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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재 Sep 12. 2023

거품 같은 인생

샤르댕의 '비누거품'과 금강경 사구게

장 시메옹 샤르댕 Jean-Baptiste-Siméon Chardin, 비누거품(Les Builles de savon), 캔버스 유화, 93 x 73.5 cm, 1733-1734


한 순간,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고르게 만드는 그림이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 소년이 두터운 벽돌 난간에 기대어 긴 대롱으로 비누 거품을 불고 있다. 오른 팔꿈치 옆에는 비눗물이 든 작은 유리컵이 놓여 있고 소년의 머리는 가지런히 묶여 뒤로 넘겨져 있다. 대롱을 쥔 오른손과 이마에는 밝은 빛이 부서져 내려 어둡게 칠해진 벽돌 난간과 대조를 이룬다. 그림의 오른편에서는 모자를 쓴 작은 꼬마가 비누 거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서 발돋움을 하고 있다. 갈색을 띤 재킷의 옷 주름, 하얀 셔츠의 색조는 조화롭고 풍요롭게 채색되어 있으며 그림 속 인물과 정물들은 의도된 균형감으로 잘 배치되어 정교한 구성미를 느끼게 한다.


비누거품을 불고 있는 아이는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으로 보인다. 나이가 더 많은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물려받아 입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외투의 옷감은 실크나 리넨처럼 그리 고급 소재는 아니다. 더욱이 터진 소매로 삐어져 나온 셔츠를 볼 때, 소년은 이 옷을 계속 입기에는 이미 몸이 많이 커 버린 것 같다. 비록 몸에 맞지 않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기는 하나, 소년은 마치 철학자와 같은 진지한 표정과 기품을 지녔다. 옆에 있는 작은 아이가 쓴 삼각모자는 이 그림에서 ‘비누 거품’과 함께 아이의 삶과 호기심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소재다. 


1733년에 제작된 <비누거품(Les Builles de savon)>은 장 시메옹 샤르댕 Jean-Baptiste-Siméon Chardin(1699-1779)의 주목할만한 그림 중 하나이며, 정물화에 대한 그의 숙달과 놀라운 디테일과 깊이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구성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순수함, 덧없음, 그리고 찰나의 젊음의 본질을 담고 있다. 샤르댕은 이 작품에서 인물을 사각형 모양의 돌로 만든 창문에 배치하였는데, 창문 난간 밖을 향해 걸친 팔과 머리는 큰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키 작은 어린 소년의 모자에서 또 다른 작은 삼각형이 반복된다. 구성의 초점은 전체 캔버스에 덮여있는 따뜻한 갈색 색조의 바탕 위에 방금 만들어진 동그란 형태의 투명하게 반짝이는 비누 거품으로 수렴된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몰입감이다. 이마와 손등에 부서져 내리는 빛에 대비해서 화폭의 외곽과 배경은 짙게 어두운 색조로 채색되어 있는데, 이러한 극단적인 대조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비누 거품이 터지는 것을 염려해 천천히 대롱을 부는 듯한 청년의 동세는 긴장감을 사뭇 고조시킨다. 비눗방울을 만들기 위한 소년의 뜨거운 관심과 집중력이 잘 느껴진다. 또 견고한 무게감을 전하는 갈색조의 배경과 단단한 돌로 만든 창틀, 그리고 잠시 후 터져 사라질 비누거품이 연출하는 대조는 감상자의 시선을 더 깊이 그림 속으로 끌어들인다. 너무나 가볍고 부서질 듯 연약한 얇고 투명한 둥근 비누 거품을 통해 비쳐 보이는 그림 속에서 가장 무겁고 단단하게 지속되는 수평의 돌 선반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비누거품은 빛과 반사의 유희를 포착하면서 마치 마술처럼 반짝거린다. 빛과 그림자의 관계에 대한 샤르댕의 이러한 관심은 순간의 덧없음에 대한 감각을 더해주고 있다. 비누거품의 반짝이는 표면은 샤르댕 특유의 거장다운 솜씨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으나, 한껏 부풀려진 그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모습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이 언제라도 갑작스럽게 닥쳐올 수 있음을 암시한다. 비누거품은 반짝이고 아름답지만, 건드리면 터질 듯 위태하여 무심한 운명 앞에 놓인 연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다. 


봄날 향기를 뽐내며 빛나는 싱싱한 꽃이 / 어느덧 시들고 / 아름다움은 하릴없이 사라지네.

인간도 이와 같아서 / 설령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 빈 숨으로 부풀린 비누거품처럼 가뭇없이 꺼져가네


16세기 네덜란드의 작가 에스티우스(F. Estius, 1542~1613)는 이렇게 삶의 덧없음을 노래했다. 또한 일찍이 고대 로마의 인문학자 바로(Marcus Terentius Varro, BC116~BC27)는 ‘Homo bulla est’ (인간은 물거품과 같은 존재)라고 하여 인생의 무상함을 거품에 비유한 바 있다. 이처럼 비누 거품은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바니타스(Vanitas), 즉 삶의 덧없음과 허무를 상징하는 시각적 알레고리로 사용되어 왔다.


샤르댕은 비누거품을 여러 버전으로 반복해 그렸는데, 이 그림은 그중 첫 번째 작품이다. 샤르댕의 <비누 거품>은 프랑스 패션디자이너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자크 두켓의 컬렉션이었다가, 1912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300,500프랑에 팔렸다. 현재 이 작품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박물관과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에도 후기 버전이 소장되어 있다.


