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현 Aug 24. 2022

유럽의 화약고, 발칸의 나라들을 방문하다.

1. 알바니아의 쉬코드라 마을을 시작으로....

발칸(Balkan)은 튀르키예어로 '산'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는 다양한 해협으로 둘러싸여 있고 경계를 짓는 뚜렷한 지형학적 특징이 없는 지역이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인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많은 세력의 지배를 받은 곳이며 특히 다양한 민족으로 인한 정통성 문제와 영토문제로 인해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이곳이 '유럽의 화약고'라는 부정적 의미의 별칭도 갖게 되었다.

심지어는 한 지역이 잘게 나누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발칸화(Balkanization)'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니 말이다.


다행히(?) 요즘 발칸의 나라들은 많은 산들과 호수 그리고 바다들로 둘러 싸여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되고 있어 우리 부부도 이곳을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반복되는 전쟁과 대규모의 인종 청소가 일어났던 가슴 아픈 장소였음을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에 아직 아물지 않은 한 [恨]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들을 여행하기에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발칸의 나라들은 멋진 풍광을 가진 아름다운 나라임에는 분명하지만 단순히 가볍게 생각하고 겉모습만 훑어가며 여행할 나라들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발칸의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그들의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고 생활과 문화를 공감하며 그들이 우리와 공유하는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의미 있게 경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의 발칸 여행의 시작점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의  북쪽 도시 '쉬코드라(Shkodra)'였다.

알바니아는 유럽 국가에서 극빈 국가에 속하는 나라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귀중한 유산을 많이 지닌 발칸의 나라 중 하나이다.

언젠가 알바니아의 많은 도시를 방문해보고 싶다.


쉬코드라 또한  몬테네그로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아드리아 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물론 예로부터 알바니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민족성과 그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쟁을 끝까지 펼쳤던 의미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하루를 머문 후 몬테네그로에 가기로 했는데 도시를 떠나기 전 우리는 이름도 전설도 매력적인 아름다운 로자파성(Rozafa Castle)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머문 쉬코드라는 알바니아 북쪽에 위치해있으며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특히 투르크로부터 이 지역을 지켜내기 위해 베네치아 인들이 견고하게 성을 짓고, 베네치아 인들과 알바니아인들이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던 알바니아의 최후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스만 튀르크의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서 결국 함락이 되고 쉬코드라 주민들은 대규모 학살을 당하게 되었다.

쉬코드라는 투르크의 지배 안에서 그들의 명맥을 이어나갔으며 결국 오늘날 문화, 경제, 교육의 중심지로 번성하게 된 걸 보면 많은 침략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항상 그들의 모습을 보존하려고 했던 끊임없는 노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  



이른 새벽의 쉬코드라는 적막 그 자체였다.

새벽에 길을 나서며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근처의 동네를 산책해보기로 했다.


발칸 산맥으로 연결되는 지형적 특성이다 보니 평지보다는 산이 많고  지중해, 이오니아 해, 아드리아해가 접해 있어 어딜 가도 멋진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이 쉬코드라였다.

하지만 쉬코드라 마을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60-70년대의 시골마을 느낌이었다.

세련된 건축의 건물과 집들이 있는 곳도 아니고  넓고 멋진 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은 멋 부림 없는 순수함이 깃든 소박한 마을 풍경 그 자체였다.

비록 아직은 국민들의 경제생활이 어렵고 힘이 들어 보이지만 그 보답으로 이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 받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천혜의 자연이 선물로 주어진 나라, 알바니아가 서서히 세상에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름답다'라고 명명할 그 어떤 것도 선뜻 내 눈에 들어온 것 없지만 자연이 베푸는 편안한 매력을 지닌 곳임은 분명했다.



 

아침 식사 후 쉬코드라에서 유명하다는 로자파 성(쉬코드라 성)을 방문하기로 했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비탈진 좁은 길인데도 이곳을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역시 젊음이 좋다.ㅎㅎ


입장권을 사서 티켓을 보니 로자파성이 4천년이 되는 성이라고 쓰여있다.

