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 변천사

맞벌이 신혼부부의 가사분담

by 최점순

조카딸에게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를 찾아뵙겠다고 한다. 남편

은 신혼부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입이 귀에 걸렸다. 다섯째 동

서가 서울로 이사 올 때 질녀가 겨우 첫돌 지났는데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했다.

한 쌍의 원앙 부부 탄생이 어제 일처럼 휙 지나갔다. 결혼식 날

우리 칠 남매 대소가들이 다 모였다. 양가 부모들이 우아한 한복

을 입고 혼주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이 닮았다. 신랑 신부가 입

장하는 순간 환상적인 멘델스존 축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신

랑이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신부의 손을 넘겨받아 단

상으로 올라갔다. 신랑의 훤칠한 외모와 피로연 손님들에게 예의

바른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시동생과 동서도 코로나로 만나지 못했던 딸과 사위 얼굴을 보

려고 달려왔다. 맞벌이하느라 바쁜데도 큰댁에 인사 온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예식장에서 하마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

던 신랑이 오늘도 여전했다.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깍듯한 예의

범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남편과 소파에서 조카딸 내외의 세배

를 받고 “열심히 살아주니 고맙다. 돈은 나중에 벌고, 자식 농사

부터 짓게.”라고 덕담을 했다. 2022년은 호랑이띠다. 용맹한 백

호의 기운을 받아 호돌이나 호순이를 안겨 달라하니 서로 마주 보

며 눈웃음을 쳤다. 집안 분위기가 화사해졌다.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리는데 조카사위가 사슴처럼 날

렵하게 주방으로 달려왔다. “큰어머님,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상을 펴놓고 접시에 반찬을 가지런히 담

아놓는다. 얼핏 보아도 많이 해 본 듯 손놀림이 민첩해서 낯설고

도 어리둥절했다. 백년손님인데 장인들의 말 시중을 들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형제간에 밀린 대화를 나누던 남편이 조카사위에

게 “자네는 100점 만점에 90점, 10점은 앞으로 더 지켜보고.”라

는 말에 가족들이 한바탕 웃었다. 옆에 있던 동서가 딸이 출근하

면 사위가 쓰레기 분리수거는 기본이고 세탁기, 집 안 청소, 요리

까지 전업주부 못지않게 잘한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또한 장인과

장모에게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하고 코로나 걸렸을 때 음식을 포장

해서 양손에 들고 달려왔다고 했다. 조카딸을 마냥 철부지로 알았

는데 신랑을 고른 안목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내 둘째 사위를 이한 듯 사랑스럽고 기뻤다. 오늘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꽃을 피우

니 딸의 신혼 시절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딸은 결혼한 지 25년이 되어간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힘이 들 때였다. 신부 혼주석에 앉아서 기다리

는데 결혼행진곡이 은행 직원의 전화벨 소리로 들려 깜짝 놀랐다.

단상에서 촛불 켜고 내려오면서 시집가는 딸을 보고도 눈물 한 방

울 나지 않았다. 낡은 주택을 재건축하다가 아파트 입주와 국가부

도가 맞물려 돈줄이 막혔다. 매일 할부 회사 직원들의 부릅뜬 눈

빛이 무서워 피해 다녀야 했다. 그런 상황이라 손님들을 어떻게

모셨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했는

데 따뜻하게 품어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딸이 선택한 신랑은 사돈집의 귀한 맏아들이었다. 위로 누나

두 명과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사돈댁이 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신神처럼 떠받들며 키웠다고 한다. 장모 입장에서는 딸을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위가 최고이지 않을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

이 황당한 말을 했다. “엄마, 시댁을 방문했는데 신랑이 밥을 먹

다가 별안간 ‘엄마, 물’ 하니까 시어머니와 누나가 동시에 벌떡 일

어나 정수기 물을 받아 주더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

는 순간 아, 지체 높은 신神을 어떻게 모셔야 하나, 딸의 앞날을 생

각하며 밤잠을 설쳤다. 사위는 불교 신자이고 딸은 천주교 신자다. 두 집안의 종교적인 차이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며 극복

해야 하는 어려운 인생의 숙제까지 안고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손주들 셋이 줄줄이 태어났다. 사위

가 아기 아빠가 되면서 신神의 신분에서 평민이 되었다. 장인, 장

모에게 친자식처럼 자식의 도리를 다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한

솥밥을 먹다 보니 모든 흉허물은 덮어지고 곱게 보였다. 이제 결

혼 25년이 되니 사위가 집 안 청소도 잘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요리도 잘하는 최고의 아빠가 되었다. 특히 삼 남매를 데리고 좋

은 추억을 만들어 준다며 외국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대견스럽

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신혼부부의 사는 모습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뜬금없이 내 신혼 시절의 한 장면까지 흑백 사진처럼 떠

올랐다.

나는 시골에서 망아지 새끼처럼 자유롭게 산으로 들로 뛰어다

니며 살았다. 50년 전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시집살이를 하

다가 아기를 데리고 친정 나들이를 갈 때였다. 요즘 생각하면 웃

지도 못할 진풍경이 벌어졌다. 시외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신

랑과 함께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멋진 양복을 쫙 빼

입었다. 구두코는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반들거렸다. 버스 정류

소에 내리면 신랑은 빈손으로 걸어갔다. 나는 색동한복을 차려입

고, 묵직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는 포대기로 아들을 둘업고 한 손에는 세 살 된 딸의 손을 잡고 힘이 부처 낑낑거렸다.

길을 걷다가 너무 힘들 때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를 던졌다. 내 말

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남편이 받아쳤다. “하늘 같은 남편인데

아기 기저귀 보따리를 들고 가면 채신머리가 있겠느냐.”라고 하

는 것이었다. 나는 불편한 심기를 친정 부모에게 들키지 않으려

고 참고 또 참아야 했다.

그런데 세월이 남편을 철들게 했다. 딸이 결혼해서 손자 셋이

태어나니 딴 사람으로 변해갔다. 마누라가 힘들 때는 모르쇠로 일

관하다가, 사위나 딸이 야근이라고 도움을 청하면 한걸음에 달려

갔다. 10년 동안 딸네 집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집 안 청소, 세탁,

요리 할 것 없이 전업주부 이상으로 척척 해냈다. 그 후 우리 집에

도 변화가 찾아왔다. 분리수거는 기본이고 청소하고, 밥하고 불고

기 맛있게 볶는 솜씨는 자랑할 만하다.

조카딸 내외는 차와 다과를 먹고 일어섰다. 황혼 부부가 되니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남편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음식물 통과 분리수거 봉지를 들고나왔다. 조카딸이 “우아, 큰아

버지도 이제 신세대이십니다.”라는 칭찬에 우쭐한 듯했다. 나는

웃음이 터질 듯했지만,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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