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네도아라(Hunedoara)에 도착했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 후네도아라는 'Corbin castle(코르빈 성)'로 유명하다.
코르빈 성은 13세기에 요새로 지어졌다가 15세기 '이안 후네도아라(Ioan of Hunedoara)'가 부임하면서 왕궁으로 다시 건축한 성이다.
그의 아들은 훗날 르네상스 양식 부분을 덧붙였고 이후 17세기에는 가브리엘 베틀렌이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추가적으로 더 지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코르빈 성은 '후냐디 성, 후네도아라 성(Hunyadi Castl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 성이 드라큘라의 무대라는 이야기도 있어 조금은 섬뜩한 기운을 풍기기도 한다.
이 성은 1500년대까지 후냐디 귀족 가문이 유지를 했고 이후 18세기 이전까지 무려 22명의 다른 소유주가 차지하기 위해 많은 전투를 했다고 한다.
결국 합스부르크 제국의 소유가 되고 만 이 성은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심지어 바로크 양식 등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유럽의 10대 성에 꼽힐 정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도시를 걸어 가로질러 코르빈 성을 방문하기로 했다.
후네도아라의 거리는 깨끗하고 조용한 인상을 준다.
가로수 우거진 거리를 걷노라면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기 힘들 정도로 도시 전체가 조용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렇게나 마을이 조용해도 되나 싶다.
30여분 걸었을까?
한참을 걸었더니 드디어 코르빈 성(Corbin Castle)이 눈앞에 나타난다.
눈앞에 모습을 보이는 코르빈 성의 첫 인상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외관이 독보적이지만 그 이면에 왠지 무거운 분위기도 함께 느껴진다.
단지 고성(古城)이라는 이유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해자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가는데 어쩐지 긴장이 되기도 한다.
뾰족한 지붕모양의 높은 타워들을 가진 이 성은 루마니아가 자랑하는 중세 건물 중 하나로 작년에 부다페스트에서 보았던 멋진 성도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코르빈 성을 모방해 지은 성이라고 들었는데 어쩐지 분위기도 비슷하고 낯설지가 않다.
만화나 동화에서 나올 법한 예쁜 성으로 마치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공주가 발코니에 나와 우아한 손짓을 하지 않을까라는 착각도 든다. 마치 레이스 자락이 펄럭이는 것 듯한 느낌도 받는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성들 중에서 외관이 가장 여성스럽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관만큼이나 성 내의 역사도 아름다울까?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하지만 어딘지 미스터리 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성안으로 들어섰다.
이 성안에서 수백 명의 수감자가 잔인하게 고문을 당했던 역사가 있었다.
지하감옥과 고문실에 들어가니 오래전 이 자리에서 일어났던 잔혹 행위들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수많은 수감자가 비극적으로 죽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성이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도 과장은 아닌 듯싶고 드라큘라의 무대가 된 성이라는 이야기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어쩐지 으스스한 기분도 드는 성이다.
기사의 홀 지하감옥에는 왈라키아의 왕자가 이곳에서 몇 개월 붙잡혀 있었는데 왕자는 오랜 수감생활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성격이 괴팍해졌고 훗날 그를 모델로 '드라큘라'의 주인공이 탄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세의 고문 장치에 앉아있는 무시무시한 여인의 마네킹의 모습과 천장에 매달려 있는 남성의 고통스러운 모습들을 보니 정말 섬뜩하다.
이 성안에는 또 하나의 슬픈 전설을 갖고 있는 우물이 있다.
세 명의 터키인 죄수가 좋은 우물을 파면 자유를 주겠다고 하는 총독 후네도아라의 약속을 믿고 15년 만에 암반을 뚫어 깊이 28m의 우물을 파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을 했을 때는 이미 후네도아라는 죽고 미망인인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한 약속을 어기고 죄수들을 죽이고 만다.
그들은 억울함에 "You may have water, but you have no soul"이라는 글귀를 남기고 결국 죽음을 당한다는 슬픈 이야기가 이 우물에 서려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무려 15년을 파 내려간 세 사람의 죄수의 공이 허무하게 사라져 안타깝기 그지없다.
코르빈 성은 1440년 이후 요새에서 왕실의 궁으로 사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재건을 하는데 성 벽의 돌 색의 차이가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또한 이 성 외부에는 두 마리의 배고픈 곰이 사형수를 잡아먹기 위해 노려보고 있는 "곰 구덩이(The bear pit)"가 있는데 그 당시 죄를 지은 사람들을 이 두 곰에게 던져주었다고 하니 인간이 이렇게나 잔인한 존재인가 싶어 섬찟하다.
때론 나는 사람의 잔인함에 무섭고 섬뜩함을 느낀다.
이 성과 관련해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하나는 과거 관광객이 성을 지키는 경비원에게 뇌물을 주어 이 성에서 하룻밤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경비원들이 다음 날 그들에게 가보니 그들은 온몸에 멍이 들었고 밤새도록 괴상한 소리들로 괴롭히는 유령들에게 쫓기고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코르빈 성은 밝혀지지 않은 신비함과 슬픈 전설을 갖고 있는 성임에는 분명하다.
아마도 이 성에 살았던 사람들 외에는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깊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아리송한 분위기를 담고 있는 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혹시 지금도 성의 어떤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번호가 매겨진 순서대로 방들을 들어가 보긴 하지만 끝없이 등장하는 모든 방들을 돌아다니며 기억하기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우리와는 차이가 있는 역사와 문화들을 꼼꼼하게 이해하고 담기엔 능력 부족이다.
남편도 요새와 성은 많이 봤으니 이젠 그만 보아도 될 것 같다고 하는데 나도 동감이다.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 집중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걸 요즘은 더 절감하고 있다.
커다란 성을 모두 돌아다니려니 몸도 한계를 느껴 몇 차례 앉아 쉬면서 성 관람을 이어가야 했다.
에구...
역시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해야 한다는 말이 정답이다.
코르빈 성에서 나온 우리는 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중심가를 거쳐가는 길인데 후네도아라에서 가장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이 길이 의외로 꽤나 한적하고 조용하다.
널찍한 도로에 사람도 없고 양쪽 레스토랑과 카페 안에도 몇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후네도아라 중심가...
넓은 광장에 멋진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부활절 행사를 하는지 신도들이 주교를 따라 성당 안으로 줄을 지어 들어가고 있는데 처음 보는 광경이라 한참 동안 그들의 의식을 지켜보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나와 다시 밤거리를 산책해 보기로 했다.
달라진 거라고는 어두운 도로 양쪽에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 더 한적하고 조용하다.
이제는 주변의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으니 더 썰렁하다.
금요일 밤, 후네도아라의 거리는 이렇게 적막한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가로등 아래엔 신기하게도 거리에서 충전을 할 수 있는 전기 코드가 마련되어 있는 걸 보니 놀랍다.
고풍스럽고 예스러운 한적한 중세 마을에서 최신식 문물을 만나니 조금은 낯설다.
조금은 생동감 있고 번잡한 분위기를 느끼려 거리에 나왔는데 헛수고다.
조용한 밤거리를 잠시 걷는데 오후에 보았던 코르빈 성이 자꾸 떠오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 안에 감추고 있는 슬픈 사연의 코르빈 성이 지금 왠지 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성당의 종소리가 후네도아라의 고즈넉함과 호젓함을 배가시킨다.
와인이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