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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현 Jul 24. 2024

 시비우에서의 행복한 시간 여행

아스트라 뮤지엄과 시비우 올드타운을 방문하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아침 일찍 발레아 호수(Balea lake)를 방문 후 시비우(Sibiu)를 구경할 계획이었다.

호수를 보기 위해서는 차우셰스쿠시대에 만들어진  도로(transfagarasan highway)를 운전해야  하는데 이 도로를 만든 목적은 루마니아가 소련의 침공을 받을 경우 북쪽으로 군대를 수송하기 위한 전략적 경로를 만들고자 함이었다고 한다. 

150km가 넘는 길이의 도로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도로이며 또한 가장 운전하기 힘든 도로로도 이름난 곳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까지 뱀처럼 여러 겹의 구불거리는 도로를 한참 동안 운전해야 그 도로 끝에 멋진 호수(Balea lake)가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우리가 지나온 멋진 도로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라고  알려져 있다. 

transfagarasan highway와 발레아 호수(Balea lake)


그런데 아뿔싸.

5월인 지금, 그곳에는 눈이 쌓여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는 구글의 안내가 있다.

현재 그 도로는  폐쇄되었고 7월부터 10월까지만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는 걸 늦게 알았다.

멋진 풍경을 볼 수 없는 허탈감에 무척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계획을 취소해야만 했다.

루마니아의 도로를 운전할 때마다 멀리 눈 덮인 산이 항상 눈앞에 보였는데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루마니아의 높은 곳에는 눈이 녹지 않아 도로 운행이 어려운 곳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시비우로 향했다.


제일 먼저 마리아 할머니가 추천한 시비우의  'Astra National Museum Complex'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곳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야외 박물관인데 우리는 작년 여행 중 헝가리에 머무는 동안 방문했던 '쉬칸젠(Skanzen) 민속촌'을 방문했던 터라 이 민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방문하지 않기로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발레아 호수를 가지 않은 그 시간에 가야 할 곳을 우리는 물색해야 했고 또한 어젯밤 마리아의 박물관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이 우리의 계획을 바꾸게 했다.

광활하게 넓은 땅에 트란실바니아의 삶과 생활양식과 건축 그리고 멋진 풍경도 볼 수 있다는 마리아의 강력한 추천에 방문을 해보기로 했다.


아침 8시, 오픈시간에 맞춰 입장하니 사람이 없다.

들어가자마자 넓게 펼쳐진 잔잔한 호수가 우리를 반기고 호수를 주변으로 옛 트란실바니아의 가옥과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다양한 구조물이 펼쳐져 있었다.

한마디로 1900년대 초 루마니아에 살았던 조상들의 일상생활, 특히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농업은 물론 어부들의 생활양식과 그들의 집들을 가져와 전시해 놓았고 와인 저장고, 곡식 저장소와 제분소(방앗간) 그리고 오일을 착유하는 기구, 곡식을 빻는 기구, 그리고 월풀 wirlpool, 대장간, 종교시설 등 다양하고 신기한 많은 생활 도구들이 많이 전시되어 그들의 삶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숲을 개간한 넓은 땅에 과거의 모든 유물들을 가져와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전달하면서 과거는 단절된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소통되고 있으며 다만 조금씩 발전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농기구 저장소와 배 위의 집


그 당시에도 볼링이 있었나 보다.

나무로 만들어진 핀을 세우고 둥글게 만든 공으로 파인 홈으로 굴려 핀을 넘어뜨리는 놀이인데 지금과 거의 비슷한 방법이다. 무척 흥미로웠다.


나무의 쓰임이 이렇게나 요긴하고 많을 줄 몰랐다.

때때로 실제로 내가 움직여 볼 수 있는 기구들도 있어 직접 만져보니 꽤 흥미도 있다.

여기저기 펼쳐진 숲 길을 따라 걸으면 그 당시 농민들의 가정생활과 직접 만든 수공예, 목조 교회, 풍차 등을 만날 수 있었는데 모든 생활을 자연과 함께 어울려 해야 했던 단순한 그렇지만 꽤 현명한 그들의 시골생활을 알게 했다.

