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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점순 Jun 15. 2023

수례바퀴 밑에서

수레바퀴 밑에서

평생 차렸던 밥상이다. 올해는 일 년 동안 얼굴을 마주 보면서 차렸다. 느닷없이 다가온 여유는 남편과 나에게 탈출을 하게 만들었다. 미련 없이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시댁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수레바퀴가 맞물리듯 쉼 없이 달려왔건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모든 걸 멈추게 하였다. 스치는 창밖 나뭇가지에는 초록 물결이 뒤덮여가고 있다.


 


저만치 이백 평의 대지 위에 기와집 몇 채가 무덤처럼 앉았다. 시아버님께서는 칠 남매를 두셨다. 새벽부터 자식들에게 쩌렁쩌렁한 불호령을 날렸다. “이놈들아, 해가 중천에 떴는데, 게으르면 가난이 태풍처럼 몰려온다.” 서열에 따라 방 배정받은 큰동서는 안방, 둘째는 아랫방, 셋째는 문간방, 시동생과 시누이는 중간 방, 넷째인 우리 골방까지 구석구석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창고에는 나락 가마니가 성벽처럼 쌓였다. 비료부대마다 보리와 밀, 수수와 조가 담겼고, 선반 위 자루마다 흰콩, 검정콩, 팥이 넘실거렸다. 장독대 위에는 항아리들이 햇볕에 세수를 하고 반지르르 웃었다. 도시에서 가난에 쪼들릴 때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부자 같았다.


핵가족이 대세다. 가치관도 바뀌었고 음식문화도 간편해졌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끈끈한 인정이 넘쳤고, 한 지붕 밑에 칠 남매가 북적거리며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새 중에는 먹새가 크다는 말처럼 2, 30명의 세끼 먹거리가 제일 문제였다. 그것뿐이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남편이 군대에서 다친 후유증으로 희망을 잃어갔고, 거기에다 파병을 떠난 첫째 시숙과 셋째 시숙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며느리들의 한숨 소리가 굴뚝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시아버님은 나를 사랑으로 불렀다. 보물창고인 궤짝을 덜커덩, 열었다.


“새아기야, 그놈도 철이 들면 괜찮을 거야.”


나를 향해 새우 눈을 찡긋하셨다. 봉투에서 끌려 나온 것은 발그레한 오천 원짜리 두 장이었다. 쌍둥이처럼 율곡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었다. 그 돈으로 책을 빌려보면서 숨통이 트였다. 그날의 율곡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 구공탄처럼 나를 데워준 온기였다. 시아버님의 굽은 등은 앞산 뒷산 허리를 닮았다. 일요일은 나무지게에 군용담요 한 장을 얹고 증조할머니를 지고 손수레에는 손자들을 태우고 성당으로 향했다. 주중에는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실어 왔다. 자식들이 결혼해서 며느리가 들어오면 기적 같은 손을 거쳐 흙과 돌을 쌓으면 집이 되었다. 여름에는 수박, 참외를 손수레에 싣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자식들의 눈을 밝혀 주었다. 뒤채에는 소 열 마리와 돼지들이 우글거렸고, 방에서는 손주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흘러나오고, 흰 눈이 내릴 즈음 홍시는 달달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되었다. 그 옛날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내 어깨에 휘영청 걸려온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로 이사 오는 날, 시아버님은 봇짐을 메고 따라왔다. 이튿날 경로당에 가서 성당 있는 곳을 알아왔다. 그리고 당부하셨다.


“너희들 신앙생활 열심히 하여라. 천주님이 축복을 주실 것이다. 꼭 믿어라.”


내가 이삿짐 정리하는 동안 시아버님은 손자를 업고 안고 서울 구경을 다니셨다. 그리고 며칠 후 내년에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시골로 가셨는데 이른 봄에 연락이 왔다. 우리는 잰걸음으로 내려갔다. 저만치 새마을 운동으로 지붕마다 빨주노초파남보 꽃이 피었다. 평생 시아버님은 짓눌렀던 수레바퀴 같은 짐을 내려놓고 계셨다.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너는 앞으로 술과 여자를 멀리하고, 네 식구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지 말거라.”


시아버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청개구리가 되어갔다.


 


어느덧 버스는 시골집에 나를 부려놓았다. 시아버님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주인 잃은 낡은 수레가 헛간에 비스듬히 널브러져 있다. 손잡이와 바퀴는 부식되어 녹물이 흘러내렸다. 손가락을 갖다 대자 울걱 울컥 마른 고무가 떨어졌다. 시아버님은 파병 떠난 자식들의 생사가 묘연할 적에도 내색하지 않았고, 홀로 담 모퉁이에 앉아 애꿎은 담배만 뻐끔거렸다. 대가족을 일사불란하게 훈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흩어진 시간들이 소환되었다.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저녁을 준비했다. 손 위의 동서들은 밥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아기 젖을 물린다고 사라졌다. 태산 같은 설거지는 내 차지가 되니 철없는 마음에 섭섭했다. 그때마다 시아버님은 심부름을 시켰다.


