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술을 끊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 말을 변명처럼 늘어트려 놓을 것인가

by 최영정

아마도 술을 마셔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던져봤을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질문이 나오자마자 곧장 그 뒤를 따라오는 것은 변명이다. “오늘까지만 마시자.” “나는 남들과 달라.” “나는 절대 중독까지는 안 갈 거야.” 이러한 착각은 언제나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뼈저린 후회를 남긴다.


술이 ‘내일’ 취한다면?


만약 술이 오늘이 아니라 내일 취하게 된다면, 과연 당신은 여전히 술잔을 기울일 수 있을까?
즉각적인 쾌감과 해방감을 주지 않는다면 술의 매력은 반감된다. 이는 곧 우리가 술을 찾는 이유가 술 그 자체가 아니라 순간의 도피와 해소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술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집 앞 편의점, 동네 마트, 회사 근처 식당 어디서든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다. 술을 거절하면 분위기를 망친다며 핀잔을 주고, 마실 줄 모르면 남자답지 못하다 평가한다. 사회가 술을 장려하는 듯한 이 풍토는 우리를 더 깊은 함정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술은 멀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다가서지 말아야 할 금지된 영역이다. 그 영역에 발을 들인 순간,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험난하고 어두운 굴레 속에서 우리는 삶이란 소중한 꽃을 왜 스스로 꺾고, 왜 가족을 눈물짓게 하는가.


술이 주는 착각과 파괴

전문가들은 말한다. 술이 순간적인 감정 해소에는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일 뿐이다. 문제는 술을 ‘약’으로 착각해 아픈 마음을 달래려 계속 마시다 보면 결국 중독의 문턱을 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때부터 술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파괴의 도구가 된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가족까지도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술은 결코 혼자만의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은 곧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량에 올라탄 것과 같다. 브레이크가 없으니 사고는 불 보듯 뻔하고, ‘적정 음주’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끝에는 망가진 건강, 깨진 관계, 그리고 덩그러니 남은 외로움뿐이다.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혹시 당신은 우리 몸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1. 블랙아웃(필름 끊김)

술자리 다음 날, 전날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험을 한 적 있는가? 이는 단순한 기억 상실이 아니다. 술에 포함된 알코올이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을 직접 마비시켜 아예 기록 자체를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블랙아웃이 반복되면 뇌세포는 일시적 손상을 넘어 영구적인 손상으로 진행된다. 심하면 알코올성 치매, 뇌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6개월에 두 번 이상 블랙아웃을 경험했다면 이미 뇌 인지 기능 저하가 시작되었다는 신호다.


2. 해장술

숙취가 심하다고 다음 날 아침 또다시 술을 찾는가? 이른바 ‘해장술’은 이미 알코올 의존이 깊어졌다는 신호다. 해장술은 아직 해독되지 않은 뇌의 중추신경을 또다시 마비시켜 숙취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 뿐, 간과 위를 더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더 큰 문제는 알코올이 통제력과 판단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이 쌓일수록 스스로 술을 조절하기란 더욱 어려워진다. 농담 반, 자랑 반으로 해장술을 찾는다면 이미 중증도 이상의 알코올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3. 비밀 음주

알코올 중독자는 대체로 자신의 문제를 부정한다. 지적을 받으면 변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술을 찾는다. 그러다 주변의 비난과 시선을 피하려고 몰래 술을 마시는 습관, 이른바 ‘비밀 음주’로 이어진다. 이는 이미 술이 삶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과연 술을 끊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결국 **내 삶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같다. 술을 끊는 것은 단순히 술잔을 내려놓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건강을 회복하고, 가족의 웃음을 되찾으며, 평범한 일상을 다시 맞이하는 선택이다.


분명 쉽지 않다. 중독은 강력하다. 그러나 술보다 강한 것도 있다. 그것은 변화의 의지와 도움을 구하는 용기이다.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흘려보내지 말라. 그것이 바로 새로운 삶으로 가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