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부 개척 정신을 볼 수 있는 스타일의 아이콘
글 쓰는 사람은 여자로서 이성을 볼 때 섹시한 모먼트를 본능적으로 찾기 마련이다.
섹시 테이스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화자는 아침에 뿌린 정갈한 향수 냄새가 밤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환경에 있는 남자보다 뜨거운 태양을 품은 모래와 눈을 찌르는 바람 거기에 말을 타며 달리며 흘린 땀 냄새까지 조향 할 수 있는 남자를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섹시한 스타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웨스턴 스타일이다. 텍사스의 황무지를 달리는 그 카우보이를 말이다.
예로부터 미국 동부를 제외한 나머지 영토는 황무지 혹은 인디언과 다른 나라의 식민지였다. 아메리카 동부에서 출발의 신호탄을 쏜 미국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 매입을 이후로 서부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은 스페인령이었던 플로리다 반도 일대를 매입했고 1836년에는 멕시코로부터 독립한 텍사스가 자발적으로 미국에 합병하면서 아메리칸 대륙의 서부개척은 제대로 기세를 몰고 있었다.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변방을 향해 겁도 없이 달려가는 미국인의 개척 모험적 정신을 대표하는 단어로 프런티어라는 개념이 여기서 등장했다. 이때 아메리칸 서부 강에서 금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바람을 타고 아메리칸 전역에 퍼지게 되며 황무지와 사막이 전부였던 아메리칸 서부로 다양한 곳에서 사람이 모두 모이는 이른바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하지만 금을 기대하고 모인 많은 이민자들을 반기는 건 허허벌판의 황무지와 사막뿐이었다. 환경에 맞추어 사람들은 생존의 수단으로 농업대신 목축업을 선택했고 소를 모는 말을 타는 카우보이라는 직업이 유행했다.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카우보이의 모자를 쓰고 대선 활동을 할 정도로 카우보이는 미국을 나타내는 하나의 스타일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카우보이는 미국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멕시칸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멕시코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잔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1519년도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하여 목축업을 하며 거주했다. 원래 멕시코의 카우보이는 vaqueros라 불리며 여기서 vaca는 소를 의미한다. 그래서 말을 타지만 홀스보이가 아닌 카우보이라고 불린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그들은 가축을 돌보기 위해 목장 주인들에게 고용되어 일했다. 1800년대 중반 미국의 동서부를 잇는 철도가 생기면서 그곳까지 소를 몰고 가야 하는 의무가 더해져 카우보이는 소를 모는 전문직이 되었다.
프런티어 이름 아래 서부를 향해 무한으로 개척해 나가던 미국 곁엔 찬란한 빛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인들에게 저항하던 인디언들, 골드러시 기간을 노리고 온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낯설고 위험한 한탕주의자들 사방 천지에 득실거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과 가족, 소를 지키기 위해 카우보이의 옆구리에 총이 자리잡게 되었다. 법이나 체도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았던 시대 환경은 99도의 끓는 물에 1도를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분쟁이 일어나면 앉아서 경찰을 기다리는 것보다 옆구리에 찬 총을 꺼내 들어 서로를 향해 겨누기 바쁜 서부 시대극이 배경이 실제로 만들어졌다. 1890년대에는 서부 개척은 한물 간 사업이 되었고 카우보이와 서부 개척지의 무법자 시대가 끝나자마자 미국은 기업화 시대를 맞이했다. 너무나 빠른 발전, 물질 만능주의들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황야를 떠돌며 자유라는 사막 위를 뛰어다니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 후 19세기에 할리우드 영화들은 존 웨인, 게리 쿠퍼, 진 오트리와 같은 스타들이 주연을 맡으며 카우보이를 영웅화시키는 것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 이유로 지금의 카우보이 이미지가 사람들 기억 속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카우보이룩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가장 먼저 무엇을 살 것이냐는 질문에 단연코 부츠라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떠한 옷을 입고 있더라고 카우보이 부츠 하나가 카우보이의 분위기를 실어다가 나에게 얹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사막 위에서 말을 타는 느낌의 강한 터프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친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아야. 뾰족 카우보이 부츠
영국의 웰링턴 공작의 이름을 딴 부츠가 19세기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유입했고 산업혁명 이전에, 초기 카우보이 부츠는 디자인과 제작이 간단했기에 널리 전파되었다. 카우보이의 부츠는 평지를 많이 걷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네모난 앞 코 보다 말위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뾰족하게 만들었다. 뾰족한 앞 코는 등자에 무리 없이 들어가 말에서 쉽게 오르고 내릴 수 있고 뒷 굽을 만들어 등자에 고정시킬 수 있으며, 끈을 사용하지 않는 디자인으로 무언가에 걸려 벗겨질 가능성을 없앴다.
다른 직업군의 사람들도 모자를 쓰고, 바지를 입고, 작업화를 신는다. 하지만 우리는 카우보이라는 고유 명사를 붙여 카우보이 부츠, 카우보이 모자라고 부른다. 카우보이가 접두사가 되어서 단어 앞에 붙으면 만들어지는 러프한 느낌이 있다. 화자는 그 이유가 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장시간 말 위에서 움직임에 견뎌야 하고, 그늘이 없어 낮에는 뜨거운 햇빛과 밤에는 찬바람과 싸워야 했다. 그리하여 데님과 가죽은 그들이 선택한 원단이 되었다.
가죽
가죽은 통기성이 있고 무엇보다 찢어짐과 마모에 강하며 보온성이 있고 유연한 소재이다. 가죽 부츠는 지저분한 진흙 속과 가시덤불 위를 걸어다녀도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보장되어 있다. 가죽이라는 원단의 특성상 입는 사람의 몸에 길들여져서 부드러워지는 성질은 야생 속 무시무시한 것들도 길들일 수 있는 카우보이의 정신과도 닮아있다. 직업 정신과 그에 비슷한 성질을 가진 원단의 시너지는 강했다.
데님
린넨 캔버스라고 불리던 데님은 서양 마차, 텐트에 사용되었을 정도로 아주 튼튼했다.
이 원단이 제이콥 데이비스와 레비 스트라우스 손에 들어갔고 그들은 주머니에 리벳을 다는 아이디어를 더해 노동자들을 위한 튼튼한 작업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의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이 바지는 제작 공정이 따로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미국 안에서 가능했기에 그만큼 물건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즉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뛰어난 내구성과 빠른 공급 이 두 개가 받쳐주는데 노동자만큼 열약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카우보이들이 데님을 입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투박함, 편안함, 그리고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패션의 한 축을 담당했고, 이 옷은 일상복과 작업복 등을 통틀어 가장 미국스러움을 대표하는 원단 중 하나가 되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그런 고약한 법칙이 있지 않나.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분명 나인데, 그렇지 않은 자가 갖게 되는. 뭐 그러한 배 아픈 이야기. 뜨거운 태양 아래 법도 규율도 정립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나와 내 가족을 지켜야 했던 카우보이들이 원했던 것은 멋이 아니라 생존였다. 그들의 스타일은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고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패션 업계에서는 카우보이 무드를 담은 옷들을 런웨이에 세우며 하나의 패션으로 인정하고 그들의 가슴에 멋이라는 벳지를 달아주었다. 화자는 카우보이가 가진 정신의 거친 맛을 그들의 패션에서 맛 볼 수 있어서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