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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테크노-실존 규범

by Trenza Impact

본 장에서는 오늘날의 국제 질서를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혁신적인 패턴인 '테크노-실존 규범(Techno-Existential Norms, T-EN)'을 심층 분석했습니다.

2025년 수집된 방대한 트렌드 데이터(뉴스 빅데이터 형태소 분석, 감성 분석, 주요 정책 문헌 종합)는 전통적인 다자주의 규범 체계가 붕괴하고, 기술 패권 경쟁이 국제 질서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는 '지정경제적 분열(Geo-Economic Fragmentation)' 시대로의 격변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기존의 국제 규범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T-EN은 '어떻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대한 답을 강요하는 새로운 규범적 틀입니다.

T-EN의 등장은 국제 규범을 '준수해야 할 질서'가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 재정의하는 시대적 변화의 정점입니다. 이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와 같은 첨단 기술이 단순한 산업 동력을 넘어, 국가 안보와 주권 그 자체와 직결되는 실존적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2025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정경제적 분열이 향후 10년간 전 세계 GDP를 7%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으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1. 테크노-실존 규범(T-EN)의 개념 및 기원 분석

1.1. T-EN의 핵심 정의: 생존(Existential)과 기술(Techno)의 결합

테크노-실존 규범(Techno-Existential Norms, T-EN)은 AI,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 생존(Existential)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거나, 반대로 생존을 보장하는 안보 및 주권 문제를 다루는 규범적 프레임워크입니다. 이 개념은 단순히 기술 개발의 촉진이나 산업 정책을 넘어서, 기술 자체가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2025년 브뤼셀 지정학연구소(Brussels Institute for Geopolitics)는 '기술 주권(Tech Sovereignty)'을 '국가가 자국의 법률, 필요, 이익에 부합하도록 핵심 정보통신 기술 인프라를 독립적으로 접근, 개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T-EN의 핵심 원리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즉, 기술 주권이 없으면 국가 주권도 없다는 것입니다.


1.2. T-EN의 기원: 지정경제적 분열과 기술 주권의 대두

T-EN이 등장한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의 구조적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지정경제적 분열(Geo-Economic Fragmentation)의 심화입니다. 2025년 NATO 의회는 "세계 경제가 정책 주도적 글로벌 경제 통합의 역전 패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간 지속되어 온 자유무역 질서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경제(Economy)와 안보(Security)의 영역이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더 이상 안보가 기업 경영과 무관하다는 시각이 사라지고 안보가 곧 기업 생존의 핵심 요소가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글로벌 무역량은 전년 대비 12% 감소했으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하락폭입니다. 동시에 "동맹 국가 내(friend-shoring)" 무역은 23% 증가하여, 지정학적 진영에 따른 무역 재편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 기술 주권(Technology Sovereignty)의 실존적 인식입니다. '기술 주권'은 더 이상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는 국가 생존 조건이자 새로운 시대의 주권으로 인식됩니다. 이는 기술 외교와 R&D 투자를 국가 생존 전략의 중심 요소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AI, 데이터, 반도체와 같은 핵심 기술에서 주권을 상실하는 것이 곧 '국가적 재앙(데이터 주권 상실, AI의 군사적 오용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T-EN을 형성하는 실존적 동력으로 작용합니다.

2025년 유럽연합(EU)은 Critical Raw Materials Act(핵심 원자재법)를 통과시켜 반도체, 배터리, 재생에너지 분야의 핵심 광물 70%를 역내에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미국의 CHIPS and Science Act(2022)는 520억 달러를 반도체 국내 생산에 투자하며, 중국의 "Made in China 2025" 전략은 10대 핵심 산업에서 자급률 70%를 달성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모두 기술 주권이 21세기 국가 안보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반영합니다.


