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지현 Jul 14. 2024

내가 꿈꾸던 시골 생활의 이상향을 만나다.

시비엘 마을의 숙소와 마리아 할머니

우리는 지금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한적한 마을, 시비엘(sibiel)에 와있다.

시비엘은 독특한 특징을 가진 전형적인 트란실바니아의 마을로 구불구불한 도로, 울창한 초원 그리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숲이 있는 목가적인 마을, 한마디로 평화로운 휴양지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이다.

이런 마을에서도 좁은 도로를 한참 달리다 어렵게 찾은 한적한 외딴집에 우리는 머물고 있다.

루마니아의 시골집에서 머물며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루마니아의 가정식도 맛보고 싶어 루마니아의 농가를 찾았다.

  


이 숙소는 70대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숙소 전경

마당까지 나오며 반갑게 우리를 반겨주는 마리아 할머니...

처음 보는 우리에게 그녀의 따뜻한 환대가 무척 고맙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우리는 번역기를 이용해 대화를 대부분 주고받았지만 우리를 반기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느끼고도 남았다.

여행 중 레스토랑에서 루마니아의 전통 음식을 주문해 먹어보긴 했지만 루마니아의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평범한 음식이 먹고 싶어 마리아에게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부탁드려도 되는지 여쭤보았더니 흔쾌히 해주신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부탁이었는데 쉽게 응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우리는 도착 첫날부터 정성이 가득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양갈비찜과 빵, 야채샐러드, 그리고 디저트까지 풍성한 식사를 내어주셨다.

식탁에 올려진 메뉴는 샐러드와 빵, 메인요리 그리고 디저트인데 하나하나가 직접 그녀의 손으로 준비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양 요리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즐겨 먹는 요리가 아니었는데 마리아가 요리한 부드러운 양갈비찜은 양 특유의 냄새가 없어 아주 잘 먹었다.

양고기라고 미리 언급을 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먹었을 정도이다.

특히 독특한 소스로 버무려진 야채샐러드는 내 입맛에 잘 맞았는데 소스의 맛과 잘 어울린 야채가 무척 파릇파릇하다.

야채가 싱싱하다고 하자 지금 식탁에 놓인 야채는 모두 정원에서 직접 키워 재배를 것들이라며 식탁에 있는 모든 재료는 슈퍼에서 산 것이 아니라고 자랑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심지어는 달달한 디저트 마저 직접 구운 것이라고 하신다.

놀랍다.

사실 나는 마켓에 자주 가는 편이다.

모든 야채를 사고 심지어는 때로는 야채에 들어가는 소스도 살 때도 있다.

빵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빵을 직접 만들어 먹기가 번거로워 베이커리에 자주 들린다.

한국에서의 우리의 식사와 비교가 되어 놀라움과 부끄러움이 함께 왔다.


한참 동안 마리아와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했다.

아들은 부쿠레슈티에서 살고 있고 지금은 남편과 살고 있는데 아들은 주말이 되면 올 거라고 했다.

외딴곳에서 부부만 살면 외롭지 않은지 여쭤보니 의외로 그녀의 하루가 너무 바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식사 후 정원을 소개해 주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나가셨는데 실제로 집 뒤에 펼쳐진 넓은 땅엔 우리가 먹었던 거의 모든 야채들이 비닐하우스와 정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정원 한쪽에서는 다양한 허브들도 자라고 있다.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며 모든 허브잎을 따서 냄새를 맡게 했는데 향이 부드러운 것부터 강한 것까지 다양한 향이 난다.

이렇게 많은 식물들을 키우고 계시니 이 모든 걸 관리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바쁠지 이해가 간다.

존경스러울 정도다.

정원에는 거위를 키우기 위해 직접 만든 자그마한 연못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거위 대여섯 마리가 마당을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데 다행히 거위들이 알을 낳아주어 잘 먹고 있다고 한다.

거위들과 연못

심지어는 집에서 마시는 물도 샘에서 직접 길어 먹는 건강한 물이라며 우리에게 자신 있게 권해주신다.

정말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 계시는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잠시 집 구경을 하며 정원을 둘러본다.

넓은 정원에서 드넓은 평원을 바라보며 자연과 함께 사는 분들...

나는 어떤가?

내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자유를 포기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창이 넓고 많은 창이 있는 집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는, 여행 중 이런 시골 농가에 머물 때마다 나도 이런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늘 마리아와 함께 이야기하고 그녀의 생활을 알게 되니 내가 원한다고 쉽게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함은 물론 이런 생활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리라 싶다.

마리아는 이런 시골 생활을 한지 약 10여 년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이웃도 없는 이곳에서 마을로 나가려면 차를 몰고 한참을 운전해 가야 하는 이런 고립된 생활을 어떻게 이어왔는지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홉 시를 넘긴 시골 밤의 풍경은 그야말로 암흑이다.

발코니에 나가 보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볼 수 있는 건 하늘에 떠있는 별들 그리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뿐...

