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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이 Aug 18. 2024

3월 신학기, 적응하는 중입니다.



근무 첫날 아침부터 너무 어리바리했다.


한 남자가 내게 강당 위치를 물었다. 딸 입학식을 보러 왔단다. '아까 건물 배치도를 보긴 했는데...' 저기가시면 같다며 자신 없이 손짓하고는 혹시 몰라 그와 함께 가기로 했다. 아뿔싸, 방향은 맞았는데 층이 달랐다. 강당은 3층인데 4층까지 올라간 거다.


-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올해 이 학교가 처음이라...

- 저기, 물어볼 게 있는데요. 진짜 선생님이 맞습니까?


내 말과 동시에 나온 아버님의 유쾌한 농담 한 마디. 우리는 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불쾌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웃음으로 가볍게 풀어 주셔서 감사했다. 잠시 후 입학식이 시작됐다. 교사 소개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인사를 드렸다. 고개를 드는데 좀 전의 그 아버님과 눈이 마주쳤다. 미소를 지으며 박수 치는 그 분을 향해 '아버님, 보셨죠? 저 선생님 맞습니다!'라고 열심히 텔레파시를 보냈다.


한편 선생님다운 선생님이 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리바리하게 다녀야 '진짜'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같은 학년 교무실을 쓰게 될 선생님들은 나까지 모두 일곱이다. 다들 인상이 좋으셨다. 경력이 오래된 선생님 세 분, 그리고 나보다 열 살쯤 어린 선생님 세 분. 나는 나이와 경력 모두 딱 중간이다. 친구 같은 또래 선생님이 없기는 하지만 학교에 놀러온 건 아니니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다. 관록 있는 선배 교사들께는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배울 수 있겠고 젊은 선생님들에게서는 또 그 나름의 참신하고 기발한 감각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정작 문제는 내 자신이다. 안그래도 내향적인 성격에 사회성이 부족한 편인데 몇 년을 쉬다 오니 그야말로 완전 뚝딱이 로봇이 되어 버렸다. 오늘 하루 선생님들과 지내면서 내 사회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아주 절실히 체감했다. 안 그래도 한 부장님이 애 둘 낳은 아줌마가 수줍은 새색시처럼 굴면 어떡해? 라고 말씀하신 걸 보니 이미 다른 분들도 다 느낀 것 같다. 아이고 어쩌나. 이것도 노력해야겠지. 무리해서 활발한 사람처럼 굴 필요까진 없겠지만 자연스럽게 조직에 스며들려면 이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바꿔야 한다. 메모장을 열어 할 일 부분에 몇 글자 더 적어 넣었다. '긴장 풀기. 웃기. 말 걸기.'     





수업을 알리는 종 소리.


교실에 들어서니 단정하게 앉은 아이들이 보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얼굴들... 아이들을 보자마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데 처음부터 작전 실패다.  


- 안녕, 반가워. 너네 정말 귀엽게 생겼다!


위압적인 외모와는 사뭇 다른 하이 톤의 목소리와 엉뚱한 멘트 때문인지 교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의 눈빛에서 이 이상한 아줌마 선생님은 누구냐는 호기심을 읽을 수 있었다.


원래 신학기 첫 수업은(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학생들에게 기선 제압을 하는 시간이라 생각해 왔다. 3월 한 달간 교사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일 년이 고달프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 교실에 들어설 때는 내가 만만찮은 교사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말겠다는 비장한 마음이 있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그러나 알 수 있었다. 기 싸움 같은 건 애시당초 할 필요가 없었다. 굳이 엄한 척 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아이들을 마주하며 느낄 수 있었다. 곧 이어 진솔한 속 마음이 튀어나왔다.


- 선생님이 오래 쉬다가 와서 조금 서툴고 부족할 수도 있어. 그래도 너희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할게. 쉽고 재미있는 국어 수업이 되도록 수업 준비도 열심히 해 올거야. 그러니 너희도 나와 내 수업을 존중해 주면 좋겠는데. 할 수 있겠니?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빛들이 참 맑았다. 불현듯 앞으로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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