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by 꿈꾸는 소나무

나는 오늘도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김을 굽는다. 참기름에 몸을 적신 솔이 고소한 냄새를 가득 입으면 김에 골고루 바른 후 가는소금을 살살 뿌리고 두 장을 붙여 뒤집어가며 굽는다. 김은 누가 뭐래도 살짝 불에 타서 바삭거려야 제맛이라는 생각이다. 김에 대한 유별난 사랑으로 집에서 결국 김 여사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엄마는 왜 늘 김을 그렇게 힘들게 구워? 마트에 가면 고소하게 잘 구워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포장해 놓은 김이 넘쳐나는데.”

딸애가 궁금하다는 듯 진지하게 물었다. “그러지? 네가 보기에도 내가 좀 유난스럽지? 근데 엄마에게 있어 김은 특별한 음식이란다.”

창밖의 구름은 놀다 늦어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처럼 바쁘게 흩어져 흘러가고 있었다.

오래전 엄마는 전쟁통에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만삭의 몸으로 어린 딸 둘을 양손에 잡고 피란길에 올랐다. 총알이 엄마를 스치며 방안 벽에 박히던 날 아버지를 기다릴 수 없어 퉁퉁 부은 다리로 서울에서 전주 시댁까지 몇 날 며칠을 걸어서 내려왔다. 폭격이 무서워 불도 켜지 못한 채 시댁 헛간에서 몸을 풀고 까무러쳤던 이후 늘 시름시름 아팠다.

서울 토박이로 갑자기 낯선 시골 시댁에 덩그러니 놓인 엄마는 ‘정지’가 부엌을 말한다는 것도 몰랐다. 물에 둥둥 뜬 기름 같았던 엄마는 시어머니와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손위 동서의 매서운 시집살이를 당해야 했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고 아랫마을에 집도 마련하고 전답도 얼마간 물려받았다.

막내인 나를 낳고부터 엄마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절에 자주 가 있곤 했다. 내가 저 불쌍한 것 몇 살 때까지 살지 모르겠다며 엄마가 모성을 드러내는 날은 운 좋게도 절 구경을 하는 날이었다. 절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이웃 아주머니들을 대동하고 병원에 다니곤 했는데 후한 품삯에 엄마는 이웃 아낙들의 좋은 일터가 되었다. 학교 운동회에도 이웃집 아주머니의 음식을 그 집 애와 함께 먹어야 했고 졸업식에는 늘 언니들이 함께했다, 우리 자매들은 엄마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줄줄이 낳은 딸들이 살림을 하고 위 언니가 아래 동생을 돌보면서 우리들은 그렇게 성장하였다.

어느 날 저녁 모처럼 엄마와 우리 세 자매는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셋째 언니가 일찍 시집을 간 후라 아마 넷째 언니가 밥상을 차려온 날일 것이다. 귀한 김 넉 장도 구워 상에 올라왔다. 엄마는 서울에서 곱게 자라 돼지고기는 입에도 대지 못하고 소고기만 먹는 식성인데 김은 엄마의 까다로운 식성을 통과한 음식 중 하나였다. 우리들은 밥을 김에 싸서 먹을 생각에 조바심을 치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엄마는 김 한 장을 두 번 접어 네 조각으로 나누어 그중 세 조각을 딸들 앞에 하나씩 놓아주고 나머지 한 조각과 김 석 장을 자신 앞에 놓았다. 딸들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엄마는 커다란 김에 밥 한 수저를 올려놓고 간장을 그 위에 발라 잘 싸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흘낏 보니 언니들의 목울대도 움찔거리고 있었다. 우리 자매들은 짧은 순간 서로 은밀한 눈빛을 교환하고 이내 자신들의 김에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서둘러 엄마에게 받은 작은 김을 다시 여러 개로 찢어 그중 제일 작은 김에 밥 한 수저를 올려 간장을 발랐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것은 김에 밥을 쌌다기보다는 밥에 작은 김 조각이 붙어 있는 모양새였다. 쇠똥구리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커다란 쇠똥을 굴리는 격이라고나 할까? 나의 쇠똥구리 김에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언니들이 김과 밥을 어떻게 배분했는지 관찰하지 못했다.

우리 세 자매는 설거지와 솥 씻기 그리고 집 뒤 우물에서 물 길어오는 일을 가위바위보로 나누고 저녁의 김 사건에 대해 깔깔대고 웃으며 엄마 흉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김 여사에게 김은 곧 엄마이며 언니들과의 은밀한 유대이자 유년의 기억이다.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 든 지금 생각해 보니 서울댁 엄마는 낯선 곳에서 피란의 후유증과 시집살이로 지난한 세월이 주는 삶의 무게를 김으로 위안받았던 것은 아닐까?

엄마를 떠올리다 정성스레 구운 김을 그릇에 담았다. 나란히 누워계신 부모님 산소에 기름옷을 입은 김을 올리니 고소한 향내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아버지! 오늘은 엄마 덕분에 김을 맛보시네요. 아버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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