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내비게이션

by 최점순

늦은 나이에 운전면허증을 땄다. 동네 한 바퀴를 돌기 위해 차에 올랐다. 양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고 발로 시동을 거는 순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간신히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와 큰 도로로 진입을 했다. 다행히 서울 도로는 눈에 익었다. 신호등에 걸려 섰다 가기를 반복하며 한 달 연수를 마쳤다. 시부모님의 제삿날에 맞추어 장거리 여행 계획을 세웠다. 초행길이지만 구형 내비게이션과 길눈이 밝은 작은 동서를 옆에 태우고 출발했다. 귀를 내비 방송에 열어두고 운전대만 손에 쥐가 나도록 잡고 앞만 보아도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다.

첫 장거리 운행이라 온몸이 떨렸다. 정신을 차려도 고속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 안내 해 줄 내비게이션과 동서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동서한테 자네는 한눈팔지 말고 도로 표지판이나, 분깃점 을 잘 봄 봐 달라고 주문을 해 놓았다. 서울을 간신히 빠져나가 고속도에 올랐다.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동서가 곤했는지 갑자기 코를 드렁드렁 골았다. 온몸에 신경이 곤두서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간절한 나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로 가는 방향을 잃어버리고 갈팡질팡 차를 몰았다. 길 안내를 잘해 준 다는 내비게이션을 달았기에 철석같이 믿었지만 입에서는 “주님,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와주십시오.” 경로 이탈하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방송 멘트를 듣고 다시 목적지로 가는 길에 올랐다.

인생길을 안내해 주던 스승이 많았다.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성경 말씀은 나침판처럼 내가 가야 할 인생길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결혼을 한 후 시부모님과 여러 형제들이 한 집에서 살았다. 시부모님은 일요일 날은 가족들에게 인솔해서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처음 듣는 성경봉독은 낯설었다. 아무런 뜻도 모른 채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형식적인 전례가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른들이 걱정이 되었는지 저녁식사를 마치면 성경 책을 읽고 느끼는 대로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셨다. 그때 성경을 읽었던 습관이 어려울 때마다 나를 바르게 견인해 주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었다.

30대에 서울로 이사를 왔다. 농사짓던 젊은이들이 벌어먹고 살기 위해 서울 드림이 유행이었다. 일가친척 한 사람 없는 도시에서 살아내는 일은 하루하루가 막막했다. 아이들과 성당에 토요 미사를 드렸다. 과거에 지은 죄는 모두 용서를 받고 새롭게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세례를 받았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신다는 것은 하늘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축복이었다. 현실은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지만 매 순간 감사드리며 사는 게 즐거웠다. 어느 날 친한 자매님을 통해 성당에서 주관했던 성령 세미나를 받게 되었다. 8주간 강의와 성서 말씀을 듣다가 지나온 세월의 강을 돌아보며 회개를 하였다. 어디에서 그 많은 눈물이 고여 있었는지 샘물처럼 쏟아졌다. 그 후로 인생의 반전인 대역전이 일어났다. 성경 구절은 꿀맛이었다.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써놓았다는 듯,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낮에 읽었던 짧은 성경 구절은 아궁에 장작불을 지펴 놓은 듯이 열정으로 활활 타올랐다. 매일 앉으나 서나 입에서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수 백 번 수만 번을 주님께 사랑을 고백을 하였다. 넓은 우주의 나만의 별천지에 살면서 경험했던 기억의 창고에는 축복을 받은 매듭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런 꿈같은 세월이 흘렀다. 갑자기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1978년도 IMF, 20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쓰나미가 숨을 쉴 수 없게 밀려왔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다니던 회 사가 줄줄이 부도가 났다. 취직자리가 없으니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했다. 성경 말씀을 읽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고독한 광야의 위협 앞에서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처럼 산다는 게 생지옥이었다. 오랜 세월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말씀의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난 걸까. 어두운 긴 터널을 홀로 걷는 동안 꿀맛 같았던 성경 책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초지장도 맞들면 났다고 하는데, 어려운 혈식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과 의론 할 때마다 충돌을 하였다. 가족들이 고통분담을 하는 상황에서도 남편은 발등에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태평세월을 노래하였다. 살아온 환경이 달라 좌충우돌하는 동안 가정에 총대를 멘 어깨를 꼿꼿하게 세웠다. 입으로 한번 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야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너무 완벽해서 가족들을 더 힘들게 했던 부분도 많았다. 인생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사노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느 시점에 휴,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늘가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그때였다. 인생의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들이 스쳤고,. 성경 말씀의 내비게이션 안내 멘트를 따르지 않았고 고집스럽게 세상의 욕망을 쫓아다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태풍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뛰어다녔지만 실속은 없었다. 내가 힘들게 걸던 길에 주님도 함께 걸으셨다는 것을 조금씩 가슴으로 느껴졌다. 한 평생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지혜롭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는데 멀리 돌아왔다. 복음 말씀이라는 좋은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았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옆길로 경로를 이탈 말씀의 내비게이션은 업그레이드 한 멘트가 알려주었다.

고향역이 멀리서 손짓을 했다. 코를 골든 동서는 기지개를 쭉 켜며 일어났다. “형님 벌써 다 왔어요.” 했다. 나는 종일 고생한 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초보운전 차에 타 준 것만 해도 고마워서 그냥 웃었다. 목적지까지 오는 동안 입으로 자동 주문을 외웠던, 말이 입에 붙었다. “주님,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들은 3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6시간을 길에서 헤매다가 겨우 찾아왔지만 무사고 운전에 뿌듯했다.

인생의 훈장같이 은빛이 내려앉았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인생의 경로 이탈을 하였다. 세상에 대한 이기와 욕망이 한통속이 되어 길을 헤매 일 때마다 말씀의 내비게이션은 친절한 멘트로 안내를 해주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중에 도로 표지판을 세워 놓은 것은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먼저 간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목적지까지 잘 도락 할 수 있듯, 성경 말씀의 내비게이션은 나를 성숙하게 일으켜 세웠고, 샛길로 이탈해도 반복되는 멘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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