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세상에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게임이든 스포츠이든, 아니면 누군가와의 토론이나 사소한 말다툼에서까지, 누구나 이기는 것을 좋아하지 지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꼭 승패가 정해져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내 말이 맞기를 바라지 틀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내가 하는 말이 반드시, 꼭 틀렸기를 바라면서 주장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논리이고 이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는 것도 괜찮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는 것을 좋아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이 '사실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열린 마음가짐이 세상을 더 조화롭게 만들고 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기본이다. 반대로, 이러한 열린 마음이 없이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그리고 그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큰 권력을 얻게 된다면 사회에 크나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게 된다. 이는 논픽션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통해 서술한 여러 주장 중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있어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이다. 특히나 요즈음의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몇 가지 사회 현상들을 보며 이 열린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계속해서 되새기게 된다.
잠시 책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자인 룰루밀러는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 초대 총장으로 큰 명성을 얻고 수많은 업적을 이룩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탐구하며, 그를 작가 자신의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것을 목표하는 것으로 책 초반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른 느낌을 느끼게 된다. 기록적인 자연재해로 일생을 바쳐 쌓아 왔던 수천 개의 어류 수집 표본들이 깨져 이름표 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을 때 그가 한 마리씩 손으로 집어 물고기 피부에 이름표를 꿰매는 모습은 '혼돈 속에서도 과업을 수행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로 저자는 표현했지만, 서술된 모습을 상상해 본다면 그의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실상 매우 기괴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그녀가 일반적인 전기와는 다른 결로 스타 조던의 모습을 묘사한 이유는 책이 절정으로 나아가면서 드러난다. 그녀가 위대하다고 믿었던 스타 조던이 사실은 그와 적대 관계에 있던 스탠퍼드 대학교 이사장 살인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되고, 우생학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법제화하여 미국 내 강제 불임 수술을 전개하는데 기여했던 사람이었기에 그다지 위대하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사회에 악영향을 가져왔던 인물임을 깨닫게 되며 그의 부정을 폭로하는 글로 나아간다. 결말에 가서는 이렇듯 그릇된 사상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쳤음에도 아무런 속죄 없이 끝내 위대한 학자로서 삶을 마감했던 그에게, '어류라는 분류는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졌기에 어류, 즉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당신이 일생을 바쳤던 과업인 어류의 수집과 분류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이라고 통렬하게 주장하며 글을 마친다.
저자는 이렇듯 한 문단으로 정리한 것 이외에도 여러 주장들을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저자가 아버지와 나누었던 대화로부터 시작된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도 있고, 저자 스스로도 그러했던 비판 없는 맹목적인 우상화가 불러올 수 있는 잘못된 영향도 말하고자 했다. 특히나 그녀가 '민들레 이론'이라고 부르는, 누군가에게는 잡초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며 그 누구도 다른 어떠한 것의 가치를 감히 판단하고 정의할 수 없다는 부분이 아마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이며 저자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는 어류의 분류를 통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주목했던 부분은, 스타 조던이 그렇게까지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에 있다.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사소한 꽃 하나에도 이름을 붙여주던 상냥했던 과학 소년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과격한 우생학자가 되었던 것인가.
저자는 스타 조던이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에 혼돈 속에서도 의지를 지켜나갈 수 있었고, 반대로 이렇게 자존감이 높았기 때문에 절대 본인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기술한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가 이것이 '높은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라 '불완전한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전 글에서 서술한 것처럼 나는 자존감이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을 언제든 높일 수도 있고 낮출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실패나 패배가 있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본인이 항상 옳거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새기고 있기에 사실 내가 틀렸다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스타 조던은 절대로 자존감이 높은 인물이 아니었다. 본인의 절친한 동료를 지키기 위해 그의 비위를 고발하는 직원을 해고시키고, 총장으로서의 비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이사장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심지어는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그녀가 자연사가 아닌 독살이라고 주장하는 하와이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 '섬 출신의 무식한 의사들의 주장'라고 일축하며, 그가 데리고 온 2년 경력 의사의 주장을 인용하여 그녀가 독살당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신선하지 않은 진저 브레드와 함께 여덟 개나 되는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과식하다가 숨이 막혀 죽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인의 과오를 절대로 들추거나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패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그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사례들이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은 우생학을 신봉하는 것으로 이어간다. 강한 종이 더 오래 살아남고 우월해진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예컨대 따개비가 한때는 물고기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 온 결과 더 게으르고 단순한 형태로 퇴화했다는 것이 그가 믿었던 우생학 이론의 골자였다. 그는 이론을 합리화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간들도 그가 정의하기에 '우등'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번식해야 하고, 부랑자나 백치들은 모두 자기 핏줄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상냥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강제로 불임 수술을 하는 것을 법제화하기에 이른다. 절대로 본인은 틀렸을 리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보잘것없는 존재들을 말살하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의 이론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어찌 그런 잔인한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절대로 본인 생각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자신이 절대로 틀렸을 리 없다고 믿으며 조금도 질 생각 없이 아득바득 본인의 주장만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인생에 있어서 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이기에 저렇게까지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마치 한 번이라도 패배하면 자신의 삶이 부정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가끔씩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느 심리학 저서에서 보았던,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자녀의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과 부모가 자식에게 조건부 사랑을 주는 것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의 사례들을 떠올리며 이후 부모가 되었을 때의 나의 모습을 다짐하기도 한다. 틀림없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드러난,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 동안의 여러 자극들이 그의 성격을 만들었으리라, 그런 그가 위대한 명성을 얻게 되면서 큰 힘을 얻게 되자 그의 불완전한 자존감이 우생학이라는 잔인한 결론으로 이어져 사회에 악영향을 낳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2024년 12월의 한국에서도 절대 본인은 틀렸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혼란스러운 사회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다. 권력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신념만이 옳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사람들을 과격한 언어로 비판하며 갈등을 초래하고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들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안타깝게도 해가 지나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점점 더 사회가 분열되고 있다. 본인이 틀렸을 리 없다는 확고한 신념 하에 오늘날의 우생학, 즉 내 주장을 합리화하고 실천하기 위해 그에 반하는 것들을 말살하려는 행동을 시도하는 것까지도 나아간다. 이상적이고 순진한 말이지만 '지는 것도 괜찮다', '사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우상으로 삼았던 룰루 밀러가 그의 일생과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며 인생의 의미를 되찾고 민들레 이론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듯이, 우리들도 최근의 사건들을 반추하며 그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고 사회를 조화롭고 성숙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 틀렸을 수도 있음을 되새기며 대화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서로 분열되어가기만 하는 사회의 서로 다른 화살표를 다시 돌릴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나의 이 생각도 사실 틀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