별나게도 큰 확성기를 장착하였다. 그리고, 우리 본부를 향해 매일같이 수 시간 동안 낭송을 틀어대고, 금요일 날에는 낭송이나 설교를 하루 온종일 들려주는 바람에, 문만 열면 크게 들리는 소리로 아주 큰 고역이었다. 그 소음이 얼마나 큰지 문을 열면, 바로 옆 사람과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때문에, 유엔군 본부는 참모요원들의 난청 예방을 위해, 포병 사격용 귀마개까지 지급하였다.


이런 낭송은, 우리 유엔군 본부에 함께 있는 인디아 군인을 겨냥한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하지만, 인디아 군인들은 바로 코앞에 확성기를 들이대 놓고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덤덤하다. 제 3자가 “너희 괜찮아?”라고 물으면, 큰 소음에 대한 불평을 해대기는커녕 그냥 웃기만 하였다. 힌두교도의 관용이랄까…? 


2019년 2월 14일, '잠무 카슈미르' 지방 경찰학교에 차량 자살폭탄 테러로 인디아 경찰 36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인디아는 테러사건의 배후지로 파키스탄을 공습하였고, 그 과정에서 공중전이 벌어져 인디아 공군기 2대가 격추되었다. 양대 핵보유국이 2일간 연속 공습과 포격을 주고받아 지역 내 긴장이 최고로 고조되었는데, 이런, 저런 문제를 떠나, 공중전 과정에서 '인도에 대한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도입된 F-16기가 인도 공군기를 격추시켜, 이슈가 되었다. 얼마 후, 증거 불충분으로 미국의 조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디아와 관계를 개선하던 미국으로서는 파키스탄을 압박할 카드를 가졌던 셈이었다.

  

2019년 8월 1일, 카슈미르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극우 성향의 집권당인 인디아 국민당(BJP)이 내세운 지난 총선 공약 때문이었다. 총선 압승을 거둔 극우 여당은 공약을 착착 이행했다. '카슈미르'에서 4인 이상의 집회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인터넷은 물론, 유선전화까지 차단되었다. 그리고 며칠 뒤 인디아 하원은 '카슈미르'를 특별히 우대하는 인도 헌법 제370조의 폐기를 의결했다. 인디아는 헌법을 개정할 때 국민투표 없이 상·하원의 의결만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이에 항의하던 수많은 무슬림들이 체포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처럼, 사라지거나 감감무소식인 무슬림 연행자만 현재까지 수천 명에 이르지만, 무슬림들은 누가, 왜 그들을 체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인디아 정부의 '카슈미르' 통제 방침에 대해,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정전상태를 감시하는 것이 유엔의 결의이니까...

이제, 인디아의 '스리나가르' 통제방법은 강온양면으로 바뀌었다. 반정부 인사의 철저한 제거와, 현지 투자 강화로 인프라를 육성하고 주민 생활 수준 개선에 열을 올리면서 '스리나가르'는 빠르게 '인디아화'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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