“새아가. 들에 가서 나락 논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너라.”


그 말씀에 고마워서 방으로 내달렸다. 연분홍 블라우스에 빨간 미니스커트를 꺼내 입었다. 황새 같은 다리를 휙, 자전거에 올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거리를 지나자 한마디씩 날렸다. “저기에 호랑이 할머니네 넷째 며느리다.” 공손하게 고개를 한번 꾸뻑 숙였다. 황금들판이 출렁거리고 누렇게 익은 나락들이 허리를 굽혀 나를 향해 절을 했다. 논둑에 세워놓은 허수아비 팔에 매어둔 줄을 잡고 ‘훠이훠이’ 하면 새들이 ‘푸득푸득’ 날아갔다. 거북 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논에 물고를 돌렸다. 물이 콸콸 들어가고 개구리들은 개골개골 합창할 때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삼베 주머니에 메뚜기를 아기 베개만큼 잡았다. 진간장에 짭조름하게 졸여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주위를 휙 둘러본 후 헌책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동안 무협지를 읽고 집으로 왔다. 동서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울긋불긋했다. 나는 뒤에 숨겨 두었던 메뚜기 주머니를 쑥 내밀었다. 일순간 분위기가 반전됐다. “우아, 많이 잡았다.” 시아버님은, 새아기는 논물도 잘 보고 왔으니 얼른 씻고 쉬라고 하셨다. 솜이불 같은 포근한 시선에도 동서들과 처지가 너무 비교되었다. 주위의 환경이 받쳐 주어도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가 더 뜨거웠다. 남편이 건강할 때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녔다. 그러나 상처 부위가 재발한 후 삶의 의욕도 상실하고 그런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기에 나는 아득함과 불안이 겹쳤다.


 


사랑방 문을 열었다. 손때가 묻은 장롱, 책상, 옷걸이가 옛 주인을 반겼다. 나는 첫딸을 놓고 3년 후 아들을 낳았다. 한 달 후 방문 앞에서 시아버님이 잔기침을 하셨다. “으흠, 들어간다. 새아가, 순산해 주어 고맙다.” 강보에 싸인 손자를 안고 환하게 웃으셨다. 나를 향해 쓱 내민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한지에 정성껏 쓴 붓글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밝을 명明 자와 가운데 중中 자였다. 광산 김씨의 선조는 신라 시대 진흥왕의 둘째 아드님이시라고 집안의 시조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아기를 들여다보며 “그놈 참 장군감이구나!”라고 하시며 양손으로 번쩍 들어 올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셨다. “하느님, 손자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기에게는 “너는, 광산 김가 40대 손이란다. 훌륭하게 자라 만인萬人의 빛이 되어라.” 하셨다. 그 말씀을 새기고 자식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훈육을 하였다. 시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은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대청마루 밑에 댓돌이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남편은 운동선수였다. 군 작전 중에 큰 부상을 당했다. 제대한 후 직장에도 들어갈 수 없고 선수 생활까지 멀어지게 했다. 새로 시작하는 일마다 실패를 하면서 나의 인생도 전쟁과 다름없었다. 진흙탕, 자갈길을 구르며 앞서가는 큰 수레바퀴만 바라보았다. 시아버님의 팔, 다리에는 철삿줄 같은 핏줄이 뭉쳤고 휘어진 등뼈는 인생 훈장이 되었다. 냇가에서 빨래를 이고 돌아오면 당신은 군불을 지펴 놓았다. 내 마음은 벌겋게 달군 숯불처럼 따뜻해 왔다. 마당에 널린 옷들은 돌개바람에 공중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빨랫줄을 긴 바지랑대로 중심을 잡아주었다. 내 인생의 지긋지긋한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늘 중심을 잡아 준 시아버님과 의좋은 형제들이 처마 밑에 고드름처럼 매달렸다.


선걸음에 산소로 올라갔다. 풀 섶에 새들이 푸득푸득 날아올랐다. 달콤한 냉이 향이 나를 반겨주었다. 시아버님 앞에 엎드렸다. 흙냄새가 핏줄을 타고 전신을 훑는다. 생전에 잘 해드리지 못한 회한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묘지를 덮은 잡초를 뽑고 내 마음속에 우거진 잡풀도 뽑아냈다. 수레바퀴는 멈추었다.


‘아버님, 저희도 자리를 잡고 살아갑니다. 이제 걱정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내 인생의 수레바퀴도 물려 줄 차례가 되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다. 뒤에서 자갈 구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청설모 한 마리가 두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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