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잘 안다는 착각
'사람을 안다는 것'이라는 책에 보면, 디미니셔(Diminisher)와 일루미네이터(Illuminator)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제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디미니셔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타인을 친구가 될 사람이 아니라, 이용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반면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둔다.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언제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관심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우어 그들이 자기 자신을 더 크고 깊고 더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
수십 년 뒤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많이 대체할 것이나 인공지능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 대 사람의 연결성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술을 탁월한 수준으로 연마하라고 한다.
"내 안의 잠재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 당신에게는 있나요?"
분초를 다투며 사는 바쁜 요즘 사회에서 나도 알지 못하는 내 안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격려해 주며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일루미네이터 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가 않다. 그들은 관심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그들이 자기 자신을 더 크고 깊고 더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들어 주며 다른 사람을 온전한 모습 그대로 바라봐 주는 사람이다. 그것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능력이 아니며 타인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선배님은 늘 귀신같이 저를 찾아주고 계세요. 진짜 신기해요."
교수님의 부탁으로 인연을 맺는 대학원 후배가 있다.
여수로 초대해서 함께 불꽃놀이를 보고 독립서점에도 가고 서시장에서 회도 떠먹고 기념품점을 돌아다니다가 길거리에 앉아서 해풍쑥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기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마워요. 너무 행복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덕분에 저도 선배님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어요.'라는 카톡 메시지를 받고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시간이었다니 다행이네. 나중에 너도 누군가를 돌볼 수만큼 힘이 생기면. 그때 네가 마음 가는 친구에게 내가 했던 것처럼 해주면 돼.'라고 답을 보내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종종 톡을 주고받고 전화도 하며 지낸다. 청주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급하게 산 고구마빵을 서프라이즈로 내밀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면접을 보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알바도 하면서 이제는 제법 자신의 삶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힘든 날이 있는 법. 어쩌면 우리는 서로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있나 보다. 내가 좋은 글귀를 보내거나 안부 전화를 하는 날이면 그 친구는 어떻게 알았냐고 오늘 할 말이 있었다거나 힘든 일이 있었다고 위로받고 싶었다고 표현한다. 다행이다. 그래도 내가 알아차려져서. 언젠가 그 후배의 마음이 단단해지고 세상 속에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해 본다.
"선생님 덕분에 기운 차리고 스트레칭하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도 했어요. 감사해요. 우리 또 만나요."
장애전담 어린이집에서 풀인 언어치료사로 일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보육교사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15년 만인 것 같다. 최근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적잖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잠긴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가는 그 친구에게 이제까지 내가 봤던 최고의 보육교사였고 아이들을 선생님만큼 사랑하는 선생님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고 말해 주었다. 끝내 그 친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자기를 좋게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꼭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 이후로 한번 더 만났다. 최근에 다시 일하던 곳에서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일을 그만두었고 다른 곳에 면접을 봤는데, 합격할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어서 힘들어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며칠 전부터 내가 조깅을 시작했고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는 말에 '우와, 정말 대단하세요. 그렇게 바쁜데 운동까지 시작하시다니. 우울해하며 아무것도 안 하며 하루를 보낸 자신이 반성이 되네요.'라며 요가 영상과 운동 전 스트레칭 영상을 보내주었다. 나는 너무 고맙고 덕분에 운동을 꾸준히 더 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나는 내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힘을 내준 그 친구가 고맙다.
"누군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가족이라서, 친구라서, 직장 동료라서 때로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하게 물어보지 않고 막연하게 이럴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서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한 집에 살아도, 30년을 살았다고 해도 상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주한 상황 속에서의 그 사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최근 엄마와 갈등을 겪고 있는 중학교 3학년 여자 아이의 심리평가를 해 주면서 엄마와 아이의 성격과 기질을 설명해 주었고 서로의 입장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많이 개선되는 것을 보며 기쁘다.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는 언니에게 '엄마가 우울하다고 하잖아.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엄마는 내게 와서 눈물을 보였다. 작은 갈등이 생겨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둘의 관계는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겠다는 희망이 보여서 기쁘다. 엄마와 딸일지라도 서로를 너무 모르고 지내온 것이다. 서로에 대해서 진심으로 알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일루미네이터는 어떻게 소통하는가?
'사람을 안다는 것'이라는 책에 나온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해 본다.
부드러운 태도
"부드러움을 다른 존재를 향한 깊은 감정적 관심이다. 부드러움은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유대감을 인식하게 하며 또 우리에게 존재하는 유사점과 동일성을 인식하게 한다."라고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는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말했다.
수용적인 마음
"내가 당신의 입장이라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라고 묻는 대신,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일 준비를 참을성 있게 하는 것이라고 신학자 로언 윌리엄스는 말했다.
적극적인 호기심
우리는 타인을 볼 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소설가 제이디 스미스는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상상을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기술로써 상상력을 훈련했다고 한다.
애정 어린 마음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났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중, 강도를 만나 옷을 빼앗기고 심하게 맞아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마침 한 제사장이 지나가지만, 그를 보고 피해 지나간다. 그다음에는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 역시 지나간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과 원수처럼 지내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긴다.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며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겠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애정 어린 마음이다.
관대한 정신
루트비히 구트만박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하반신 마비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 구트만은 다른 의사들과 다른 관점으로 환자를 바라본다. 그는 그 병원의 하반신 마비 환자들로 장애인 단체를 꾸린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전국을 무대로 하반신 마비 환자들이 선수로 참여하는 경기를 조직해 나갔고 마침내 그의 노력은 1960년 패럴림픽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당신은 타인을 진심 어린 눈으로 관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타인과의 깊이 있는 연결을 통하여 상대방을 이해할 마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빛을 비추는 일루미네이터입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내면에 숨어 있는 가능성과 따뜻함을 발견해 주는 당신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진심 어린 관심은, 그 무엇보다 강한 빛이 되어 누군가를 살립니다."
오늘, 당신이 비춘 그 따뜻한 빛은 누군가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