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심리치료 강의를 배우고 나서 나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발표해 보았다.
내겐 생각나는 2명의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와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엄마는 아빠의 가정 폭력을 참다못해 내가 2살 때 집을 나가셨다. 1살 남동생과 나 그리고 5살 언니를 두고선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셨다.
아빠마저 우리를 외면했고 결국 할머니가 우리 셋을 떠맡게 되셨다. 70이 훌쩍 넘으신 나이에 말이다.
주변에선 고아원에 맡기라고 성화셨지만. 출산과정에서 이미 두 명의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어렵게 아버지를 간신히 얻으셨기에 생명이 귀하다는 걸 아셨기에 우리들을 차마 고아원에 보내시지 못하셨다.
이모할머니가 준 땅에서 흙집을 짓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서 아궁이에 불 때서 밥 해 먹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였지만. 나라에서 나오는 정부미와 지원금으로 우리는 생명을 유지해갈 수 있었다.
언니가 3학년 때 남의 집 식모로 보내지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내가 소녀가장이 되었다. 국민학교 1학년 나이에.
늘 문제를 일으키는 남동생보다는 소녀가장처럼 묵묵히 농사를 돕고 공부도 척척 알아서 잘하는 나를 할머니는 늘 칭찬해주셨고 나를 믿고 격려해 주셨다. 어느 순간은 할머니가 나를 의지하게 되었다. 걷지 못하게 된 할머니를 목욕시켜드리고 머리도 잘라드리고 손톱을 잘라드리고 이가 없으셔서 잇몸으로 드시는 할머니를 위해서 가위로 반찬을 작게 잘라서 숟가락 위에 올려드렸던 때가 제일 행복했었던 것 같다. 백발에 엉덩이를 밀고 다니셨지만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내게는 최고의 어른이셨다.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해서 가장 마음이 아프지만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내가 평생 살아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성실 선생님이다.
제일 방황하고 찌질했던 그 시절. 반장으로 추천해주시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시고 참고서도 챙겨주시며 나를 따뜻하게 챙겨주셨던 최초의 사회인이었다. 가족도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사랑.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단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