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 생각

by 최점순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이 맘때가 되면 혼자만의 그리움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십대에 시집을 왔다. 친정에서 자랄 때부터 철부지였다. 칭칭 시아칠남매 대가족이 사는 집은 매일 잔칫집처럼 북적거렸다. 모를 심거나 밭에 풀을 뽑는 호미질을 잘 해도 집안 살림살이는 서툴렀다. 어린 시절부터 수숫대 마냥 키와 몸만 굵었다. 여러 동서들 틈에서 시집살이 하면서 살아 낼 수 있었던 것은 시 어머님의 배려 덕분이었음을 아련하게 떠오른다.

새댁시절 꽃무늬 긴 드레스를 자주 입었다. 넓은 마당에 걸어 다니면 치마 단이 땅에 질질 끌렸다. 여러 형님들은 시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면 일사분란하게 손과 몸이 움직였다. 나는 대가족 살림을 해 본 경험이 없었고 밥을 먹는 것 까지 굼떴다. 태산같이 쌓이는 집안일을 빨리해도 하루해가 짧았다. 손윗동서들은 요령 있게 일을 척척 잘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어떤 인연이라 고부간으로 만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수께끼처럼 풀리지 않았다. 철부지 남편은 운동을 한답시고 번개처럼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뛰어다녔다. 신혼이라는 말은 빛 좋은 개살구고 고독한 시간을 견뎌 낼 수밖에 없었다. 저녁마다 시어머님은 아랫동네 사랑방에 마실 가셨다가 빈손으로 오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안에는 사방에서 보는 눈이 많았다. 우리 방은 뒤 모퉁이를 돌고 돌아야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외출한 남편을 기다리며 이제나 저제나 골목길을 서성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왱, 왱, 통행금지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오지 않았다. 나는 속을 바글 바글 끓이다가 방으로 들어와 전기 불을 탁 끄고 이불을 머리까지 푹 덮어쓰고 멍 때리고 있었다.

이슥한 시간에 문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직감으로 남편이 돌아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았다. 조금 후에 방문이 살짝 열리는 순간 달콤한 향기가 솔솔 코끝으로 날아들었다. 시어머님이 조심스럽게 숨을 내 뿜는 숨소리도 귀가에 들렸다. 남편의 구두가 없는 것을 확인한 듯 문고리를 잡고 살짝 닫았다. 어둑한데 벌떡 일어났다. 종이봉지를 펴 보니 따끈따끈한 호떡의 설탕 즙이 흘러내려 손끝에 끈적거렸다. 허약한 작은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늘 걱정스럽게 바라보시곤 했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저녁 마다 챙겨주시던 간식은 수십 년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다. 겨울에는 붕어빵이나 호떡, 군고구마, 보름달 빵, 아니면 삶은 달걀 다섯 개 등등..시어머님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봉지가 가슴을 데워주는 따뜻한 온기였다.

갓 시집온 며느리가 사랑스러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대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쩔쩔 매는 며느리 걱정이 되어서 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입이 맑아 아무것이나 잘 먹지 않아 키가 1미터 164인데 몸무게는 45kg이었다. 아마 대가족 속에 살아 내려면 무엇보다 건강하길 바라지 않았을까싶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긴 세월을 누구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가슴에 품고 다니셨던 깊은 뜻을 나는 얼마나 알고 사랑으로 보답해드렸나?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면목이 없다. 시어머님이 구순이 가까울 즘에 치매를 앓으셨다. 큰 시숙내외분이 동네 소문난 효자효부였다. 평생모시고 살아온 형님보다 더 잘 모실 형제들은 없었다. 칠남매형제들이 있어도 치매를 앓는 노모의 병수발을 교대로 해 드리지 못한 불효에 가슴을 치곤한다.

가지 많은 나무는 바람 잘 날 없듯, 시어머님은 여러 자식들이 돌아가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칠 때마다 본인의 기도가 부족한 탓이라고 하셨다. 남편의 군대 가서 다친 후유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졌다. 술통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들이 비일비재였다.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천주님이 앞으로 낳게 해 주실 거라 하셨다. 시간만 있으면 애야,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늘이 감복하도록 열심이 기도를 당부 하셨다. 신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게 해주었다. 돌아보니 어른들의 말씀대로 따르다보면 세월이 해결 해주었다. 현실적으로 어둠에 짓눌려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력하면 기도의 응답은 반드시 되돌아왔다.

창밖에 불어오는 찬바람소리에 문득 시어머님이 생각이 난다. 어느 날 꿈속에서 나를 보시고 환하게 웃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 갈수록 안개처럼 흐릿하게 사라졌다. 당신 아들이 건강하길 간절히 바라시며 기도하셨던 수많은 정성이 하늘에 닫지 않았을까. 남편은 건강을 회복하고 자식들 뒤 바라지는 물론이고, 외 손주들까지 챙기며 우리는 원앙처럼 고희를 넘겼다. 이 모든 일들이 그분이 자식들을 위한 기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어머님, 오늘 밤은 쉬 잠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찬바람 부는 날이면 생각나는 어머님이시여! 편안히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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