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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9일 식도락 음식 일기

우리를 기다리던 엄마와 된장찌개

by 모모 Feb 20. 2025

한참 늦은 오후

건널목을 다 건널 때쯤

파란색 신호등이 깜빡거리면서 다음 신호에 안전하게 건너라는 음성 안내가 들렸다.

그때  '안 돼요~~ 빨리 집에 갈 거예요'라며 다소 장난기 섞인 남성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작은 배낭을 멘 60대쯤 돼 보이는 남성 두 분이 내 앞을 지나 뛰어가고 있었다.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나왔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아스라이 먼 내 유년의 기억이 아저씨들의 뒤를 쫓아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저 아저씨들을 기다리는 집(가정)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 본다.

문을 열면 따뜻한 온기가 찬 몸을 안아 주고

집에 있던 가족들이 방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

그리고

부엌에서는 배고픔을 재촉하는 맛있는 냄새가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있고

아저씨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바깥 이야기를 식탁에서 쏟아내겠지.


길을 마저 걸으며

어릴 적 나를 따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늘 바쁜 엄마는 농한기인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맞이한 기억이 더 많았고 아주 드물게

엄마가 집에 있는 날에는 대문에서 직선거리에 있는 부엌문이 항상 열려 있었고

엄마가 집에 계시다는 것이기에 발걸음이 허공에 떠서 갔다.

그런 날에는 우리의 밥상에 맛있는 것들이 많이 올라왔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자식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앞앞이 옮겨 놓아 주셨다.

그럴 때면 세상살이(?)에서 생긴 생채기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지친? 몸으로 집에 갔을 때 엄마가 집에 없으면

다시 나와서 집 주위를 배회하던지 아니면 밭으로 가서

엄마가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던지 아니면 일손을 돕기도 했다.

그럴 기분도 아니면 방으로 들어가

엎드려 있다가 잠이 들었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목소리에 깨곤 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나는

엄마가 없는 집은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과

 '집에 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말로

'엄마한테 갈 거야'와 같은 맥락이었다.

집에는 엄마가 계셔야 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아들과 딸들은 

본인들이 살고 있는 이 집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밖은 아직 찬바람이지만

호미를 들고 밭으로 향했다

냉이 된장찌개를 찐하게 끓여서

콩나물 무침, 미역나물 그리고 꼬막을 넣어

비빔밥을 해 먹이고 싶어 냉이를 찾아 떠났다.

이 추위에 냉이가 올라오기는 했을까?

다행히 한 번 끓일 양은 되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먼저 된장찌개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해 둔다.

여기  사진에는 없지만 우리 집 된장찌개에 필수적으로

꼭 챙겨 넣는 재료는 방아잎이다. 우리 식구들의 방아잎 사랑은 유별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미리 준비해 둔 육수에

직접 담근 된장 크게 한 스푼과 고춧가루 반 스푼, 무를 넣고 끓인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재료를 넣을 때는 익히는데 시간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리는 재료를 먼저 넣는다.

냉동해 둔 재료들은 해동을 시키면 허물거리니  끓을 때 바로 넣어준다

나머지 재료를 차례로 넣은 후 간을 맞춘 후 방아잎을 넣는다. 

이때 생콩가루를 넣으면 더 찐하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된다.(살짝 뚜껑을 닫고 끓여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팔팔 끓이면서 위에 뜨는 거품은 걷어낸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이름하여 취준생인 딸을 위해 

큰 그릇에 아삭한 콩나물 무침, 살짝 데쳐서 무친 미역나물 위에 갓 지은 밥을 푸고

그 위에 꼬막 무침을 올린 후 참기름, 통깨, 냉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넣고 비볐다.

봄이 내 입 안으로 들어왔다.


**가을에는 흔하지만 푸성귀가 귀한 겨울에는 요긴하게 쓰이는,

맛과 영양이 풍부한 풋호박, 청양고추, 방아잎, 대파 등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냉동실에 보관하면 겨우내

간편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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