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라 뮤지엄과 시비우 올드타운을 방문하다.
현재 그 도로는 폐쇄되었고 7월부터 10월까지만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는 걸 늦게 알았다.
아직도 루마니아의 높은 곳에는 눈이 녹지 않아 도로 운행이 어려운 곳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언젠가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싶다.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우리는 시비우로 향했다.
이곳은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야외 박물관인데 우리는 작년 여행 중 헝가리에 머무는 동안 방문했던 '쉬칸젠(Skanzen) 민속촌'을 방문했던 터라 이 민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방문하지 않기로 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발레아 호수를 가지 않은 그 시간에 가야 할 곳을 우리는 물색해야 했고 또한 어젯밤 마리아의 박물관에 대한 열정적인 설명이 우리의 계획을 바꾸게 했다.
광활하게 넓은 땅에 트란실바니아의 삶과 생활양식과 건축 그리고 멋진 풍경도 볼 수 있다는 마리아의 강력한 추천에 방문을 해보기로 했다.
들어가자마자 넓게 펼쳐진 잔잔한 호수가 우리를 반기고 호수를 주변으로 옛 트란실바니아의 가옥과 생활양식을 알 수 있는 다양한 구조물이 펼쳐져 있었다.
한마디로 1900년대 초 루마니아에 살았던 조상들의 일상생활, 특히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농업은 물론 어부들의 생활양식과 그들의 집들을 가져와 전시해 놓았고 와인 저장고, 곡식 저장소와 제분소(방앗간) 그리고 오일을 착유하는 기구, 곡식을 빻는 기구, 그리고 월풀 wirlpool, 대장간, 종교시설 등 다양하고 신기한 많은 생활 도구들이 많이 전시되어 그들의 삶과 생활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숲을 개간한 넓은 땅에 과거의 모든 유물들을 가져와 지금의 현대인들에게 전달하면서 과거는 단절된 게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소통되고 있으며 다만 조금씩 발전해 온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핀을 세우고 둥글게 만든 공으로 파인 홈으로 굴려 핀을 넘어뜨리는 놀이인데 지금과 거의 비슷한 방법이다. 무척 흥미로웠다.
때때로 실제로 내가 움직여 볼 수 있는 기구들도 있어 직접 만져보니 꽤 흥미도 있다.
여기저기 펼쳐진 숲 길을 따라 걸으면 그 당시 농민들의 가정생활과 직접 만든 수공예, 목조 교회, 풍차 등을 만날 수 있었는데 모든 생활을 자연과 함께 어울려 해야 했던 단순한 그렇지만 꽤 현명한 그들의 시골생활을 알게 했다.
단순한 작업 도구들에서 오히려 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고 그것 또한 우리 세대까지 이어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듯도 했다.
매혹적인 풍경 속에 자리한 이 야외 박물관은 자연과 문화를 조화롭게 생활해 나간 루마니아인들의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루마니아인들의 깊숙한 문화와 생활에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두 시간 여 걸었더니 다리도 몸도 지쳐온다.
시비우(Sibiu)는 루마니아 북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2007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된 아름다운 도시이다.
잡지'포브스(Forbes)'는 이곳을 '유럽에서 가장 살고 싶은 이상적인 도시 8위'로 선정하기도 했는데 루마니아 최초의 병원과 약국 그리고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브루켄탈 박물관이 문을 연 역사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사실 시비우는 과거 독일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라 루터교 교회가 그 당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주민의 80% 이상이 루마니아 정교회를 믿고 있는 이상 루마니아 정교회의 중요도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대주교구가 위치한 이 성당은 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외관이 무척 고풍스럽다.
원래는 두 개의 메인탑에 4개의 동종이 걸려 있었으나 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이 종 3개를 떼어 무기로 만드는 바람에 현재는 한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엄숙함 보다는 왠지 우아함과 고상함이 풍기는 그런 느낌도 있다.
벽마다 장식된 성화는 정교회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교회에서 나와 구시가지의 중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니콜라 발체스쿠거리(Nikolae Balcescu strada)를 걸어 시비우의 대광장(Mare Square)에 도착했다.
