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불안정한 국가를 구원하려는 국민적 열망의 정치학
2025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정치적 격랑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 사태, 정파적 대립으로 인한 정책 마비,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위기 담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은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열망이 강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정치 영역에서 통제력을 상실한 것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주권의 체감을 이전하려는 심리적 패턴이 포착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2026년 정치 지형을 주도할 핵심 패턴 중 하나인 '기능적 주권 대체 심리(FSRP, Functional Sovereignty Replacement Psychology)'입니다.
기능적 주권 대체 심리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정치, 외교, 안보 등 전통적인 주권 영역에서의 통제력 상실 우려를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데이터 등 첨단 기술 분야(기능적 주권)에서의 '선제적 우위'와 '자율성' 확보를 통해 해소하려는 국민적 및 정책적 경향입니다.
이 심리는 단순한 기술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글로벌 지정학적 불안정과 국내 정치의 위험 순환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증대하면서 발생한, 체제적 불안정성에 대한 실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전통적인 정치 시스템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대신, 눈에 보이고 측정 가능한 '기술적 우위'를 통해 국가적 생존과 안정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2025년 한국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근본적 불안정성'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국제 기관의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한국이 2년 연속 '독재화' 국가로 분류되고, 민주주의 단계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선거민주주의'로 한 단계 낮아진 것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1].
사회 갈등 정도가 4점 만점에 3.04점으로 2018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으며, 응답자의 92.6%가 사회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거나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상황입니다[2]. 이러한 불안정성은 두 가지 거버넌스 병리 현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병리는 '개혁 블랙홀 증후군(RBHS, Reform Black Hole Syndrome)'입니다[3]. 개혁이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개혁(연금, 의료, 재정)대신, 정파적 권력 투쟁을 위한 도구(검찰, 사법 개혁)로 종속되어 국민적 기대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국민들은 진정한 개혁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정치권이 제시하는 '개혁'은 항상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락하고, 정작 국민의 일상을 개선하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않습니다. 개혁의 '효능감 격차'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통적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두 번째 병리는 '사법-정치 전선화'입니다[4].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갈등이 정책 협상이라는 전통적 경로를 이탈하여 특검, 탄핵 등 법적 수단을 통한 상대 진영 공격으로 전이되면서, 사법부가 사실상 제1의 정치적 전선이 되는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곧 '정책 거버넌스 마비(Governance Paralysis)'로 이어집니다.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구조 개혁이 장기간 표류하고, 정치는 '절차적 승리, 본질 결핍'의 순환 고리에 갇혀 '파단민주(破斷民主)' 상태에 이릅니다.
이처럼 국내 정치가 본질을 상실하고 권력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하자, 국민들은 외교와 안보 같은 전통적인 주권 영역에서 국가적 역량과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통제력 상실 우려(Loss of Control Anxiety)'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FSRP의 핵심 동력은 단순히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수호 의지'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의 동시 증폭에서 비롯된 반작용적 희망입니다.
연이은 헌정 위기 수습 과정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피로감(Political Fatigue)을 극도로 가중시켰습니다. 참여가 끊임없이 '위기 수습'의 형태로만 나타나고 정책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자, 궁극적으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정치적 효능감 저하로 이어질 위험이 커졌습니다.
정부 신뢰 및 정치 신뢰의 하락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포퓰리즘의 확대를 가져오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는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치 시스템이 일상적인 정책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을 때, 국민들은 '국가적 생존'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와 연결된 첨단 기술 영역에서 국가의 통제력이 건재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심리를 발동합니다.
즉, '기술 주권'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정치적 과정을 우회하여 국가의 역량을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능적 안정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정치적 효능감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민적 자긍심이 됩니다.
2025년 데이터 분석 결과, 전통적인 '주권' 담론의 핵심 연관어로 '기술', '인공지능', '데이터'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주권'이라는 개념을 영토적, 군사적, 외교적 영역뿐만 아니라, '기술적 자율성'을 통해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결정하는 '기능적 차원'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기술 담론을 형성하는 감성 분석에서는 '혁신'과 '안전'이라는 두 긍정 감성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혁신 = 생존: FSRP 관점에서 혁신은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와 공급망 불안 속에서 국가적 생존(National Survival)을 보장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됩니다.
