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집안에 크고 작은 어려움도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는 어린 시절 즐겁게 뛰놀던 귀소본능이 꿈틀거렸다.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평생 달걀을 양손에 쥐고 벼랑을 오르는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이런 여유로움이 내게는 호사였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아침을 상을 받아 놓고 속이 불편하다며 배를 움켜쥐고 대굴대굴 굴렀다. 노란 물까지 토하더니 눈동 자기 흐릿했다. 살아오면서 수 없이 응급실을 들락거렸지만 이번에는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는 느낌이 었다.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는 도중에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에 실려 가서 검사를 받으니 ‘급성 담낭염’ 위급한 상황이라 곧바로 대수술을 받았다. 코로나 환자들로 병실에 만원이라 일반 환자는 며칠 만에 퇴원을 하라고 했다. 이틀에 한 번씩 통원치료 다니던 중에 면역력이 바닥을 쳤다. 의사의 지시대로 약을 복용하고 정성껏 돌 봐 드려도 회복이 늦었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환자는 공기 좋은 시골에서 요양하면 회복이 빠를 수 있다는 권유를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전원주택 을 수 없이 뒤져도 마음에 드는 매몰은 없었다. 요즘은 시골생활도 텃세가 심해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이 선호하던 고향 쪽에는 친구들과 일가친척이 많이 살고 있다. 그 지역을 우선적으로 선정해 놓고 발품을 뛰기로 했다.
이튿날, 우등버스를 탔다. 삼복더위에도 남편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절벽에라도 뛰어내려야 하는 심정이었다. 부동산 사장님과 통화를 하고 현장으로 갔는데, 사진으로 볼 때는 그럴듯했는데 막상 집을 보고 나니 실망이 컸다. 집 관리를 못했는지 풀밭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허탈한 마음에 돌아올까 하다가 마지막으로 본 집에 꽂혔다. 소녀처럼 콩닥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눌렀다. 7개월 전에 60대 아주머니가 이 집을 사서 노후에 조용히 살고 싶어 깨끗하게 수리를 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팔려고 내놓았다는 말에 왠지, 나를 위새 준비 해 놓은 하늘의 뜻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이때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다른 집보다 값이 많이 비쌌지만, 그이의 요양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 한 손실도 감내할 수 있었다. 신혼집처럼 화사하게 꾸며 놓은 옵션을 포함해서 계약금을 걸고, 3개월 후에 잔금 치르기로 하였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계약서를 가방에 챙겨 넣고 서울로 왔다. 혼자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묵묵히 기다리는 동안 첩첩 산중에 구도자가 된 심정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내일이면 잔금을 치르는 날, 혹시나 복병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아 하얀 밤을 지새웠다.
조급한 마음을 남편에게 들킬 까 봐 태연한 척 움직였다. 다행히 아침에 딸네 집에 간다며 대문 밖을 나갔다. 번개같이 작은 방에 준비해놓은 짐을 챙겨 전철 5 호건 2호선으로 환승하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우등버스를 탔다. 차 안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니 늦가을에 곱게 물든 단풍잎들이 잘 다녀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부동산에서 3자 대면으로 잔금 계약서를 교환한 다음 서류를 등기소 직원에게 맡겼다. 집을 판 주인이 환하게 웃으며 “서울에서 새벽부터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따끈한 동탯국을 끓여 드시라고 준비해놓았어요.”라는 말에 그동안 쌓였던 모든 피로가 한순간에 풀렸다. 현관 비번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문 앞에서 망설였다.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낯선 상황이 실감 나지 않고 혼란스러웠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목 하고 마음 졸린 기억의 영사들이 돌아갔다. 비번 1.3.5.2 손가락으로 꾹, 꾹 누르자 띠, 띠 문을 열렸다. 그때 집안에서 창문을 통과한 노을빛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드디어, 새로 산 집에 입주를 했다. 현실에 맞서 살아 내기 위해 앞만 보고 질풍노도를 달려왔다. 가슴에 고인 흙탕물 같은 세월의 흔적을 밤새워 눈물 콧물을 쏟아 내고 다시 맑은 물을 채웠다. 욕망으로 가득 찼던 시절 남편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는데, 마음을 홀가분하게 비우니 천사였다. 옆에서 거센 비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수 없이 넘어지고 일어섰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기분이 날아갈 듯 문방구에서 빨강, 파랑 노랑 풍선을 샀다. 휴, 입으로 바람을 빵빵하게 불어넣어 “노을빛 쉼터”라는 문패를 써서 거실 천장에 매달았다.