필치와 색채, 화풍은 물론 샤르댕 자신의 고유하고 독특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으나, 그 형식과 주제 면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 전통의 영향이 짙다. 이 주제는 짧게는 이전 시기의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네덜란드 판화에 기인하나, 역사는 보다 오래되었다. 그러나 샤르댕의 그림은 앞선 세기의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만큼 상징과 알레고리를 내세워 지나치게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거나 교훈을 주고자 설교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며, 있는 사물과 사람들의 일상 장면을 포착해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1699년 파리에서 가구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샤르댕은 역사화가인 피에르 자크 카즈(Pierre-Jacques Cazes) 와 노엘 니콜라 쿠아펠(Noel-Nicolas Coypel)의 문하에서 도제적 미술 수업을 받았다. 샤르댕은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독창적인 그림을 그렸던 화가로 평가받는다. 1728년 발표한 〈가오리 La Raie〉는 그로 하여금 화단의 주목을 받게 한 대표작 중의 하나로, 이를 통해서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Academie Royale de Peinture et de Sculpture)에 들어갔다. 아카데미에서 샤르댕을 ‘동물과 과일에 재능 있는 화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그는 꽤나 인정받는 작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샤르댕은 여러 장르 중에서 당시 크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정물’을 미술의 주요한 한 장르로 이끈 선구자적 화가로, 에두아르 마네, 폴 세잔, 앙리 마티스 등을 비롯한 후세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장대한 스케일의 역사화, 종교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였던 고전주의, 바로크 양식이나 탐미적 표현 방식의 귀족들의 한가한 유희 등을 그렸던 로코코 시대의 일반적인 화풍과 달리, 서민과 중산층의 조용한 일상을 작품으로 남겨 미술사에 특별한 족적을 남긴 화가이다.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국가의 융성을 이루었던 루이 14세 시대 이후, 프랑스 귀족 사회의 취향을 반영하던 미술양식이 바로 로코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살롱, 아카데미, 교양인과 그 사교술 등, 근대 프랑스 문화의 여러 특징들이 나타났으며, 예술에서도 이들의 미적 감성을 반영한 다양한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귀족 사회의 남녀들의 놀이와 사랑을 주제로 한 '갈랑트리(우아한 축제)'를 화려한 색채로 그렸던 와토, 프라고나르, 부세 등의 로코코 거장들의 장식성 강한 작품들과는 다르게, 서민과 중산층의 묵묵한 일상을 조용하고 소박하게 담은 샤르댕의 그림은 여타의 로코코 시기 작품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샤르댕의 친구였던 드니 디드로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상당수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 나는 다른 눈이라도 빌려서 써야 할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샤르댕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는 태어날 때 가지게 된 눈만 가지고도 충분히 좋을 것처럼 느낀다.” 아마도 디드로의 이 언급은 역사화, 종교화와 같은 기존의 그림들은 묘사되는 대상을 매개로 하여 어떤 거대하고 영웅적인 서사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라면, 샤르댕의 그림은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사와 담담한 삶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일 게다.


약 200여 점 정도의 작품만을 남긴 샤르댕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꼼꼼히 제작하던 작업방식 탓인지 다작의 화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에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오십 여 년간 활동하며, 만 여든의 나이로 루브르 근처에서 세상을 떠난 화가가 그린 삶의 흔적이 온전히 담겨 있다. 샤르댕의 자화상에 대해 ‘안경 너머 흐린 눈은 많이 보고,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해 본 눈’이라고 한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샤르댕은 화면을 구조적으로 단순화시키고 대상으로서의 사물과 정경 그 자체가 전하는 순수하고 단단한 진실을 담고자 애썼다.


〈비누거품>은 샤르댕이 서른 중반에 그린 작품으로, 갓 결혼하여 딸 마그리트-아그네스와 아들 장-피에르가 태어난 후였다. 겨우 걸음마를 떼며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아버지가 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붓질을 하였을까? 어쩌면 이 그림, 〈비누거품〉속 인물은 그림을 그릴 당시의 실제 모델이라기보다는, 작가의 내면세계에서는 그 자신과 아들의 초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들 장-피에르는 자라서 아버지에 이어 화가가 되었다. 그는 당시의 화가 지망생들이 동경하던 아카데미의 로마상을 획득하고 이탈리아 유학까지 떠났으나, 결국 베니스의 운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다. 샤르댕이 죽기 7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죽음과 삶의 허무를 엄숙하고 절제된 필치로 그려내던 화가의 아들은 베니스의 밝은 햇빛 아래에서 마치 그림 속 반짝이는 비누거품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샤르댕의 그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삶은 이토록 조용하고 아름다운 일상의 단편적인 장면들과, 이미 예정되어 있지만 그 언제일지 알 수 없는 무거운 파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부풀어 오른 반짝이는 비누거품과 같다. 무거움과 가벼움, 지속과 소멸, 존재와 부재, 고통과 행복 사이에서 우리는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봄날의 꽃도, 나비도, 눈부신 햇살도, 바람도, 첫사랑도, 반짝이던 어린 시절도 한 때의 꿈처럼 지나간다. 


 <비누거품>은 어린이의 놀이를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가장 단순한 순간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이기도 하다. 샤르댕은 스쳐 지나고 매일 반복되기에, 하찮게 느껴지는 의미 없는 일상 가운데, 깨어있는 순간의 고요와 잔잔한 평화를 그렸다. 덧없는 일상을 엄격한 조형성과 독특한 시적 영상으로 탄탄하고 치밀하게 그려낸 샤르댕의 〈비누거품〉은 우리를 고요한 성찰의 순간으로 이끈다.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으며

이슬 또는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금강경 사구게 (金剛經四句偈)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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