풍차와 우물
어부의 집

단순한 작업 도구들에서 오히려 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 또한 우리 세대까지 이어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도 했다.


매혹적인 풍경 속에 자리한 이 야외 박물관은 자연과 문화를 조화롭게 생활해 나간 루마니아인들의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루마니아인들의 깊숙한 문화와 생활에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기름을 짜는 기구

두 시간 여 걸었더니 다리도 몸도 지쳐온다.

잠시 호수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호수에 비치는데 선선한 바람에 호수에 비친 구름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도 이제 서서히 속도를 내어 시비우 올드타운으로 떠나야겠다.




시비우(Sibiu)는 루마니아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2007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아름다운 도시이다. 

잡지'포브스(Forbes)'는 이곳을 '유럽에서 가장 살고 싶은 이상적인 도시 8위'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루마니아 최초의 병원과 약국 그리고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브루켄탈 박물관이 문을 연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시비우의 올드타운에 도착해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이었다.

사실 시비우는 과거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라 루터교 교회가 그 당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주민의 80% 이상이 루마니아 정교회를 믿고 있는 이상 루마니아 정교회의 중요도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주교구가 위치한 이 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외관이 무척 고풍스럽다.

원래는 두 개의 메인탑에 4개의 동종이 걸려 있었으나 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이 종 3개를 떼어 무기로 만드는 바람에 현재는 한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성당 내부가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고 알려져 들어가 보았는데 다른 성당보다 우아하고 고급진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는다.

엄숙함 보다는 왠지 우아함과 고상함이 풍기는 그런 느낌도 있다.

벽마다 장식된 성화는 정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에서 나와 구시가지의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니콜라 발체스쿠거리(Nikolae Balcescu strada)를 걸어 시비우의 대광장(Mare Square)에 도착했다.

우아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넓은 광장에는 기념품들을 파는 나무로 지어진 부스들이 중앙을 가득 메워 광장다운 분위기가 없다. 

오히려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다.

확 트인 광장다운 널찍한 맛이 사라져 조금은 안타깝다.

마레 광장

광장 건물의 붉은 지붕을 둘러보면 시비우 마을의 특징인 눈 모양의 창들이 보인다.

단지 다락방의 환기를 위한 단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창이었다는데 차우세스쿠 시대에는 이 창이 마치 감시의 눈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지금은 '시비우의 눈'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이 고장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응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건물의 창 하나에도 해학과 풍자가 느껴져 재밌다.




마을을 연결해 주는 다리, '거짓말 다리( Podul Minciunilor , Liar's Bridge)'는 그냥 스쳐 지나갈 정도로 아주 짧은 다리인데 두 가지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다리 위에서 거짓말을 하면 다리가 흔들린다는 전설 그리고 이 다리 위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상인이 거짓말을 하면 다리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전설 등 재밌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리로 유명한 다리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다리는 나무로 만들어졌던 그 당시 전설의 유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시커먼 철로 만들어진 다리로 더 이상 고풍스럽지도 전설이 떠올려지지 않는 마을의 평범한 다리로 전락했다.

낭만이 느껴지지 않는 다리였지만 다리 아래를 걸어가는 돌길의 풍경은 무척 낭만과 분위기가 있다.


거짓말 다리와 다리 위에서 본 거리

멋진 시계탑도 눈에 보인다.

이 탑은 시비우의 상징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복원을 거친 결과 현재는 1층에 세워진 건축만이 초기 건물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광장(마레)과 소광장(미카)을 연결해 주는 문이 있는 탑인데 마을의 화재를 감시하고 감옥으로도 그리고 박물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시비우의 골목을 걸어 다니다 보면 안타깝게도 올드타운 역시 주택가와 건물 앞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어 자동차들 때문에 올드타운의 고풍스러움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어딜 가든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시비우 올드타운의 골목길 


광장 주변의 '루터 대성당(Lutheran Cathedral)'을 방문했다

가장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대성당과 그 주변의 네 개의 작은 탑은 시비우가 외국인들을 사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여주는 권한의 의미였다고 한다.

