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발자국

by 최점순

눈 위에 나의 발자국이 뽀드득 따라온다. 산꼭대기에 있는 성당에 새벽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길이다. 오르막길을 걷다 보면 지나간 시간들이 말을 걸어온다. 80년대 남편은 군입대 후에 특수작전 중에 큰 부상을 당했다. 한달에 몇 번 씩 응급실을 들락 거렸고. 그 수발예 지쳐가던 중에 시름시름 앓았다. 어린 것들 옆에 얼마나 있어 줄지 불안불안 해서 걱정이 많았다. 그때 이 성당에서 영세받은 후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서로의 가슴에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상상의 날개를 폈다. 언젠가 자식들도 연어처럼 어른이 되어 삶의 매듭이 엉켜버려 도저히 풀 수 없을 때가 오면, 털썩 주저 않아 낙오자가 되지 말라고. 엄마와 함께 걸었던 이 길을 찾아와서 위로와 용기를 얻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발자국을 찍어 놓았다. 한 발씩 옮길 적마다 딸과 아들의 말랑한 운동화에서 삑삑이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잊히지 않도록 새겨졌다.

벌써 사십 년이 지났다. 간밤에 함박눈이 내리는 사각사각 소리에 잠을 설쳤다. 은총의 길을 올라가니 하얀 눈밭에 내 발자국만 터벅터벅 따라온다. 아이들의 앙증맞았던 발이 뼈가 굵고 튼튼하게 중심을 잡더니 운동화를 신고 다시 구두를 갈아 신으며 성장하였다. 가족이 함께 은총의 길을 걷는 동안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였고, 올바른 사유로 세상에 대한 온갖 탐욕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출가는 했다. 세월과 함께 경험의 강을 되새김질하니 덧없는 인생무상함과 뿌듯함이 교차하며 울컥거린다.

오늘만이 나에게 최고의 시간이다.라는 성경 말씀이 책에 써있다. 그 말씀을 붙잡고 살다 보니 삶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찬바람이 불어와 수없이 넘어뜨려도 용기를 내도록 일으켜 세웠다. 어린것들도 독립된 인격체라 꿈을 향해 자유롭게 비상을 할 수 있도록 나의 무분별한 애착의 줄을 놓아주었다. 현실의 벽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는 간절한 염원을 품고 이 은총의 길을 올라가서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넓은 마당에서 뛰놀았다. 삶의 수레바퀴 밑에 짓눌려 태풍의같은 소용돌이와 맞서게 되어도 묵묵히 젖은 길을 걸었다. 이 오르막길에 나의 젊음을 묻었고, 아이들 유년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고향으로 자리잡았다. 말로 성인군자 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좋은 부모가 되려면 첫째는 자신의 인격 수양을 먼저 닦아야 하고, 둘째는 삶으로써 모범을 보이는 일이 선 교육이라 생각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생의 시련과 맞서려면 연금술사처럼 고통이라는 용광로에서 인내로 두드리는 담금질이 반드시 필요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어떤 족적을 남기고 나는 살아왔을까? 젊은 날에는 가족들의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앞만 바라보고 달려오니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느어 느어 기울어지고 있다. 하얀 눈밭에 내가 남긴 발자국을 보고, 뒷사람이 이정표처럼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선명한 흔적을 남겨하지 않을까. 이제부터 삶의 태도를 삼백 180도로 바꾸고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이다. 평소에 워킹 자세로 운동하니 빨리 걷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친구와 공원을 걷다가 “나랑 같이 가”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히곤 했다. 장거리 여행길에 동행하는 이들과 보폭은 맞추고, 천천히 걷다 보면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의 마음도 전해질 텐데 말이다.

여행길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고 어떤 발자국을 남기지는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다. 세월은 쉼 없이 흐르고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기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못 느끼고 산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도 생각할 여력이 없기에 남들이 가는 대로 따라 여기까지 왔다.

모든 희망을 미래에 두고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요즘 문득 현제를 소홀한 시간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아이들 중, 고등학교, 대학 졸업하면, 결혼시키고 나면, 손주들만 크면, 속삭이는 나에게 속아 온 것 같다. 시간은 나의 허황된 거짓말을 증명하듯 흐릿흐릿 아침 안개처럼 좋은 세월은 흘러가고 허탈함만 기다린다. 유년 시절 파란 밤하늘에 성근 빛처럼 빛나는 꿈도 꾸며 자랐지만 뒤돌아보니 비틀비틀 걸어온 발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수업도 받지 못하고 자식을 낳아 키웠으니, 시행 차오를 겪는 동안 서툰 발자국들이 꼬리표처럼 나란히 따라다닌다.

나의 몸이 먼저 알고 은발이 내려않고, 얼굴에 주름을 덮어쓰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고 독수리 타법으로 글쓰기를 한다. 머릿속에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어느새 중년으로 접어든 딸과 아들의 성장 속도를 잊고 살았다. 외손자들 년 연 생 3명이 울고 웃는 모습도 참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평생 지지고 볶고 사느라 눈만 뜨면 입에 시간에 쫓겨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평생 헉헉거리면 무리들 속으로 달려왔는데 남보다 더 이루어 놓은 것도 없다. 아직도 무엇 때문에, 어디를 향해 뛰어가는지도 몰라 혼란스럽다. 인생의 정상만 보고 올라왔는데 정상 가까이 올라갈 수록 무지개는 보이지 않고 무엇에 홀린 듯 착각하고 살았을까.

늦은 나이에 어떤 발자국을 남기려고 다시 글쓰기를 배운다. 또다시 욕망의 덫에 걸린 것일까. 고희의 문 앞인데, 소나기가 쏟아진 뒤에 잠깐 여우 빛처럼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려면 한 눈 팔지 말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고 위선의 포장으로 덧씌웠던 것을 벗겨내고 성찰하는 마음의 자세로 발자국을 옮겨 놓아야 할 텐데 말이다. 한 번도 상상 못 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거울 앞에 서면 낯선 이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서로에게 맞춤형으로 길들이기 위해 북극과 남극처럼 서로 밀고 당기느라 헛된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러나 1+1은⎓2가 아니라 4가 되었다가 손주들을 합치면 7명이 되었으니 덤으로 얻은 인생인데 마음을 비우고 평화롭게 살면 된다. 얼굴에는 인생의 계급장처럼 빗금으로 채색되었으니 무엇을 더 바라는가.

강물이 흐르면 같은 물은 아니다. 은총의 길을 걸어온 발자국 덕분에 나의 오늘을 있게 해 주었다. 아내의 자리와, 엄마의 자리는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인생은 꿈결같이 지나갔다. 살아온 길도 모르는데, 앞으로 살아갈 인생길은 더더욱 모른다. 다만 내게 주어진 은총의 길을 소박한 염원으로 담아 향기로운 나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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