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이 따스하게 눈이 부신다. 오후에 책 몇 권을 가방에 넣고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름내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었던 나뭇잎이 곱게 물들인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단풍잎아 휘날린다. 내 발등에 떨어진 붉은 잎을 한 장 주워 책갈피에 끼웠다. 중년 신사가 거동이 불편한 구십 정도 되어 보이는 할머니를 양팔로 껴안고 와서 내 옆자리에 앉혔다. “이마트 갔다 올 때까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 뒤 잰걸음으로 건너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책을 보는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어머님의 얼굴이 겹쳤다. 길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아기처럼 옹알거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인사를 드렸더니 대답 대신에 박수를 짝짝 쳤다. 야윈 엉덩이를 내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분이 편하게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양보해드렸다. 길가는 사람을 보면 손뼉 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 “할머니 이것 드세요.” 손을 내밀었더니 앞니가 한두 개 남은 입술을 움직이며 고맙다는 시늉을 했다. 양손이 수전증을 앓는 사람처럼 불안불안 떨렸다. “할머님, 제가 까드릴게요.” 하고 한 알 꺼드리니 양 볼이 합죽한 잇바디로 오물거렸다.
“할머님, 연세가 몇이 십니까?” 여쭈어보았더니, 오른손은 쫙 펴고, 왼손 손가락 하나를 꼬부렸다. 짐작으로 “아하, 구십이라고요?” 재차 물으니 갈기 같은 손으로 손뼉을 치셨다. 내 나이를 묻는 시늉을 해서 칠십 세라고 말씀드리니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나저나 두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 중년 신사는 함흥 차사였다. 저녁밥 지으려 가야 하는데 할머님을 혼자 두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의 날 내를 펼쳤다. 혹시 할머니를 여기 두고 간 게 아닐까? 파출소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면 할머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걱정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손뼉을 쳤다. 큰일 났다 싶어 일어서서 아까 중년 신사가 걸어갔던 방향을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치매 어르신을 관광지에서 발견되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그런 일은 저기 멀리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 동안 별에 별에 별생각으로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 후에 중년의 신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휴, 안도의 숨을 쉬며 “할머니, 저기 오는 사람 누구예요?” 물었더니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며 손뼉을 쳤다. 그 신사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반가운 이산가족 상봉하는 장면을 방불케 하듯 꼭 끌어안았다. 턱 아래로 흘러내린 마스코를 바로 씌어 주며 할머니 오른쪽 볼에 쪽, 소리가 났다. 오래간만에 다정한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얼굴이 화근 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의심의 눈초리로 할머니를 유기하지 않았나 했던 나를 발견하였다.
중년의 신사가 할머니 손을 자기 얼굴에 갖다 대었다. 따스한 온기로 품어 주는 자상함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큰 시숙의 모습이 일렁거렸다. 시어머님은 칠 남매 자식들을 키우시며 허기질 때마다 무명 허리띠를 졸라매고 배고픔을 참았을 것이다. 푸른 소나무처럼 장성한 자식들을 볼 적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며 자랑 삼매경에 빠지곤 하셨다. 그러나 팔순이 되어서 치매를 십 년 동안 앓았다. 큰 시숙 내외가 병시중을 하다가 코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그 절박한 상황에 무엇을 했는지 교대도 못 해 드렸다. 도시에서 살면서 온갖 바쁘다는 핑계가 입만 열면 쏟아져 나왔다. 명절이나 이름 있는 날은 손님처럼 우르르 몰려갔다 돌아왔다. 치매를 앓고 있어도 시어머님은 가끔 정신이 들곤 하셨다.
병시중 들던 큰 시숙 입장에서 생각하면 형제들이 야속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들어내 놓고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긴 세월 동안 어머님을 목욕시키고, 식사수발들고,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한 탯줄에 난 형제들이지만 제각각이라서 속으로 주판알을 두드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맏형님이 부모님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았으니 모시는 것이 당연시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시어머님이나 시숙님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부모는 열 자식을 키워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모시기가 어렵다는 말이 맞았다. 옹색한 변명 같지만 결혼한 딸이 년 연생 셋을 낳고 맞벌이하는 동안 손주들을 키워주었다. 여러 형제들도 다양한 사정이 있었기에 서로 의논이나 한 것처럼 돌아가며 모시자는 말을 못 했다.
공원의 푸른 숲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손뼉 치는 할머니를 모시고 일어서는 중년의 신사의 따뜻한 마음이 부러웠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혈기가 왕성한 자식들이 돌아가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면, 해결사처럼 그 수습은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저 두 분의 모습은 큰 시숙이 노모를 모시며 지으셨던 환한 표정을 너무 닮았다. 내 눈에서 눈물이 핑 그래 돌았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부모는 자식들에게 바보가 되는 것일까. 그 시대에 노후를 준비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오직 자식들이 건강하고 사회 일원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을 것이다. 할머님을 유모차에 태우고 밀고 가는 중년의 신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난날 잃어버렸던 그리움을 몰고 나타난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