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1> Prologue

시작하기에 앞서

by 동원의 노트

'영어를 왜 배우시나요?'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정말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어린시절부터 나이가 얼추 든 지금까지.

"영어를 배우면 사고의 틀이 확장됩니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바라며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언어는 문화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와 생각을 바라보면 생각이 확장되거나, 틀을 깨는 사고가 가능해질 수 있답니다."

나는 이 답변을 하기에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 답변은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나만의 이유는 아직 찾는 중이다.


어린시절.

'Y'사의 영어학습이 인기였었나?

나는 첫 영어 학습을 'Y'사를 통했었다.

그 때 나는 영어 학습을 굉장히 좋아했었다.

친절한 선생님. 직접 참여하는 형식의 수업은 어린 나를 몰입하게 만들어주었다.

열심히 배웠다. 그 때 배웠던 동요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있다.

"row row row a your boat, gently down the stream" 하며, 지금도 가끔 흥얼거린다.


당시 'Y'사의 영어 학습은 카세트 테이프에 내가 말하는 것을 녹음하여 발음까지 교정하는 학습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좋은 영어 학습법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녹음을 해 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알 수 없다.


선생님은 나에게 항상 테이프를 사용해서 녹음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당시 나는 정말 많이 어렸다.

초등학교 1학년? 그 보다 어렸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공테이프를 이용해서 녹음을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반쪽짜리 학습만 계속해서 진행해나갔다.


이따금 엄마와 선생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몇번 들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알 수 없다.

'Y'사 교육이 저렴한 것이 아니었을텐데, 굳이 반쪽짜리 학습을 고집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니.

나는 영어 숙제를 할 때면 혼자 밖으로 나가 녹음할 수 있는 테이프를 찾아 헤맸다.

당시엔 공테이프라는 개념도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물어봐도 명확히 해결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공테이프라는 것을 사용해서 녹음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는 공테이프를 절대 사주지 않았다.

당시 생각하면, 천원보다 높은 가격이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 물가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정도였나?

지금도 궁금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의 첫 영어는 괜히 눈치보이고, 잘 모르지만 혼자 헤쳐나가야하는 유형의 과목이었다.

그리고 'Y'사와의 동행은 점차 뜸해지다가, 어느새 완전히 끊겨버렸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영어 난이도가 상승하자, 나는 곧바로 흥미를 잃었다.

그리곤 중학교 시절 내내 거의 30점 밑을 나돌았던걸로 기억한다.

관심도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른 영어.

아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업 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아예 모르겠고, 혼자 보완하자니 무엇을 먼저해야하는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영어점수는 10점대였다.

나는 영어수업 시간엔 책상밑으로 만화책을 펼치곤 했었다.

수준별 분반을 운영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내가 다시 영어 공부에 눈을 돌린 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후 였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니 학교가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었다.

친구들은 성적과 대학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워지는 것이 싫었다.

나는 오직 어울리기 위해 펜을 들었다.

항상 배우는 입장에서만 있을 순 없었다. 나도 무언가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때부터 나는 미뤄둔 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정말 좋았다.

그 당시에 우리학교에서 1,2위를 다투는 정말 공부 잘하는 친구가 옆에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옆에서 많은 자극을 주었다.

공부를 잘하는 애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설명을 정말 짧고 간단명료하게 해준다.

그 짧은 설명을 갖고 내것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중학교 때 교과서와 학습지를 친구들한테 부탁하고, 길거리에서 줍고, 책방에 들러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비단 영어 뿐만이 아니었다. 전 과목이 그랬었다.

나는 순식간에 공부하느라 바쁜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펜을 들었으니, 친구들 앞에서는 항상 여유있어 보이고 싶었다.

앞에선 공부를 별로 안하는 것 같지만 뒤에선 엄청 열심히 하는 이중생활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다른 과목들은 다행이 노력과 시간만큼 성적이 조금씩 올랐다.

그런데, 영어는... 점수에 변화가 없었다.

내 기억에 성적과 관련된 기억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는데, 영어 성적이 오히려 떨어졌을 때다.

나는 하루에 단어를 100개씩 외웠다. 단어장으로, 학교 수업으로, 자습서로 세상 모든 영어를 외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런데도... 안오르더라.

혼자 집에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영어 성적은 끝내 오르지 않았다.

대학진학을 앞둔 나는 초,중,고시절 공략에 실패한 영어를 대학에서 배운다면 정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부분만 보완하면 세상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영어영문학과는 영어에 관심있고, 잘하는 친구들이 오는 곳이었다.