성의 나이가 어마어마하다.

4천년 동안이나 버티어 온 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대에 건설되어 로마와 오스만 제국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Rozafa 성은 알바니아의 굽이진 역사와 여러 사연을 다 묵묵히 지켜보았던 성이다.

이 성은 주변 성벽의 길이가 880m로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이자 발칸 반도의 가장 큰 영광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이라고 한다.

기원전 3~4세기에 발칸 유럽의 대부분을 장악했던 일리리야 왕국이 이곳에 커다란 성을 세우고 주민을 다스렸다는 곳이지만 이 성에는 가슴 아픈 전설도 함께 하고 있다.

성벽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제물로 바쳐질 누군가가 필요했고 결국 삼 형제 중 막내의 아내 로자파(Rosafa)가 제물이 되어야 했다.

로자파는 죽어서도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도록 그녀의 오른쪽 눈과 가슴, 손과 발은 성 밖으로 내밀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 했다고 한다.

“나의 몸 반은 성 밖으로 내어 내 아이를 다독여 주고, 오른쪽 가슴은 젖을 물려주고, 발은 요람을 흔들 수 있게 해 주세요.”

아들에 대한 희생과 사랑, 그리고 처절한 그녀의 마음을 알고 나니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 뭉클함이 올라온다.

어머니의 모성이 이토록 위대할 줄이야....

순간 두 아들을 둔 엄마인 나를 반성하게 한다.

그때부터 로자파 성(Rozafa Castle)으로 불리게 된 이 성은 이후로 성 주변의 쉬코드라 호수가 우윳빛으로 변했고 지금도 알바니아 여인들은 로자파의 모성을 기리며 호수에 젖가슴을 담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전해오는 이야기지만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다.


애잔한 분위기에 잠겨 보는 성에서의 풍경이 유독 구슬프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성은 영주가 살았던 터와 주민들이 사는 터가 분리가 되어 있는 성이고 그 시절의 생활상을 짐작케 하는 우물과 감옥도 아직 남아있어 크기와 규모에 거대함이 느껴진다.

이토록 거대한 성을 오래전 그 당시에 어떻게 지었을지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그 당시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이 성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은 황폐화가 되어 여기저기 돌들이 굴러다니는 걸 보게 되니 한때 찰나의 영광이 단지 한순간임을 느끼게 되니 씁쓸하다.



이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구불구불 흐르는 강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강을 끼고 있으니 아마도 이 성은 전략적 위치로 지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부나강(Buna)과 드리니 강(Drini)이 마주 보고 흐르고 있고 그 주변에 키리 강(Kiri)도 흐른다.

높은 산 아래 푸른 거대한 강을 보게 되니 자연의 숨막히는 파노라마가 연출되는 느낌이다.


유구한 역사와 세월을 견딘 로자파 성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존재도 느끼게 된다.

아래엔 넓은 평지가 펼쳐져 가슴이 확 트이는 멋진 전경에 시원스럽고 강 옆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쉬코드라는 아담하고 여전히 평화롭다.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이 성에 취해 오랜시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 마음에 아직도 잔재해 있는 아픔을 도려내며 감춰져 있던 아름다움이 서서히 드러나며 이제야 빛을 발하는 나라, 알바니아.

여전히 민족 문제로 갈등과 충돌의 여진은 남아있어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과거의 찬란했던 옛 향기는 어딜 가든 잔재했다.

이제 매력적인 이 도시를 이제 떠나야 한다.

잠시 머물러 가는 도시였지만 여전히 쉬코드라의 찬란했던 흔적으로 남아있는 로자파 고성이 내 마음과 뇌리에 남아 애잔함을 불러일으킨다.

왠지 이 애틋함과 함께 고풍스러운 향기가 오래갈 것만 같다.

알바니아 화폐에 있는 로자파 성의 그림




 


작가의 이전글 푸른 바다가 있어 더 화려한 정원, 애도(艾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