1.3. '봉쇄 및 차단' 규범으로의 변질

T-EN은 보편적 합의를 추구하는 대신, 가치 동맹국 간의 폐쇄적인 기술 블록 형성을 통해 빠르게 구체화됩니다. 이는 미국이 글로벌 가치사슬(GVC) 배제, 교역/투자 단절 등 '봉쇄전(Containment Strategy)'을 수행하며 가치 공유국 간 기술동맹을 통해 기술 패권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과 일치합니다.

2023년 10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첨단 반도체 수출 통제는 이러한 봉쇄 규범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 조치는 중국의 AI 개발 능력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해 7나노미터 이하 첨단 칩과 관련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중국은 2024년 희토류 원소인 갈륨(Gallium)과 게르마늄(Germanium)의 수출 제한으로 맞대응하며, 기술 냉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T-EN은 다음과 같은 규범적 이중 구조를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동맹 내에서는 미국, EU, 일본 등 우방국 간에 AI 거버넌스, 핵심 기술 공급망, 디지털 무역 표준 등에서 T-EN을 사실상의 국제 표준으로 완성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IPEF), AI 거버넌스 소다자 협력이 대표적 예입니다. 반면 비동맹국에 대해서는 '봉쇄 및 차단'의 성격을 강하게 띠며, 특정 국가(예: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투자 심의, 기술 이전 제한 등 규제 리스크를 일상화하는 규범으로 작동합니다.


2. T-EN 시대의 경제학적 함의: 실존적 리스크의 규범화

T-EN은 단순히 안보 분야의 이슈를 넘어, 국제 경제 및 기업 경영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2026년 국제 사회는 T-EN에 의해 촉발된 '기술 주권 확보 비용'과 '규제 리스크'라는 이중의 경제적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1. 규제 리스크의 일상화와 공급망 이중화

T-EN의 상시적 발동은 기업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규제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는 특히 반도체, AI, 데이터와 같은 핵심 기술 분야에서 수출 통제, 투자 심의, 기술 이전 제한 등으로 나타나며, 기업의 혁신 속도와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2025년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제한 조치가 2020년 대비 340% 증가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특히 기술 분야에서의 제한 조치는 전체의 67%를 차지하며, 이는 T-EN 시대의 규제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리스크는 곧 공급망의 이중화 압력으로 작용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편입 압력을 강화 받으며 중국과의 공급망 단절 또는 이중화를 가속화하도록 요구받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4~2025년 동안 미국 텍사스와 인디애나에 총 40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했으며,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한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일환입니다. 초기에는 투자 비용 상승 및 효율성 저하라는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및 우방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안전 프리미엄(Safety Premium)'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2025년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은 공급망 이중화로 인해 평균 15~22%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만, 이를 통해 지정학적 충격으로 인한 사업 중단 리스크를 60% 이상 감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등 전략적 산업에서는 이러한 안전 프리미엄이 기업 가치 평가에 직접 반영되고 있습니다.


3. T-EN이 요구하는 실존적 대응: 규범적 피로감 속의 적응

2025년 대한민국 사회는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이 국내 사회의 구조적인 취약성(저출산·고령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수용되고 있으며, 국제 규범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와 '불안'이라는 사회적 현실이 대립하는 괴리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78%가 지정경제적 불확실성을 최대 경영 리스크로 꼽았으며, 중소기업의 경우 89%가 공급망 재편에 따른 비용 부담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3.1. 한국 사회의 수용: 생존형 규범 적응(Survival-Oriented Norm Adaptation)

2026년 한국 사회는 T-EN을 생존을 위한 필수 규범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생존형 규범 적응'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는 국제적인 AI 규범 논의가 단순한 기술 개발 촉진을 넘어 '리스크 거버넌스(Risk Governance)'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합니다.

첫째, 기술 주권 확보의 내재화입니다. 한국 사회는 AI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자 안보 측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공감하며, AI 패권 확보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강화하는 움직임에 동참할 것입니다.