안전 = 지속 가능성: '안전'은 기술 발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기술 혁신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하는 보험'으로 인식되는 실리적 관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윤리가 기술 발전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기술 주권의 장기적 확보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인프라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패키징 기술에서 압도적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국은 반도체 생산부터 데이터센터, AI 플랫폼, 자동차·배터리까지 AI 가치사슬 전 과정을 한 국가에서 다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 등 핵심기술 역량과 그간의 생태계 기반 조성을 바탕으로 AI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을 위한 제도 정비, 인프라 확충, 인재 양성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며 글로벌 경쟁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FSRP는 전통 정치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국가 통제력의 결핍'을, 실리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기술 우위'를 통해 즉각적으로 대체 보상받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의 투영입니다.
이 기능적 주권 대체 심리(FSRP) 패턴을 정량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공식, 즉 '주권 전환의 법칙(The Law of Sovereignty Shift)'을 제안합니다. 이 공식은 전통적 주권에 대한 불신이 기능적 주권에 대한 수요로 전환되는 역동성을 설명합니다.
S_F ∝ (C_Crisis / G_Efficacy) × (A_Tech - R_Ethic)
S_F (기능적 주권 수요, Functional Sovereignty Demand): 국민들이 첨단 기술 분야(AI, 반도체 등)에서 선제적 우위와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적·심리적 수요의 강도. FSRP의 결과 지표입니다.
C_Crisis (구조적 위기 상수, Structural Crisis Constant): 전통적인 정치 시스템의 기능 장애 수준(파단민주, 정책 마비, 개혁 블랙홀 증후군의 고착화). 분자로서, 위기가 심화될수록 주권 대체 수요는 증가합니다.
G_Efficacy (거버넌스 효능감, Governance Efficacy): 현 정치 시스템(정부, 국회, 정당)이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적 성과(민생, 경제)를 창출할 수 있다는 국민적 신뢰 수준. 분모로서, 효능감이 낮아질수록 주권 대체 수요는 증가합니다.
A_Tech (기술적 대안 가시성, Technological Alternative Visibility): AI, 반도체 등 기능적 주권 영역에서 국가가 실제로 확보하고 있거나 확보 가능한 경쟁 우위의 명확성.
R_Ethic (윤리적·규제적 위험, Ethical/Regulatory Risk):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적 윤리 비가시성 및 규제적 불확실성의 수준. 이는 S_F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입니다.
이 공식은 FSRP가 '위기(불신)'와 '대안(기술)'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의 함수임을 보여줍니다.
위기 증폭의 효과 (C_Crisis / G_Efficacy): 구조적 위기(C_Crisis)가 고착화되고 거버넌스 효능감(G_Efficacy)이 극도로 낮아질수록, 전통적 주권에 대한 신뢰도는 붕괴하고 기능적 주권(S_F)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는 정치적 실패가 기술 중심의 '구원 서사(Salvation Narrative)'를 낳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술적 대안의 조건 (A_Tech - R_Ethic): 아무리 정치적 위기가 심해도, 기술적 대안(A_Tech)이 국민이 체감할 만큼 명확하게 우위를 점하지 못하거나, 기술 발전 과정에서 윤리적·규제적 위험(R_Ethic)이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이면 (A_Tech ≈ R_Ethic), S_F는 동력을 잃게 됩니다.
즉, 기술적 주권은 반드시 투명한 거버넌스를 통해 윤리적 위험을 관리해야만 국민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술 주권이 지속 가능하려면, 단순히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기술이 윤리적으로 안전하고 규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FSRP는 2026년 이후 대한민국 정치 지형과 정책 결정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는 리더십의 동력원, 정책 우선순위, 그리고 윤리 및 규제 환경을 동시에 재설정할 것입니다.
FSRP 심리는 정치적 리더십이 '국가적 생존 프레임'을 통해 정책 동력을 얻는 핵심 기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념 무력화: 유권자들이 소속 정당의 이념보다 실리를 창출하고 윤리적 리스크를 관리할 능력을 가진 성과주의적 플랫폼에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기술 주도의 통치: 리더들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혁'이나 이념 논쟁에 매몰되기보다는, AI 전략 발표, 반도체 투자 유치, 데이터 경제 법제화와 같은 가시적인 기술 기반 행위를 통해 위기 관리 능력과 비전을 증명하려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기술 전문가'형 정치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입니다.