루터 대성당

성당 내부와 탑까지 올라가 보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했다.

들어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역시 감탄이 나오는 성당 내부다. 

정교회 내부에서 많이 봤던 성화도 없고 금빛으로 덮인 화려한 제단은 물론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없지만 성당 그 자체가 주는 웅장함과 엄숙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슬로베니아의 장인이 만든  17세기의 파이프 오르간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주로 지금 연주되는 오르간은 1910년 경 독일 회사에 만들어진 오르간이라고 한다.

또한 재건 당시 발견된 많은 유물과 벽화들이 전시되어 있고 성당의 벽에는 돌로 새겨진 부조들이 가득 차있어 마치 박물관을 방문한 것 같기도, 갤러리에 온 것 같기도 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루터 대성당 내부


내부 관람 후 성당의 타워에 올라갔다.

생각보다 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는데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다.

그런데 막상 끝까지 올라가니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확 트인 전망이 아니다.

각각의 방에서 닫힌 창문으로 시비우 마을의 전경을 360도 돌아가며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다행히 날씨가 청명한 오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비우의 붉은 지붕의 파노라마는 더욱 돋보였다.


타워에서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울 정도다.

벌써 이렇게 내 체력이 약해졌나 속상하기도 했다.

달콤한 커피가 생각나 광장 카페에서 잠시 안정시키기로 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광장 풍경은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한낮의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수기가 되면 이 조그마한 올드타운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일 텐데 이 광장이 얼마나 북적거릴까 싶다. 

고풍스럽고 고즈넉하며 한가한 분위기를  느끼기엔 어려울 것 같다.


광장 스타벅스


다시 힘을 내 시비우 올드 타운 한쪽(cetatii street)에 있는 Potter's tower(도자기의 탑)까지 걸었다.

15세기에 돌로 세워진  탑으로 방어벽의 역할을 했던 타워다.

도시 성벽을 따라 거리와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는 길이 꽤나 아름답다. 

다행히 이 도로는 차들이 들어올 수도 주차를 할 수도 없는 곳이라 구시가지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였다.

중세 성벽 위로 우뚝 솟아 있는 탑이 무척 인상적이다.

비록 복원을 한 타워지만 멋진 타워를 감상하고 옛 풍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복잡한 중심가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 굳건한 성벽이 시비우를 오랫동안 지켜주었나 보다.

Potter's tower와 세타티 거리 풍경


걷다 보니 노란색 건물의 '시비우 주립 필하모닉 홀'이 나타난다.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왠지 무척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홀 일듯 싶다. 

시비우의 주립 필하모닉은 매주 클래식 음악  콘서트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서트를 개최한다고도 하니 시비우가 문화도시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우리 부부도 적어도 매 달 한 두 번 이상 공연 관람을 하는 덕에 예술 향유에 대한 갈증은 없지만 한번쯤 소박하고 예스런 풍취가 있는 시비우의 올드타운 홀에서 음악회를 경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시비우 주립 필하모닉 홀




시비우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번쩍 거린다.

10년 넘게 자동차를 렌트해 여행을 다니는 중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이 된다.

구글 검색으로 정비소를 찾아보니 다행히 주변에 정비소가 있어 들리기로 했다.

엔지니어가 점검을 해주는 동안 잠시 대화를 했는데 한국에서 왔냐며 한국의 자동차 '기아(KIA)'는 이곳에서도 아주 좋은 차로 인정받는다며 엄지를 세워준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점검결과 우리 자동차 바퀴의 압력이 너무 높은데 이럴 경우 빗길에서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면서 네 개의 바퀴에서 조금씩 압력을 낮춰준다.'

이후 경고등의 번쩍거림은 사라졌고 우리는 감사의 표시로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친절이라고 생각하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가져온 기념품을 건네니 좋아한다.

사람들의 친절함에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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