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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스콘 Nov 11. 2021

때로는 속독보다 속(Inside) 독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 속독 학원을 다녔다. 당시 살짝 유행했던 것 같은데, 시야를 넓혀서 눈길 한 번에 몇 문장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이었다. 원래 책을 많이 읽은 덕분인지, 그 학원 덕분인지 인과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덕분에 남들보다는 빠르게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언어영역의 지문은 항상 쉽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종이가 아닌 모니터를 활용했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대략 이런 느낌의 학원이었던 것 같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빠르게 글을 파악하고 답을 찾아야 하는 언어영역과 같은 시험에서는 속독 능력을 쏠쏠하게 써먹었다. 실제로 점수도 잘 나왔고, 얼마 전까지도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IT 업계로 산업을 옮기며 새로운 지식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문장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용하는 속독의 방법은 문장을 빠르게 스캔하면서 핵심 키워드에만 집중해서 핵심을 빠르게 파악하는 방법인데, 생소한 단어가 많은 글을 반복해서 읽다 보니 분명 문장을 읽었음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모르는 단어가 많으면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연하지만, 이해를 했다고 생각한 부분도 다음에 비슷한 글을 접했을 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점이 문제였다.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단어들을 무시하고 핵심이라 생각되는 부분만 이해하다 보니 글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그만큼 기억에서 쉽게 휘발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모든 글을 속독으로 읽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소는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위를 4개나 가지고 있다는데 나는 문장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넘기면서 그저 많은 문장을 읽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으니, 소화불량에 안 걸린 게 다행이다. 아 소화불량까지는 아니지만 되새김질은 자주 했던 것 같다. 빠르게 문장을 넘기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서 문장을 읽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으니..


 특히, 한동안 웹 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웹소설에 자주 노출되면서 문해력이 더 저하된 느낌을 받았다. 웹소설이 책을 구현하는 방식에는 전통적인 책장 넘기기 방식과 스크롤로 한 챕터를 쭉 내리면서 읽을 수 있는 방식이 있다. 나는 둘 중 스크롤 방식을 주로 사용했는데, 안 그래도 가벼운 내용을 속독을 통해 스크롤을 쭉쭉 내리면서 읽었다. 그러다가 웹 소설이 아닌 일반 종이책을 읽으니 문장을 넘어가는 눈의 움직임이 굉장히 어색한 것을 느꼈다. 눈은 고정된 상태에서 스크롤을 내리면 글이 계속 변해야 하는데 책을 읽을 때는 내 눈이 움직여야 하는 게 어색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경험을 한 이후로 현재는 웹 소설을 읽을 때도 책장을 넘기는 형태로 독서를 하고 있다.

 실제로 글보다는 영상이 더 친숙하고, 스크롤 형태의 글에 익숙한 10대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 한다. 그 또한 시대의 흐름일 수 있고, 내가 직접 경험한 부분이 아니기에 함부로 부정적인 재단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속독이 아닌 속(Inside)독이 중요합니다". 
 빠른 지식의 습득도 중요하고, 범람하는 정보의 시대에서 빠르게 핵심을 찾아내는 능력도 중요하다. 다만 글의 내용을 깊게 이해하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문장을 깊게 읽는 독서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독'이란 좋은 단어가 있음에도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속(Inside)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단어의 뉘앙스처럼 글의, 문장의 내부까지 깊게 이해하려는 독서 습관을 길렸으면 한다. 학생이던 직장인이던 살아가며 계속해서 학습해야 하는 시대에서, 속(Inside)독은 내가 읽은 글을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곁들이자면 책을 읽을 때 감명 깊거나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기록하는 게 좋다. 기록하면서 머릿속에 한번 더 깊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독서를 한다면 기록하고 싶은 글귀를 찾았을 때 바로 기록하면 되고, 밖이라면 폰으로 사진을 찍어놓은 후 집에 들어가서 기록하면 된다. 아무쪼록 속독해야 할 때는 속독하고, 속(Inside)독 해야 할 때는 속(Inside)독을 하면서 재미있는 독서를 하길 바란다.


# 지금까지 브런치에 기고한 글과는 성격이 다른 글이지만 영상 우위 시대로 넘어갔음에도 여전히 글이 더 편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최근 생각하던 바를 공유하고 싶어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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