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블록 하나

발밑에서 멈춘 시선

by 여백로그


걷다 보면 문득 발밑에

시선이 멈출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회색 보도블록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 사이사이 박힌 흰색 블록 하나가

제 눈을 붙들었습니다.


별다른 의미 없는 조각일 텐데,

묘하게 ‘저’ 같았습니다.


어둠이 드리운 길 위에서,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에 놓인

작은 흰 점이 있었습니다.


흐릿하게 번지는 가로등 불빛에도,

그 블록은 묵묵히 제 빛깔을 잃지 않았습니다.


마치

"나는 여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살다 보면,

수많은 회색빛 순간들 속에 파묻히곤 합니다.


같은 색, 같은 리듬, 같은 일상이 이어집니다.


그러다 문득,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는 길 위의 흰 블록처럼,

누군가의 눈길을 붙잡고,

어떤 어둠 속에서도 제 색을 드러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제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비록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밤이라 해도,

제 안의 흰색은 여전히 또렷이

살아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오늘 밤, 흰 블록 하나가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당신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빛나고 있습니다.”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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