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이 Jan 29. 2024

남편이 휴직을 한다.

휴직의 바통터치(2)


그는 소문난 일 중독자였다. 


남편은 지난 십수 년을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출산을 할 때에도 그는 업무 관련 통화를 하느라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주말에 놀러가서도 필요하면 주저함 없이 일을 했다. 원래부터 일머리가 좋은 편인성실하기도 해서 연차가 좀 쌓이고 나서부터는 진심으로 일을 즐기는 게 보였다.


나로서는 왜 저렇게까지 회사에  바쳐서 전력질주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남편이 자랑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때마다 우수한 고과점수와 각종 포상을 받아오는 의기양양한 모습이 보기 좋았고 덩달아 뿌듯했다.


그래서 어느 날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나도 휴직하면 어떨까?"라고 말을 꺼낼 때에는 놀라움을 넘어서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마침 나 역시 그때쯤엔 평소와 달라진 그를 이상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작년 이맘때였다.

무렵 그는 갑자기 밤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혼자 술을 마셨다. 매번 과음을 하고 술 기운에 잠을 잤다. 아니, 잠이 들었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혼잣말을 하고 집 안을 서성였다. 그에게 어떤 중대하고도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모를 리가 없었다. 곧 우리는 그의 직장 생활에 대해 길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내게 힘든 점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이 지치고 피곤하다 했다. 항상 당당하고 자신만만하던 평소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원래부터 베짱이 같은 인간이다. 그래서 그가 휴직을 말하자마자 찬성을 했다. 당장 사람 하나가 무너지게 생겼는데 그놈의 돈, 좀 없어도 되었다. 사람이 쉴 때도 있어야지 어떻게 맨날 일개미처럼 사나.


내가 휴직을 통해 마침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았듯이 그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되리. 명예와 재물에 관한 집념은 잠시 잊고 가족의 품 안에서 충분휴식한다면... 원래의 밝고 의욕적인 사람으로 돌아올 것임을 굳게 믿는. 나는 그의  처진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다만 그의 휴직 이후 가계를 어찌 꾸려갈지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들도 함께 시작됐다.(바로 전에 그놈의 돈이 없어도 된다 적었기에 참 우습긴 하다만.)


대기업에 다니는 그에 비해 교사 봉급이 많은 편은 아니일단 당분간은 긴축 재정을 실시하기로 했다. 안그래도 올해 상당한 지출이 예상되어 긴장하는 중이다. 양가에서 가족의 결혼식이 각각 3, 4월로 예정되어 있어서 성의껏 축의도 하고 싶고, 올해부터 다섯살 째를 내 욕심으로 영어 유치원에 보내때문이다. 아무래도 좀 더 아껴야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자, 당장 며칠 전에 연납으로 자동차세 라든지 별 생각 없이 쓰던 아이들 간식비 같은 것도 은근히 신경 쓰이고 부담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는 아들 기침이 오래 가서 집 앞 과일 가게에 갔는데 글쎄, 배 하나에 8천원이란다.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 세 개를 사왔다. 그리고 하나를 깎아 아이들과 남편만 먹이고 나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의 심정으로 먹지 않았다. 당분간은 과일 값도 아껴 보자고 굳게 다짐하면서. 




(그럼에도) 갈수록 남편얼굴에는 활기가 돈다. 


설레는 마음을 굳이 감추않고 착실히 휴직 준비를 다. 택배로 각종 주방 용품들을 사나르 캠핑 도구며 놀잇감을 챙겨서 아이들과 캠핑 다닐 생각으로 벼르고 .


그는 생전 처음 머리도 기르기 시작했다. 길게 길러서 하나로  다니고 싶단다. 와우, 왜 그런 생각을 한 걸까. 얼마나 더 못생겨지려고 그러는모르겠지만 그래, 원하는 대로 어디 한번 머리도 기르고 수염도 기르고 다 길러보라(?) 했다. 그렇게 해서 그대가 자유롭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면야.

아마 이런 모습일까.

가끔은 내 비장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우 신난 듯한 그가 조금 얄밉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껏 내가 휴직할 수 있던 건 전부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온 그 덕분이니, 나 역시 너그럽게 그의 들뜸을 용인하기로 한다.


이제 3월이면 우리는 서로 역할을 바꿀 것이다. 

육아와 일의 바통터치.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면 토끼 같은 아이들이 뛰어와 품에 안기고, 그가 긴 머리를 조신하게 묶은 채 따뜻한 저녁 밥차려 놓으리라.


나의 복직과 의 휴직이 만들어 낼 새로운 나날들이 아무쪼록 무사하기를...간절히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3월에 복직을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