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거실 소파에 앉으면 고개를 쑥 내밀어 아래쪽 분주한 공사 현장을 훑어보는 게 버릇이 됐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크레인이며 흰 안전모를 쓰고 자재를 나르는 인부들... 위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살아 움직이는 작은 레고 블럭들 같았다. 손톱만 한 크기의 형상들이 왔다갔다 움직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미니어처 장난감을 바라보는 것 같아 귀엽고 흥미로웠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는 그저 그런 생각과 느낌일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그 공사장 인부들을 수평의 눈높이에서 가까이 마주치게 되었다. 아들이 학교 준비물로 줄자와 노트를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던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섰다. 문구점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서 파란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가 마침 현장 일을 마치는 시간인지 공사장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우리는 방사형 모양으로 퍼지는 인부의 무리에 휩쓸리고 말았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들은 멀리서 볼 때는 다들 비슷해 보였으나 차츰 가까워지니 각자 다른 개인들의 형상이 두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니트 모자를 쓴 남자, 뿌옇게 김 서린 안경을 콧등에 걸친 남자, 큰 백팩을 둘러 멘 남자, 몸에 걸친 검은 옷보다 더 어두운 얼굴색의 남자...다들 어지간히 피곤과 추위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외국인도 꽤 많아보였다. 라이라이 손짓하며 동료를 부르는 남자는 중국인이겠고, 몸통이 두껍고 눈빛이 강한 남자들은 낯선 언어를 썼는데 느낌 상 몽골인인 것 같았다. 가끔 여자들도 보였는데 그녀들도 중국말을 했다.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를 똑닮은 백인도 보였다. 금갈색 머리에 흰 피부의 얼굴이 아무래도 눈에 확 튀었는데 그가 투박한 안전화와 작업복 차림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근처 기업 회사원이나 아니면 영어 유치원의 원어민 강사 쯤으로 착각했을 거다.
인부들은 우리 말고도 순백색의 비숑 프리제를 끌고 산책하던 여자들과 교복을 입은 어린 연인, 노란 색의 학원 차량들과 뒤엉키며 아주 혼잡한 저녁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벌겋고 꺼먼 얼굴들, 전신에 짙게 밴 피로감, 전투복 패턴의 작업복, 허리춤의 수건, 안전화 같은 것이 묘하게 튀어서 일상복 차림의 주민들과는 불협화음을 냈는데, 우리가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어도 콩과 팥마냥 서로 좀처럼 섞이지 못하는 모습이 좀 멋쩍어질 정도였다. 하여튼 같은 곳에 서 있어도 유독 그들만 낯선 이방인들처럼 느껴지는 게 참 희한했다.
잠시 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인부들은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썰물처럼 빠르게 건물들 사이로 사라졌다. 잿빛의 무리가 잠시나마 점령하던 길거리가 순식간에 다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전에 누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빠른 퇴장이었다.
이상했다.
문구점에서 아들의 준비물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온 그 날 저녁, 나는 자꾸만 그들을 떠올렸다.
이 신도시의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을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 거실에서 내려다 볼 때에는 그저 막연한 작은 피사체에 불과했는데 그날 그렇게나 가까이서 마주하고 보니 참 당연하지만 그들 역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었다. 고유한 개성과 영혼이 깃든 인간들이 근육을 움직이며 고된 노동을 할 적에, 나는 저 위에서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그들을 내려다보고는 레고 블럭을 연상했던 것이다.
그것을 자각하자 많은 것이 신경쓰였다. 특히 이곳의 집을 지으면서도 정작 이 도시와는 썩 어울리지 않는 그들의 묘한 분위기가 어쩐지 불편해졌다. 그날 나는 그들에게 뭐라도 좋으니 한 마디의 말을 걸고 싶었던 듯하다.
피곤하시죠? 얼른 들어가 쉬세요.
오늘 같이 추운 날에는 일 하기가 힘드시겠어요.
이런 날은 뜨끈한 찌개가 최고죠! 김치찌개 추천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그런 말들을 걸었다면 어땠을까.
어떠긴, 웬 미친 여자인가 싶었겠지.
시답잖은 상상은 그쯤에서 그만 두기로 했다.
정작 묻고 싶고 하고 싶던 말들은 꺼내지도 못한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