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역습

by 이민주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한다. 10대인 학생들부터 정년을 앞둔 60대 선배교사까지, 아마도 학교만큼 구성원의 연령대가 다양한 집단은 또 없을 것이다. 적당할 만큼 사회생활을 했고 굳은살이 생길 만큼 꽤 많은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했다. 이 빌런을 만나기 전까지.


"한 무리에 빌런이 없다면 그건 바로 나라던데. 진짜 제가 제일 빌런 같아요."

작년에 우스갯소리로 동료선생님들과 이런 농담을 자주 했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난 참 운이 좋았다. 첫 발령받은 학교에는 멋진 선배님들이 많았다.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동료교사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마치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분들로 가득했다. 합리적이고 협력적인 동료관계가 어디서나 통용되는 이야기라고 착각하게 된 것은 전부 나의 멋진 선배님들 이었다.


요 며칠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늘어놓지 않으려고 한다. 이제부터 나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 그 어느 한 부분도 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을 생각이다. 난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경계해 왔다. 미움이란 나 자신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오늘은 내 스스로 이 불문율을 깼다. 참 우습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빌런이 불행하길 온 마음을 다해 빌었다(이번주에는 성당을 가야겠다). 퇴근길 내내 빌런의 불운을 기원하다 언젠가 무심코 넘긴 선배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느 해는 학생이 너무 예뻐서 버티고, 어느 해는 동료가 너무 좋아서 버티고, 어느 해는 수업이 너무 재밌어서 버텨. 삼박자가 완벽한 해는... 축복인거지."


그렇다, 모든 게 완벽할 순 없다. 요즘 나의 행복은 온통 학생들이었다. 옆에서 종알거리는 말소리도, 수업시간이 끝나면 자연스레 모여들어 질문하는 목소리도 어쩜 그리 예쁘던지. 작년까지 내가 받았던 복은 동료였고, 올해 내가 받을 복은 예쁜 학생인 모양이다. 신은 여전히 내 편이었다. 매년 하나씩 덫을 놓으시면서도 이렇게 든든한 무기 하나씩 던져주시는 걸 보면. 덫과 무기 모두 감사히 받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조금 더 멋진 교사가 되어보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경험치를 쌓아야 이 정도의 빌런은 웃어넘길 수 있게 될까요?(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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