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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온전히 1.

불완전할 용기를 가지고 나로 거듭나기.

10월 1일. 상안감, 하안검 수술을 받았다. 사진에 불룩하게 찍힌 눈 밑을 보며 늘 불만이었던 나는 어느 날, 견적이라도 내어 보자며 용기를 내어 성형외과를 찾아가게 되었다. 눈밑 지방제거만 하게 되면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지금도 눈꺼풀이 많이 쳐져있으니 이참에 상안검 수술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실장님의 권고에 홀딱 넘어가 거금 300만 원을 10개월 할부로 결제하고야 말았다.

형부도 곧 하안검 수술을 해야 해서 매일 아침 경과 사진을 보내달라는 언니의 요구에 나는 붓고 멍든 얼굴을 매일 찍어 보낸다. 어느 날은 좋은 듯하다가 또 어느 날은 빨간 멍, 노란 멍이 들기도 하고 눈이 퉁퉁부어서 가뜩이나 노안인 내 눈이 더 잘 보이지 않아서 일주일을 백수처럼 빈둥거렸다. 스킨, 로션도 바르지 못하는 7일째가 된 지금도 눈 주변이 많이 당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간다. 꿰맨 자국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있어서 남편은 나를 볼 때마다 멜라니아 같다고 놀린다.


나는 왜 성형을 결심했을까?

51세를 맞이하여 부쩍 나이 듦을 느낀다. 체력도 쉽게 방전되고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는데도 머리가 이전 같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이 들어 보이는 게 싫었다. 마음은 아직도 22살 같기 때문이다.


22살에 남편을 만나서 23살부터 남편 뒷바라지를 시작한 나는 시어머님의 부채를 그대로 떠안은 남편 덕에 몇 천만 원의 빚을 갚아야 했고 남편의 주식 투자 실패와 1년 6개월간의 실직.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쓰리잡을 한 적도 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언어재활사로, 식구들의 저녁을 챙겨주고 7시부터 12시까지는 식당으로, 주말에는 새벽 6시부터 밤 6시까지 예식장에서 서빙을 했다.


이혼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5명의 새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나의 아들에게는 새엄마라는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둘째가 태어났고 암 수술로 인하여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둘째를 키워준다는 명목으로. 10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음주운전 사고로 인해 만신창이가 된 시동생과 함께 전용면적 20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우리 일곱 식구는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다.

시어머님의 세 번의 암 수술과 시아버님의 뇌졸중과 심장마비, 그리고 치매까지 큰 아들인 남편은 모든 짐을 짊어져야 했다.


우리의 희생 덕에 2남 2녀의 시댁 형제들은 모두 자리를 잡았고 이제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멀리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들의 중간고사가 끝날 즈음, 10월 어느 날, 나와 두 아들은 전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끝까지 백신을 맞지 않고 버티는 남편을 홀로 집에 남겨 두고서.


일요일 아침, 혼자 교회 가는 것이 불만이었던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우리의 만행을 고발하게 되었고 이른 아침 우리는 쌍욕을 얻어먹는 처지가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들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남편이 무슨 돈 버는 기계냐며, 이제 너희들은 자식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꼴도 보기도 싫으니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도 말고 내 눈에도 띄지도 말라는 시어머니의 엄포를 들으며 모닝커피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은 마구 두근거렸고 남편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22살에 남편을 만나서 남편과 시댁 뒷바라지 하며 두 아들 독박 육아에 20년 가까이 일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다. 나의 청춘을 다 바친 남편에게 그리고 시댁에서 나의 존재란 이런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반년 가까이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삶의 의미를 놓아버린 나는 어느 날 결심했다. 어차피 알아주지도 않을 희생.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고. 오로시 나로 살아보자고.


상담심리 대학원에 진학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임상심리사 2급도 합격했고 청소년 상담사 2급 필기도 합격했다. 아들러 심리학과 영화활용교육도 배워가는 중이다.


아들러가 말한 불완전할 용기를 가지고 이제 나의 삶을 새로 살아보고자 한다.

감당해 내야만 하는 삶에 매몰된 나를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

언젠가 나의 글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날을 꿈꾸며.

늘 호기심은 넘치나, 끈기가 부족한 나지만 최대한 1일 1 글쓰기를 해 보려고 한다.

다시 나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

글을 써 가면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질 것이다.
글은 내 삶의 거울이 되어,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오늘부터 다시, 나는 나로 서보려 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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