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1980) : 첫 장면 미장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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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의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구도, 색채, 의상, 공간 디자인 등 미장센 요소들은 어색하지 않고 품위가 있다.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화가의 길을 걸었어도 역시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
촬영 방식은 이렇다. Eye level, Fixed Full shot, Long take
첫 장면은 영화를 대표한다. <카게무샤>(1980)는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해당 장면에서는 영화의 주제와 톤앤매너가 분명히 드러난다. 관객에게 의도를 각인시키기 위해, 감독은 6분에 이르는 롱 테이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의상, 구도, 소품 등을 중심으로 미장센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왜 세 인물은 똑같은 의상을 입고 있을까? 제목 카게무샤는 ‘그림자 무사’라는 뜻으로, 실제 무장이나 영주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적을 속이기 위해 외모가 비슷한 인물을 대역으로 세우는 전략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감독은 의상 연출을 통해 영화의 제목을 상기시키고, 관객이 주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첫 장면은 구도를 통해 위계 구조를 명확히 드러낸다. 가문의 문장 아래, 다케다 신겐은 상좌, 그의 동생 노부나가는 단상, 카게무샤는 바닥에 앉아 있다. 연극적인 구도를 통해 세 인물의 얼굴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다케다 신겐의 권위와 위상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만약 김홍도의 <서당>처럼 입체적인 구도를 차용했다면 위계를 표현할 수는 있었겠지만, 영화의 제목이 내포한 얼굴에 관한 맥락은 구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칼과 촛불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독은 이들의 세로 형상을 활용해 인물 간 공간을 분할한다.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주제가 이미지로 효과적으로 나타나 있다. 특히 촛불은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를 만들어 앞으로 카게무샤가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종합하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탐구하고 있다. 이는 영화 중반부의 꿈 장면에서 더욱 확장되며, 정체성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기호화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관련 내용은 아래 기사 참고)
한편으로 영화의 한계 또한 보여주고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러한 관점은 데이비드 데서(David Desser) 역시 대체로 공유하고 있다. 그는 『카게무샤』를 “의미화의 비극(tragedy of signification)”이라고 부르며, 이 비극은 “개인이 일련의 기호들과 의미화 관행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그것들과 자기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연결망(nexus) 속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카게무샤』에서 의미화의 과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탐구된다. 첫째는 기호들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둘째는 기호들이 자아 개념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이다.
‘그림자 무사(kagemusha)’라는 단일한 인물은 이 두 과정 모두와 밀접하게 얽히게 된다. 그는 타인의 행동과 인식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는 하나의 기호로 기능하는 동시에, 그러한 기호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재해석된다. 궁극적으로, 데서는 말한다. 도플갱어의 역할을 수락해 그 도둑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상실하게 된다.
출처
영화는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말마따나 영화가 카게무샤 개인의 성장 서사를 다루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케다 가문의 몰락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스토리라인이 분명하지 않아 관객이 방향을 잃기 쉬우며, 카게무샤의 이야기는 평면적이고, 영주들의 패권 다툼은 산만하게 전개된다. 지금 떠오르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다.
1. 척후병 3명의 이야기
척후병들은 극 중간마다 등장해 신겐이 실제로 죽었는지를 탐색하며 성 주변을 정탐한다. 하지만 이들이 굳이 반복적으로 직접 등장했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었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보다 흐름을 끊는 요소로 작용했다.
2. 슈도 이야기
슈도는 사무라이 계층에서 행해지던 동성애 관계를 일컫는다. 극 중에서는 다케다 신겐과 오다 노부나가의 슈도가 언급되지만, 이를 왜 조명했는지 설득력 있는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두 인물 간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전국시대의 시대상을 조명하기에도 서사가 부족하다. 슈도 장면은 머릿속에 잔상만 남을 뿐, 이야기의 이해나 몰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3. 카게무샤와 다케다 신겐의 손자의 관계
이 둘 사이의 정서적 유대를 부각시킨 것은 아마도 ‘정체성의 환상’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고, 카게무샤의 개인적 서사에 무게를 두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카게무샤가 역할을 다한 뒤 쫓겨나면서 손자와 이별하는 장면은 충분히 비극적이었지만, 그 이상의 내면적 성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결론적으로, 영화 속 카게무샤는 극 중 역할뿐 아니라 영화 외적으로도 소모적인 존재로만 머물며, 나에게 깊게 와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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