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성당 가는 오르막길에서 오래전에 세 들어 살았던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들을 만났다. 그분은 세월을 비켜갔는지 고운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양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아주머니, 지금 어디 갔다 오세요.” 성당에서 9시 미사를 드리고 내려오는 중이라고 했다. 아, 오랜 세월 그분들을 위해 바쳤던 내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셨다는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흘러간 40년 전이 소한되었다. 서울로 이사 온 지 1년째 세 들어 살던 주인이 방세를 이백만 원을 올렸다. 돈이 없어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 아주머니를 따라 방을 보러 갔는데 주인이 좋아 보였다. 큰 방 하나를 중간에 미닫이를 막은 방 두 개로 세를 얻었다. 그 집에도 우리 아이들 또래가 있었다. 딸과 아들이 장난이 심해 집주인 눈 밖 나면 엄동설한에 쫓겨 날 수 있기에 조심스러웠다. 미리 입을 막기 위해 설, 명절에 소고기와 설탕 3kg를 선물로 드렸다.
그때는 아이들 세 명이면 방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는 지인은 이사 갈 주인이 아기 몇 명이냐고 물으면 두 명이라고 속이고 한 달 뒤에 막내를 데려왔다고 했다. 그런 말을 숨죽이며 나누던 시절이었다. 시골 갈 볼일이 생겨 당일치기로 내려갔다가 막차를 타고 밤중에 돌아왔다. 네 살짜리 아들과 7살 딸이 엄마를 보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다. “무슨 일이냐? 엄마가 너무 늦게 와서 그래.” 딸이 고개를 도리도리 질을 했다. “동생하고 방에서 놀고 있는데, 주인집 오빠가 맨발로 쫓아와 방문을 열어젖히며 너희들 꼼짝하지 말라고 했다며 울먹였다.” “애들아, 너희들이 시끄럽게 놀아서 형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어서 야단쳤겠지.”다음부터 조용조용하게 놀라며 타이르고 넘어가려는 참이었다.
단독주택 공동화장실은 주인과 세입자가 함께 사용했다. 아기들이 하루 종일 오줌이 마려워도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옷이 다 젖도록 참았다며 울먹거렸다. “이 녀석들 왜, 엄마 말을 안 들었니? 아침에 조용히 놀라고 했잖아. 또 시끄럽게 장난칠 거야.” 속에 상해서 한참 야단을 쳤다. “딸과 아들이 엄마 잘 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갑자기 가슴 밑바닥에서 북 바치는 집 없는 설움을 삼키느라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앙, 깨물었다. 어린것들이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애들아 어서 목욕하고 푹 자면 된다. 딸과 아들이 곤하게 잠든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못한 부모라는 자책으로 하얀 밤을 새웠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위기는 집 살 기회였다.
이튼 날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 성당에 올라갔다. 막상 고백 소에 들어갔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긴 침묵이 이어지는 동안 신부님이 답답했는지 “자매님, 빨리 고백하세요.” 거듭 재촉을 하셨다. 나는 모기소리만 하게 저기요, 신부님, 그러니까... 어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갑자기 고백 소에 앉아 계시던 신부님이 큰 소리로 “주님이 집을 주십니다.” 헐, 너무 황당해서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절박한 위기에 집을 살 기회로 삼아야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혼잣말로 서울 집값은 한두 푼 아닌데... 신부님은 세상 물정 너무 모르시나 봐, 쉽게 말씀하시네. 대답은 시원스럽게 예,라고 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옷자락으로 닦으며 고백 소를 나왔다.
며칠 후 성당 구역장이 모임에 가자고 찾아왔다. 슬픈 마음이 가시지 않아 망설이다가 아이들 둘 데리고 따라나섰다. 한참을 꼬불꼬불한 산동네를 올라가 어느 집에 들어갔다. 방안에는 고물고물 한 아기들을 업고, 안고 가득 찼다. 쪽 마루와 마당에까지 자리를 깔고 삼십 명 정도가 모여서 한 시간 동안 구역모임을 했다. 점심은 된장찌개, 김치 밑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친자매들처럼 두런두런 호호, 하하, 밥숟가락이 입으로 연신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소심했던 나의 마음에 빗장을 풀었다. 그날 먹은 밥맛이 세상에서 가장 맛이 있었고, 행복했고, 뱃가죽이 따끔거리도록 배와 빈약한 영혼까지 사랑으로 채워졌다.
아이들 손잡고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 한분이 같은 방향이라 동행을 했다. 그분은 자상하게 말을 걸으셨다. 서울에는 언제 이사를 왔느냐, 어디 사느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정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방살로 속상했던 마음을 봇물처럼 쏟아놓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님이 걸음을 멈추고 “아하, 우리 동네 집 팔려고 내놓은 게 한 채 있는데, 그 집 사서 이사 오면 좋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뻥 뚫렸다. “할머님, 지금 머라고 하셨어요?” “방 하나 부엌 딸린 주공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아, 주님, 감사합니다.” 며칠 전에 고백 소 신부님이 “주님께서 집을 주십니다.” 드디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대로”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했더니, 순진하기는 우리 형편에 무슨 집을 산다고 난리야. 신부님이 고백 소에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니 불쌍해서 하신 말씀일 거야. 그러거나 말거니 귓전으로 흘리고 집을 선물로 받았다고 굳게 믿었다.
이튼 날부터 신바람이 났다. 드디어 우리 집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할머님이 가르쳐 준 산꼭대기로 콧노래를 부르며 찾아갔더니 외출 중이었다. 어머, 세상에 내일 꼭 오라고 해놓고 잊으셨을까. 남편 말대로 세상 물정 모르고 찾아왔나. 머릿속에서 세상의 온갖 부정인 생각만 가득 차서 돌아오는 발길이 휘청거렸다. 어젯밤을 찬미 노래로 새웠는데,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갔다. 일주일 만에 할머님을 만났다. 나를 보자 반가운 표정으로 참 잘 왔다며 손을 잡아 주셨다. 부엌 딸린 허름한 주공아파트를 보여주었다. 우리 집이 생기면 아이들이 들락거려도 자유로울 것 같았다.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각오로 친구에게 돈을 빌려 덥석 계약을 했다. 이사 나온 후 오랜 세월 전 집주인들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언젠가 그분들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몇십 년이 지났다. 나는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가고, 그분은 미사 드리고 오는 중에 만났다. 오, 신앙의 신비여, 온몸을 전율케 하고도 남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그분들과 반갑게 해후를 한 후 다음에 만나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다. 만약에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를 느끼며 집을 사지 않았더라면 마포, 용산역세권에 집 장만을 못했거나, 아니면 셋방을 전전하다가 변두리로 밀려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시련도, 축복도 주셨다. 구약성경에 아브라함은 손님을 대접했다가 천사를 만나 아들 이삭을 낳았다. 네가, 믿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