기분 좋은 쌀랑함과 적막함에 취해 한참이나 멍을 때린다.

네온사인에 휘황찬란한 야경보다 나는 이런 밤을 더 좋아하나 보다.

내가 지내던 한국의 밤과는 많이 다른 시비엘에서의 밤이 서서히 깊어간다.




다음날 아침, 난 제일 먼저 발코니로 나가 일출을 본다.

일출이 장관이다

매일 아침 이런 풍경을 보며 아침을  시작하는 생활도 꽤 멋진 일과 중 하나일 것 같다.

발코니에서 본 일출과 주변 풍경

주방에 내려가니 마리아는 여섯 시부터 음식을 만들고 우리를 기다리셨다고 한다.

어젯밤 우리와의 아침 약속 시간을 착각해 일찍 일어나셔서 준비하셨던 것이다.

계란 오믈렛, 마늘과 아보카도를 갈아 올린 토스트, 그리고 야채샐러드, 직접 구운 과자와 과일 등이 식탁에 준비되어 있었다.(아침 식사 전 사진을 찍는 습관은 여전히 서툴다..)

커피도 직접 내려주신다.

이걸 모두 새벽에 직접 모두 만든 음식들이라 생각하고 먹으니 맛을 평가하는 건 죄송한 일이다.

정성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에 있으면 아침을 건너뛰기가 다반사인데 이렇게 맛난 아침을 대하니 배가 불러도 자꾸 손이 간다.

야채샐러드가 유독 너무 맛있어 소스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리니 이 소스들은 본인이 다양한 재료를 섞어 만들어 오랫동안 저장해오고 있는 것들이라고 한다.

마치 제철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해서  오랫동안 먹고 있는 한국의 김치와 비슷했다.

식사 후 나를 소스들이 저장되어 있는 곳으로 데려가는데 그곳에는 수십 병의 소스들이 병에 담겨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아~ 놀랍다.

이러니 야채샐러드에서 깊은 맛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소스 저장소

맛있는 음식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이걸 미처 생각지 못하고 소스의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으니 주부로서 30년이 훨씬 넘은 내가 생각이 너무 짧아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훌륭한 음식들과 고소하고 향긋한 커피까지 누렸던 호사스러운 아침식사에 마리아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우리는 시비우(Sibiu)로 나들이를 하러 나갔다 오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오늘의 저녁 식사는 내가 직접 주방에 들어가 김밥과 계란국을 만들어 대접해 보기로 했다.

한국마트에서 산 단무지를 제외하고는 오이, 당근, 시금치, 소고기, 달걀 등은 현지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내가 김밥과 국을 준비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아는 주방에서 나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김밥을 만들며 많은 대화를 했는데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을 꽤 좋아한다는 그녀의 취향에 무척 놀랬다. 오페라는 물론 모차르트의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마을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자주 간다고 했는데 며칠 후 오케스트라가 방문한다며 무척 설레어한다.

나도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고 하자 더 반가워하며 마치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듯 마리아는 많은 얘기를 풀어낸다.

그러면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순간이 무척 행복한데 낮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 있다고 했다.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한적한 농가에서 혼자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생활의 단조로움과 지루함, 그리고 외로움을 이겨내고 있었을 마리아를 생각하니 한쪽 가슴이 시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얘기하는 그녀의 열정과 행복한 모습은 그녀에 대한 내 걱정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김밥에 들어갈 당근과 오이를 채 썰어 주었는데 김밥 만드는 법을 처음 보는 탓에 신기해하면서도 무척 흥미로워했다.

그러면서 모든 재료를 준비해야 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썰고 양념을 해서 볶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간다고 했다.

루마니아 전통음식인 사르말레(Sarmale, 한국의 만두와 같은 음식인데 밀가루가 아닌 양배추로 겉을 싼다.)도 시간과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 김밥 준비를 하는 걸 보니 사르말레보다 더 힘들다고 하신다.  

밥솥이 없어 냄비에 밥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밥이 조금 진 듯하다. 김밥은 고슬고슬해야 하는데....

갓 지어진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는 것도 신기한가 보다.

밥맛을 보더니 매우 고소하다며 자꾸 맛을 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난다.

무려 10줄의 김밥을 만들었다.

저녁식사로 마리아와 남편, 그리고 밤에 도착하는 아들의 김밥까지 만들었더니 고맙다며 무척 좋아한다.

마리아는 완성된 김밥을 먹어보고는 맛있다고 환한 웃음을 짓는다.

나도 뿌듯하다.

낯선 주방에서 타인에게 나의 요리솜씨(?)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으로 만든 김밥이었는데 다행히 오늘 만든 김밥은 성공이었다.

과정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순간들이 행복했고 모든 이들이 행복해하니 뿌듯하고 행복했다.

고생했다는 남편의 칭찬과 마리아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오늘도 이렇게 보람 있고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여행을 다녀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