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23분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집에서 6시 20분에 나서자고 계획을 세웠고. 그러려면 적어도 5시에 일어나야 채비를 하고 아들 아침식사를 준비할 수 있기에 어젯밤 잠들기 전에 휴대폰 알람을 안전장치 마냥 4회에 걸쳐 맞춰두었다. 게다가 별도로 알람시계까지 "5:35" 맞춰두는 극 예민한 행위를 시전 하고서야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3년 전, 남편은 눈을 깜박이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동네 병원 안과에 갔더니 안구건조증이라면서 간단한 치료와 약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치료 기간은 1년 가까이 흐르고, 여전히 인공눈물을 넣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안구건조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의뢰서를 들고 3차 병원 안과에 갔더니 의사는 "안과에서 치료할 증상이 아니고, 신경과로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눈이 아픈데 웬 신경과?' 하며 의아해했지만 이내 마주한 신경과 의사는 말했다.
"안검연축이네요. 약도 없어요. 보톡스 맞으세요."
신경과 진료는 위 한 줄로 끝나버렸고, 마음 상한 남편은 보톡스를 맞지 않겠다는 고집을 끝끝내 세우면서 병원을 나와 버렸다.
"안검연축"
시아버님 생전에 고생하셨던 안검연축.
그 안검연축을 아들인 내 남편이 겪고 있다.
의사 캐릭터 차가운 게 무슨 대수냐며 보톡스를 왜 안 맞냐고 남편을 몰아세웠지만 남편은 "싫어요." 이 한 마디로 요지를 피하며 가끔 변죽만 울려댔다. 아버님 보톡스 치료를 지켜본 입장에서 근본적인 치료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의미 없다고 스스로 결론지어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껌 씹기, 라켓으로 탁구공 상하로 치기, 수면안대로 눈 찜질하기 등 나름의 요법으로 애쓰고 있었다.
작년 12월, 요리조리 피하던 남편을 설득해 '용하다'는 신경외과 의사한테 한 번만 소견을 들어보자고 얼러서 찾아 나선 곳이 서울 소재 대학병원 신경외과였고, 눈이 펑펑 내리던 올해 1월 결국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약이 없다,
치료 방법이 없다.
차선책으로 보톡스 주사다.
부산에서도 서울에서도 결론은 똑같았다.
하지만 두 번째 병원에서 마주한 용하다는 의사는 보톡스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왜 차선책인지도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또한 처방약의 기능에 대해서도 설명하면서 그걸 받아 적는 나의 필기 속도에 맞추어서 설명을 이어가주었다.
남편은 단박에 주사를 맞겠다고 응했고, 가라앉던 상안검은 서서히 탄력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눈이 가라앉으니까 j 씨 눈 위로 이마랑 머리가 안 보였는데, 주사 맞고 나니까 이제 j 씨 얼굴 전체가 다 보여요."
주사 맞고서 남편이 내게 한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서울을 다녀온 뒤로 나는 일주일을 몸살로 끙끙 앓았다.
1월에는 약간의 우울감이 있었다면 받아들이고 나서 다시 병원으로 가는 오늘은 그저 여행 다녀온다는 생각으로 나서게 된다.
며칠 전부터 남편이랑 컴퓨터에 같이 앉아서 병원 주변 맛집을 검색하기도 하고, 인근 대학교 캠퍼스 구경도 가 보자고 했다. 부산역에 일찍 도착해서 마실 커피와 빵, 편의점 삼각김밥도 3개 사서 기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