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완벽한 크리스마스

by 하르딘

올해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굉장히 특별했다. 난생처음으로 크리스마스 날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보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많고,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았다. 작년까지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가족 아니면 연인과 보냈다. 연애 중이라면 연인과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솔로인 기간에는 가족들과 보냈다. 몇 년 전에 독립해 혼자 살고 있으면서 작년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던 연인과 헤어진 이후로, 자연스럽게 올해는 가족도 연인도 없이 완벽히 혼자 보내게 되었다.


예전이었으면 어떤 크리스마스 이벤트 같은 것들을 나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최소 가족들하고 있으려고 하거나 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오롯이 혼자 집에서 보내는 내 모습을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영화나 매체에서 그려지는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야 하는 따뜻한 날이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밖에 있으면 너무 추워서 코 훌쩍이게 되는 날을 어떻게 그렇게 감성적으로 만들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에 번화가라도 가면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또 뭐든 가격은 엄청 비싸다. 크리스마스는 그냥 빨간 날 일 뿐이라는 걸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


네에만 있으니 캐럴도 들리지 않고, 동네 카페 안에 있는 작은 트리 장식 같은 거 보이는 것만 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여느 주말 중 하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냥 그동안 밀렸던 책이나 좀 읽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좀 보고, 스페인어 공부나 해야지 했다. 생각보다 한건 별로 없는데 하루가 금방 갔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오전에 여느 때와 비슷하게 7시 즈음 일어나서 스트레칭과 홈 요가를 하고 모닝커피 한잔 하며 멍 때리고 청소를 했다. 오늘 하루는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만 있기로 했으니, 요리도 좀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구마도 쪄 먹고, 버섯과 어묵 사다가 반찬도 만들었다. 스페인어 공부를 좀 하다가 허기져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영화 한 편 보고, 중간에 낮잠도 한숨 잤다. 겨울잠 자야 하는 곰탱이인 나에게 낮잠은 너무나 달콤했다. 책좀 보다보니 금세 또 허기져서 저녁밥을 해 먹었다. 저녁 먹고 쌓여있는 설거짓거리를 보며, 음식을 만들어 먹고 치우고 하는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가는구나 싶었다. 저녁 먹고 설거지하고 나니, 하루 종일 집에 있어 찌뿌둥한 느낌이 들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이번 크리스마스 저녁부터 날씨가 급격히 추워졌다. 칼바람이 불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날씨엔 절대 안 나갔을 텐데, 산책하고 싶다는 갈망이 칼바람의 무서움을 물리쳤다. 옷을 세 겹씩 껴입고, 마스크와 모자까지 쓰고 집 근처 하천 산책로에 나갔다. 날이 좋을 때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 러닝 하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이 가득 차있는 곳인데, 강추위의 크리스마스 저녁인 이 날은 정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몇 분 걸어야 간간이 한두 명 정도 볼뿐이었다. 들리는 건 사람들의 말소리도 캐럴도 아닌, 그저 바람 소리뿐. 예쁜 조명들과 야경을 감상하며 나 혼자 이 큰 산책로를 전세 낸 느낌을 듬뿍 느끼고 왔다.


이 고요함을 느끼고 싶어서 산책 나오고 싶었나 보다. 집에 들어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자기 전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가득 채운 느낌이다. 특히나 추운 겨울만 되면 자꾸만 방전되는 내 체력을 고려하면, 나에게 꼭 필요한 하루였다. 영화처럼 로맨틱하고 떠들썩한 클리 스마스가 아니더라도, 이런 고요한 크리스마스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고요한 내 하루만큼 내 폰도 하루 종일 고요했다. 기를 쓰고 유지하려고 했던 여러 인간관계들에서 힘을 빼고 나니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이따금씩 방문하는 외로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외로움은 적당히 있다가 다시 떠나겠거니 한다. 처음으로 혼자 보낸 첫 크리스마스는, 가장 완벽하게 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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