확 트인 광장다운 널찍한 맛이 사라져 조금은 안타깝다.
단지 다락방의 환기를 위한 단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창이었다는데 차우세스쿠 시대에는 이 창이 마치 감시의 눈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지금은 '시비우의 눈'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이 고장의 명물이 되어버렸다.
광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응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건물의 창 하나에도 해학과 풍자가 느껴져 재밌다.
낭만이 느껴지지 않는 다리였지만 다리 아래를 걸어가는 돌길의 풍경은 무척 낭만과 분위기가 있다.
멋진 시계탑도 눈에 보인다.
이 탑은 시비우의 상징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복원을 거친 결과 현재는 1층에 세워진 건축만이 초기 건물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광장(마레)과 소광장(미카)을 연결해 주는 문이 있는 탑인데 마을의 화재를 감시하고 감옥으로도 그리고 박물관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대성당과 그 주변의 네 개의 작은 탑은 시비우가 외국인들을 사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여주는 권한의 의미였다고 한다.
정교회 내부에서 많이 봤던 성화도 없고 금빛으로 덮인 화려한 제단은 물론 정교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없지만 성당 그 자체가 주는 웅장함과 엄숙함이 저절로 느껴지는 곳이었다.
타워에서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러울 정도다.
벌써 이렇게 내 체력이 약해졌나 속상하기도 했다.
달콤한 커피가 생각나 광장 카페에서 잠시 안정시키기로 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광장 풍경은 아직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한낮의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수기가 되면 이 조그마한 올드타운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일 텐데 이 광장이 얼마나 북적거릴까 싶다.
고풍스럽고 고즈넉하며 한가한 분위기를 느끼기엔 어려울 것 같다.
다시 힘을 내 시비우 올드 타운 한쪽(cetatii street)에 있는 Potter's tower(도자기의 탑)까지 걸었다.
15세기에 돌로 세워진 탑으로 방어벽의 역할을 했던 타워다.
도시 성벽을 따라 거리와 주변의 공원을 산책하는 길이 꽤나 아름답다.
다행히 이 도로는 차들이 들어올 수도 주차를 할 수도 없는 곳이라 구시가지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거리였다.
중세 성벽 위로 우뚝 솟아 있는 탑이 무척 인상적이다.
비록 복원을 한 타워지만 멋진 타워를 감상하고 옛 풍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복잡한 중심가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이 굳건한 성벽이 시비우를 오랫동안 지켜주었나 보다.
걷다 보니 노란색 건물의 '시비우 주립 필하모닉 홀'이 나타난다.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왠지 무척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홀 일듯 싶다.
시비우의 주립 필하모닉은 매주 클래식 음악 콘서트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 콘서트를 개최한다고도 하니 시비우가 문화도시역할을 하고 있음은 확실했다.
우리 부부도 적어도 매 달 한 두 번 이상 공연 관람을 하는 덕에 예술 향유에 대한 갈증은 없지만 한번쯤 소박하고 예스런 풍취가 있는 시비우의 올드타운 홀에서 음악회를 경험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시비우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번쩍 거린다.
10년 넘게 자동차를 렌트해 여행을 다니는 중에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당황이 된다.
구글 검색으로 정비소를 찾아보니 다행히 주변에 정비소가 있어 들리기로 했다.
엔지니어가 점검을 해주는 동안 잠시 대화를 했는데 한국에서 왔냐며 한국의 자동차 '기아(KIA)'는 이곳에서도 아주 좋은 차로 인정받는다며 엄지를 세워준다.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점검결과 우리 자동차 바퀴의 압력이 너무 높은데 이럴 경우 빗길에서 미끄러질 위험이 있다면서 네 개의 바퀴에서 조금씩 압력을 낮춰준다.'
이후 경고등의 번쩍거림은 사라졌고 우리는 감사의 표시로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친절이라고 생각하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가져온 기념품을 건네니 좋아한다.
사람들의 친절함에 우리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