FSRP의 성공 여부는 곧 AI 거버넌스와 진단적 신뢰(Diagnostic Trust)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진단적 신뢰의 요구: 전통적인 맹목적 신뢰(Blind Trust) 대신, 시민들은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시스템적 검증을 전제로 얻어지는 조건부 신뢰, 즉 진단적 신뢰를 요구합니다. 이는 정치 블랙박스와 알고리즘 블랙박스를 해체하고, 결정의 '참된 과정(眞)'과 '명확한 근거(斷)'를 데이터와 객관적 지표를 통해 '진단(診)'하겠다는 시민적 의지의 표현입니다.
규제 전쟁의 해: FSRP가 심화되면서 2026년은 AI 윤리 규제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될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혁신을 보장하는 '보험'이 될지 결정하는 '규제 전쟁의 해'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FSRP 심리를 유지하기 위해 EU의 AI법과 같은 국제 규제 트렌드를 선제적으로 반영하여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는 곧 '기술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적 컴플라이언스 격상'이라는 역설적인 정책 방향을 낳을 것입니다.
FSRP는 또한 새로운 정치적 위험을 내포합니다. 즉, 기술 정책이 합리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고 '정치적 주권 프레임'에 종속되어 정쟁의 무기로 변질될 위험입니다.
정책의 선점 경쟁: 기술 개발의 로드맵이나 규제 방향이 국가적 목표가 아닌, 특정 정치 진영의 '선점'이나 '치적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정책의 지속 가능성과 일관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기술적 갈등'의 양극화: 첨단 기술 프로젝트나 AI 도입 문제가 이념적·정파적 갈등과 결합하여 '기술적 담론'마저 양극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편의 기술'과 '저들 편의 기술'이 대립하는 '기술 이념의 이분법'이 형성되어, 기능적 주권 영역마저도 정치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기능적 주권 대체 심리(FSRP)는 2025년의 정치적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합리적이며 동시에 절박한 응답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본질적 결핍'을 기술이라는 '기능적 실체'로 치환하여 국가의 생존 능력과 미래를 담보하려는 시도입니다.
FSRP는 2026년 한국 사회가 직면할 '파단민주' 상태에서 기능적 국가(Functional State)로의 전환을 강력히 추동하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 기능적 국가는 정치적 논쟁의 격랑 속에서도 AI, 반도체, 데이터와 같은 핵심 기술 역량만은 굳건히 지켜냄으로써,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체감적 안전'을 제공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FSRP가 지속 가능한 패턴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첫째, 투명한 거버넌스와 진단적 신뢰: 기능적 주권의 우위를 투명한 AI 거버넌스와 진단적 신뢰를 통해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합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맹목적으로 정부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모든 결정이 데이터와 투명한 과정을 통해 검증 가능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기술이 정치 실패의 은폐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 기술적 성공이 전통 정치의 실패를 영구히 은폐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기술적 우위가 '개혁 블랙홀'과 '정책 마비'라는 근본적인 정치 구조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2026년, 대한민국은 기능적 주권 확보를 통해 위기 순환을 끊어내고 국가 생존의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와, 정치적 갈등이 기술 영역마저 오염시키는 '기술 이념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라는 역사적 기로에 서 있습니다.
FSRP의 향방은 대한민국 거버넌스 재설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기술적 역량을 통해 국가의 생존과 미래를 증명하려는 국민적 열망은 강력합니다. 하지만 이 열망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 주권과 민주적 거버넌스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기술은 정치의 실패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치가 실패할 때, 기술은 최소한의 국가적 안정을 제공하는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2026년 대한민국의 과제는 이 두 가지 영역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상호 보완하며 국가의 미래를 함께 구축하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적 우위가 아니라, 그 기술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입니다. FSRP는 그 여정의 시작점일 뿐입니다. 진정한 국가적 주권은 기술과 정치, 효율과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1] KBS뉴스, 한국, 국제기관 평가서 2년 연속 ‘독재화’ 평가
[2]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
[3] Trenza Impact, 개혁 블랙홀 증후군
[4] Trenza Impact, 입법사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