첫날 아침은 빵, 과일을 먹었다. 새벽부터 뛰어다니느라 온 몸이 파김치가 되어 곯아떨어졌다. 새벽까지 단잠에 꿈을 꾸다가 벌떡 일어났다. 낯선 환경이라 더듬거리며 전기 불을 켜니 산허리에 걸린 달님이 싱글벙글 웃었다. 점심은 전 주인이 준비해 주신 동태로 얼큰한 찌개를 끓여 먹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오래전에 멀리 떠나신 엄마의 정을 불러왔다. 난생처음으로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기 위해 식탁보를 깔고 큰 접시에 반찬 몇 가지를 담아 놓았다. 핸드폰 동영상을 촬영하다가 옆에 있어야 할 그이가 없어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한 후 신혼의 꿈도 빼앗기고 입대한 후에는 큰 사고를 당했고, 상처가 재발하기를 반복하며 50년 동안 병원을 내 집처럼 들락거릴 때마다 가족들의 피를 말렸다. 하지만 돌아보니 행복과 시련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서 현제와 과거로, 미래의 행복의 연결통로가 되어 주지 않았나 싶었다. 노을빛 쉼터를 계약해 놓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 짓눌린 시간들은 모두 기우였다. 앞으로 나는 바쁘게 뛰어 다녀야 할 것 같다. 서울에서 보름, 시골에서 보름 둘집 살림 살이를 병행 해야 하니 , 그래도 너무 다행인 것이 주,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남편이 좋아 지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뿐이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에게 둘이서 여행 가자며 눈을 찡긋, 애교를 부렸다. 표정을 보니 싫지는 않은지 마누라의 말에 순순히 등산복 차림으로 따라나섰다. 어딘지 모르게 내 행동이 의심스러웠는지 버스 안에서 “ 설마, 죽어가는 환자를 시골로 유기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테지?” 상주라고 쓰인 우등버스를 탔지만, 종합병원의 된 몸과 마음으로 밥보다 많은 약을 복용했기에 젖 떨어진 아기처럼 불안해 보였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암말 마시고 제가 가는 곳으로 따라오면 잠자다가 집이 생깁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현미경 레인지를 비추듯이 훤하게 보였다. 시외버스가 구불구불했던 나의 인생처럼 숨 가쁘게 달려 터미널로 서행을 했다. 차에서 내린 후 심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가 입주할 집은 노년을 설렘으로 보내게 될 보금자리가 될 거니 걱정하지 말자. 좋은 일은 신속하게 판단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다. 대중교통. 병원, 약국이 문 앞에 있으니 더 말해 무얼 하리오. 제과점에서 맛있는 딸기 케이크를 샀다. 간절한 소망은 온갖 두려움을 몰아내고 꿈을 실현해 주었다. 살아온 나의 삶을 돌아보니, 인생은 기쁨과 슬픔이 잘 직조된 한필의 비단같기도 했다. 황혼을 행복하게 물들일 집 앞에서 그이의 귀에 손나 팔을 불며 나직이 속삭였다.
여보, 이 노을빛 쉼터는 당신의 위한 선물입니다.”
현관문을 열었다. 어리둥절하며 “여기, 누구 집이여.” 하마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황소 눈을 뜨고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 순간 천장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풍선을 손으로 툭 치자 두둥실 춤을 추었다. 결혼 50주년 금혼식과 입주 이벤트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우리부부는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헤에 감사 기도를 바쳤다. 때마침 하늘정원에서 뛰놀던 개구쟁이 양떼구름들이 함성을 지르며 와르르 뛰어내리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