나는 아직도 첫 날 전공수업에서 교수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그 말.

하지만,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그 말에 크게 좌절하고 영어영문학과인데, 영어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술자리와 대외활동에 전념한 나의 대학생활시절.

후회와 불만은 없었으나, 졸업할 때가 되자 사회로 나갈 실력이 없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다.

'영어를 못하는 영어영문학과 학생'

항상 웃으며, 나는 다른 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떠벌렸지만 나도 별볼일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대외활동 중 봉사관련된 활동을 정말 많이 했었다.

국제구호에는 영어가 필수였는데, 대외활동에서 만난 다른 과 친구들의 높은 영어 성취도를 보는 것도 자극이 되었다.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토익공부를 병행했다.

목표는 만점.

이 때 나는 내 영어 학습의 한계를 스스로 체감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모두 암기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붙었고, 그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기존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하나의 강수를 두었다.

영어로 할 수 있는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따내자.

외우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직접 써먹는 공부도 같이하자.

영어적 두뇌회전을 활성화시키자라는 나만의 큰 뜻을 품고 말이다.

토익과 Opic을 같이 준비하기로 마음먹고, 같이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Opic은 배우기가 어려웠다.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토익은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가능했지만, Opic은 과외를 이용해야 했다.

공부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었고.

나는 공부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하루 12시간씩 열심히 일을 하며 남은 시간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혼자 공장에서 영어로 중얼거리며,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거의 반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당시 만난 선생님들도 나한테 정말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토익선생님은 항상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셨고, Opic선생님은 나에게 영어의 재미를 붙이도록 노력해주셨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도전한 어학 시험. Opic

첫 시험으로 말귀가 터야 한다는 조언에 따라 봤던 시험에서 나는 IM2가 나오고 말았다.

얼마나 충격스럽고 좌절스럽던지.

나는 토익시험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우습게도 당시 나는 학원에서 모의 토익을 보면 점수가 상위권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토익시험을 노골적으로 피하면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다행이 Coivd-19 사태가 발발하며 전국의 토익시험이 취소가 되더라.

그 사태를 핑계 삼은 나는 토익책을 덮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영어는 내게 끝내 정복하지 못해, 내가 도망쳐버린 벽이었다.


다른 길을 모색하던 나는, 거의 1년쯤 근무하다가 배웠던 영어가 아까워서 토익시험을 치뤘다.

점수는 720점.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라기엔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

마음이 쓰라렸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점수를 확인하고 영어에 미련을 버렸다.

수년간 나는 영어와는 전혀 무관한 길에 서 있었다.


"너 영어영문학과 출신이라며?"

하지만, 학벌이라는 내 인생 흔적은 짙게 남아있었고, 누군가 그 흔적에 빛을 비추었다.

심장이 시큰거렸다.

"그럼 아이들한테 영어도 가르칠 수 있나?"

아이들이라...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동안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서점으로가서 중학생들의 영어 학습서를 보았다.

다행이, 알아들을 수 있겠더라.

나는 대답했다.

"준비할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말을 꺼낸 상대는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나는 덜컥 아이들을 먼저 만나게 되었고, 대상은 고등학교 2학년.

중학생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시련이 들이닥쳤다.

하기싫었지만, 하기 싫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잘 말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만났을 당시에 안할 것이라던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나와 과외를 진행하겠다고 수락을 해버린 것이었다.

나는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누군가 나를 믿는다는 것. 나는 막중한 책임을 느꼈기 때문에.


느닷없이 영어공부가 시작되었다.

나는 문법서, 문제지, 단어장들을 한번에 구입해서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하늘에 뜬구름같았던 영어 문법이 머리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감이 잡힌다는 점이었다.

내가 하지 못했던, 내가 습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왜 내가 잘 안되었는지가 느껴졌다.


정말 운이 좋게도, 지금 나와 같이 영어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내 수업이 재밌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 수업은 암기보단 이해와 더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내가 혼자 그렇게 영어를 정복하겠다고 나섰던 길이,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았음이 느껴져 얼마나 다행이라는 느낌이 드는지...


나는 영어에 졌고, 또 돌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정복하려거나 이기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천천히 탐구하고, 음미할 생각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이 걷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나는 아직 영어를 배워야하는 나만의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나와 같이 걷는 사람들은 꼭 본인의 이유를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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