둘째, 이중적 적응(Dual Adaptation)입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Strategic Norm Selectivism, SNR)'의 확산 속에서, 한국은 미국의 T-EN을 생존 필수 규범으로 수용하면서도,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는 '상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선별적 통상 규범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외교적 균형 전략을 기술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가 여전히 22%(2024년 기준)에 달하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중적 적응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냉전이 심화될수록, '중립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축소되고 있습니다. 2025년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보고서는 "중견국들이 양 진영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으며, 결국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3.2. 실존적 리스크 거버넌스의 구축

T-EN 시대의 핵심은 기술의 이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술을 통한 국가적 재앙(Existential Threat)을 최소화하는 선제적인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고 도입하는 것을 넘어,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정적 결과를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첫째, 기술 주권의 제도적 보장입니다. 국가 AI 전략을 군사·안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AI G3 국가 도약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설계하고, 핵심 기술의 '기술 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전담 조직 및 법적 체계를 혁신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2023년 AI Governance Framework를 통해 AI 개발·배포·사용의 전 단계에서 윤리적·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했으며,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AI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둘째, 사회적 리스크 거버넌스 구축입니다. 딥페이크, 자율살상무기(LAWS)와 같은 AI의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존재하므로, 윤리적 규범과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선제적인 국내 규범 마련이 필요합니다. 이는 국제 규범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을 넘어, 국내의 건전한 리스크 거버넌스를 통해 국제 사회에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럽연합의 AI Act(2024년 발효)는 AI 시스템을 리스크 수준에 따라 4단계로 분류하고, 고위험 AI(예: 생체인식, 법 집행, 중요 인프라 관리)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기술 혁신과 사회적 안전성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한국도 2026년 상반기 중 'AI 기본법' 제정을 통해 유사한 리스크 기반 규제 체계를 도입할 예정입니다.


4. 결론: T-EN을 기회로 만드는 능동적 규범 주도국으로

2026년의 국제 질서는 T-EN을 중심으로 한 규범적 이중 구조 심화의 시대를 맞이할 것입니다. '전략적 규범 선별주의'가 국제적으로 확산될수록,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규범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며, 기술 동맹을 통한 '멜로스의 비극(Melos Paradox)' 회피를 강조받게 될 것입니다. 멜로스의 비극이란, 강대국 사이에서 중립을 택한 약소국이 결국 양쪽으로부터 배신당하고 멸망하는 운명을 뜻합니다.

이러한 실존적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능동적 규범 주도국(Proactive Norm-Setting State)'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전통적 규범의 붕괴를 '규범적 공백'이 아닌 '규범 재창조의 기회'로 인식해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기존 규범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규범을 제안하고 형성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T-EN 분야에서 우방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IPEF)나 AI 거버넌스와 같은 새로운 소다자주의적 규범 설정의 초기 단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규범적 이니셔티브(Normative Initiative)'를 확보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은 2025년 Global AI Safety Summit에서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한 서울 선언'을 주도하며, AI 안전성 분야에서 국제적 규범 형성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부, 기업, 시민 사회 모두가 '안보=생존'이라는 실존적 명제를 내재화하고, 기술-리스크 조정 주권 프리미엄(T-RSP)의 관점에서 기술 안보적 탄력성(Techno-Security Resilience)을 확보하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경주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불확실한 2026년 국제 질서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국가적 생존 전략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전략적 과제가 시급합니다.

첫째, 핵심 기술 분야(반도체, AI, 바이오)에서 국내 기술 자립도를 2030년까지 7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여 '기술 동맹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둘째, AI, 사이버 보안, 데이터 주권 등 신흥 기술 분야에서 국제 규범 형성에 선제적으로 참여하고, 한국형 모델을 제시하여 '규범 설정자(Norm-Setter)'로서의 위상을 확립해야 합니다.

셋째, 기업과 정부가 협력하여 지정학적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하는 '기술 안보 조기경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T-EN 시대는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이 변화의 물결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능동적으로 활용하여 국가적 도약의 발판으로 삼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2026년은 한국이 '규범 추종국(Norm-Taker)'에서 '규범 주도국(Norm-Maker)'으로 전환하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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