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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Dec 09. 2023

가족 여행

남편과 아들이 잠에서 깰까 봐 양치질, 세수만 하고 조심스레 숙소밖을 나와 경주 거리를 걸었다.

오전 7시 30분.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는 카페에 앉아 라테 한 잔 마시며 생각한다.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상황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5년 만에 가족여행을 나섰다.

기억하는 마지막 가족 여행은 아들 k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해에 제주도에 다녀온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그저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고,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또다시 사춘기 바이러스가 침투하면서 같이 가자고 제안하면 "내가 엄마, 아빠랑 왜?" 하면서 찬바람이 종종 불던 탓에 가족여행은 우리 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자녀의 청소년기를 먼저 보낸 직장 선배들에게 가끔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j, 수능 끝나면 그 증상 다 없어진다. 지금은 그냥 가만히 놔둬." 하면서 충고를 던져주었다.

"과연, 그럴까요?"




수능 시험 당일, 나는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었고, 남편은 근무 스케줄이 야간으로 잡혔다. 수능 난이도만큼이나 이슈가 되는 '수능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움직이며 전 날 저녁에 만들어둔 국을 데우고, 보온 도시락을 예열하고, 계란을 말고......

아침 여섯 시에 아들을 깨워 주먹밥과 두부국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깨끗하게 뚝딱 비우는 아들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나 이제 아기 아니거든!"

아들이 가끔 발끈할 때 주장하는 말이다. 그런 아들이 시험이 있기 며칠 전에 "엄마 아빠 수능시험일에 휴가 낸 거지? 고사장까지 나 태워줄 거지?"하고 묻길래 남편과 나는 실소를 했다. 아기 아니라고 할 때는 언제고 엄마 아빠 모두가 고사장까지 데려다줘야 한다는 아들의 요구가 다소 무리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수능 시험일, 내가 운전해서 고사장으로 향했다. 일찍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도로는 생각보다 막혔고, 그 와중에도 "오늘은 험생이 우선."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고사장인근 도로는 경찰 공무원들의 빈틈없는 교통정리로 질서가 잡혔고, 그분들의 수고가 대단해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의 정차도 안 될 것 같아 고사장 가까이에서 남편과 아들이 내렸고, 차 안에서 바라보는 그 뒷모습에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버님, 우리 아들 k를 지켜주세요." 하며 짧은 기도를 드렸다.

남편과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바랐던 그 소망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을 요구했던 그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아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시험을 치르고 20여 일이 지난 어제, 수능 시험 성적표가 나왔다. 가채점 점수 그대로, 예상 등급도 그대로.

이제 12월까지 아들이 지원한 대학의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나름 소신 지원했다고 생각하기에 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만 바란다.




어제저녁, 우리 가족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2박 3일의 경주 여행에 나섰다. k가 태어나기 전부터 경주는 우리 부부의 놀이터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었다. 길안내 기기가 없어도 충분하다. "이 길은 기억난다.", "여기 어딘지 알겠다." 하면서 k는 기억을 소환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아기 때, 유아 때, 초등학생 때, 질풍노도의 중학 때 k가 떠올라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은 기본값이라는 나만의 암묵적 공식을 해체하자고 스스로 등짝을 치고 싶었다. 차 뒷좌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거리는 아들을 보면서 '성적이 나오고 나니 마음이 후련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무뚝뚝한 우리 아들 같지가 않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또한 선배들의 충고가 다 옳았음을 인정한다.

내가 1번 고객이다. 바리스타가 그려준 하트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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