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 (商人) 은 만만치 않다

by FreeBear

상인의 商 이란 글자는 商나라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상나라는 은(殷) 나라라고도 하는데 周에 멸망당하게 된다.


상인들은 한때는 나라 도읍지의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는데 (전근대시대의 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특권층이었다. 북한의 평양과 중국의 북경에는 지금도 이런 권리가 존재하는데 거꾸로 북한과 중국이 아직 충분히 근대화되지 않은 나라라는 얘기도 된다) 주나라 왕조가 들어선 후 기존의 특권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물건 사고파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걸 商人, 商業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개성 사람들은 정치적 출세길이 막혀서 궁여지책으로 상인의 길로 진출해서 개성상인의 세가 상당히 컸다고 한다. 물론 이런 얘기는 영미권의 merchant 란 단어와는 아무 관계없는 내용이다.


상인들이 하는 일은 주로 물건을 바꾸면서 이문을 남기는 일이다. 갑이란 지역에서 물건을 사서 을이란 지역에서 팔면서 이문을 남기고 T라는 시점에 사서 T'에 팔아서 이문을 남기기도 한다. 지역을 옮겨가면 그 운송료도 상인이 해당가격에 덧붙여서 팔아야 하고 시점의 이동이라면 그 사이의 보관비용이 더해진다. 잘못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따라서 상인의 일이란 신경도 많이 쓰이고 공간상, 시간상의 정보를 잘 알아야 하는 일이다. 특히 로컬 하게 수요-공급 관계의 상황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실패하지 않는다. 말로는 간단하게 수요-공급이라고 끝내지만 그 안에는 사회의 현 상태에 관한 온갖가지 정보가 다 포함되는 엄청난 개념이다.


따라서 상인의 일이란 전통적인 직업분류 사농공상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어떤 직업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정교한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러고 보면 상인들은 동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streetwise smart 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전제왕조에서 상인계층이 왜 그리 핍박받았는가의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사회 돌아가는 일에 정통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조정하는 일에 익숙하다. 게다가 공간적 격차에서 오는 이문을 먹기 위해 언제나 이동 중이므로 여차하면 중앙정부를 위협할 수 있는 대형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중국의 왕조들은 내 주관적인 생각에는 6:4 정도로 (정권유지하는 일): (민생 돌보는 일)을 해왔으므로 상인들의 세력이 커지지 못하도록 실질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줄기차게 핍박을 가했다. 도덕적으로 상인을 천시하도록 가르쳐서 똑똑하고 야망 있는 아이들이 그 분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줄기차게 막았다. 상업이란 천한 일이고 해 봐야 먹고살기도 힘든 일이다, 맨날 상대를 속여서 이문을 챙기는 게 상인의 일이다라고 下之下의 일그러진 상도덕을 상인의 대표 특성인 것처럼 선전해 왔다.


이 얘기에서 일본은 빠지는데 여기는 통일된 전제정부란게 없고 각 지역 정부들이 죽어라고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상인들이 지역 정부 또는 막부와 결탁해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서로 윈윈 했던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정치권력도 상인계층의 어느 정도의 성장을 눈 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막부가 한국, 중국처럼 완전히 행정을 장악했더라면 상인계층의 운명은 언제나 막부 손아귀에 있었을 것이고 탄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유럽은 어떠했나? 여기는 정치권력이 동아시아에 비교하면 너무나 미약해서 오히려 상인들이 자치정부를 세운 경우도 꽤 있었다. 정치권력이 상인들에게 종속된 것이다. 한자 동맹이랄지, 베네치아 공국이라던가 독립 이후 네덜란드가 그런 경우다. 그럼 거기는 왜 정치권력이 그 모양이 되었던 것인가? 그것은 또 다른 얘기이므로 다른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다시 상인의 주제로 돌아가보면 정치권력 입장에서 상인이 성장하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한계를 규정하고 세력을 눌러줘야 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상인들이 자본을 축적하고 힘을 기를 수 있었던 나라들에게 이리저리 처맞고 국토를 빼앗기고 나라까지 빼앗긴 것이 100여 년 전의 한국과 중국의 꼴이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려고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상인과 상업을 억압하면 나라꼴이 전제왕조 시대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유시장을 가지고 힘을 축적한 나라에게 그 전제권력 마저 뺏기게 된다.

이건 몹시 걱정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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