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일이다.
남편의 오랜 버킷리스트를 위해 한강변에 위치한 한 아파트를 보러 갔다.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살기', 지방에 살아도 마음만은 서울 남자인 그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소원이었다. TV에서 한 연예인이 나와 '한강변에 살아보니 매연이 심해서 창문을 열기도 쉽지 않고, 눈도 너무 부시더라.'라는 말을 했는데, 그걸 본 그가 '아, 매연이 심해서 창문을 열기 쉽지 않고 눈이 부신 한강변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해서 웃었던 적도 있다.
나는 뼛속까지 시골형 인간이다. 그래서 그의 꿈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와는 정 반대로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주택살이를 늘 동경해왔다.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또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면 마냥 남편의 말에 고개를 저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역시 몇 번의 이사를 겪으며 경제적 자산으로서의 집의 효능을 잘 알게 되었으므로.
그날 우리 부부가 둘러본 아파트는 한강변이긴 하지만 서울에서만 놓고 보면 집값이 아주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전 재산에 대출을 더 얹어도 입성할까 말까 하는 곳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막상 가보니 그곳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부동산 사무실에 전화기가 두 대 있었는데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집을 보지도 않고 일단 매물이 있으면 계약금을 넣겠다는 전화들이란다. 집을 내놓은 이들에게도 전화가 왔다. 매물을 거두거나 집값을 올리겠다는 전화였다. 그런 장면을 처음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전화기 너머로 생생하게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심드렁하던 내 마음도 조금씩 동요되었다.
집을 보러 가는 길, 우리 부부의 심장 박동은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파트 동의 입구에는 다른 부동산에서 온 부부가 서 있었다. 우리와 같은 집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내 또래인 듯한 나잇대의 그 부부에 왠지 묘한 경쟁심이 들었다.
저쪽 부동산 사장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5분 간격으로 순서를 정해서 차례로 보자고. 그러자 우리 부동산의 중개사님이 얼른, 그럼 우리 먼저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마음에 들면 일단 문자로 신호를 주세요. 계약금 먼저 건네는 사람이 임자니까요." 그도 사뭇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들어간 집은 그래서 어떠했나.
기대보다 별로였다. 지금 사는 집보다도 낡고 후져 보였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한강 뷰가 아니라 듬성듬성 건물 뷰였다. 내 표정을 본 부동산 사장님이 얼른 다가와 몸을 왼쪽으로 틀어주었다.
"저 끝에 보이시죠? 한강."
아아, 저어기, 건물 사이로 한강이 조금 보이긴 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다시 우리를 데리고 주방으로 갔다. 거기서는 좀 더 확실하게 한강뷰가 펼쳐졌다. 주방에 서서 설거지를 할 때 보이는 풍경이렷다. 나는 실망해서 실눈을 뜨고 팔짱을 꼈지만, 남편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는 나보고 부동산 공부 좀 하라고 핀잔을 줬다. 밖에 서서 기다리는 그 부부보다 먼저 기회를 잡자고 했다.
"모르겠어?이 집에 이 가격이면, 정말 괜찮은 거라고."
서둘러 부동산 사무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알쏭달쏭한 물음표만 남긴 채였다. 사무실의 전화기 두 대에도 여전히 불이 났다. 안보고 계약금을 넣겠다는 이들과 반대로 매물을 거두겠다는 이들, 방문 약속을 잡는 이들까지 모두 숨가쁘게 얽혀 흘러갔다. 나 같은 부동산 문외한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어느새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부동산 중개사와 얘기를 했다. 보고 온 집이 마음에 드는지 당장이라도 살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중개사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거니 그는 돌연 조건을 바꿨다. 급전이 필요하다며 갑자기 계약금과 중도금의 비율을 많이 올렸다. 예상보다 높은 금액이었다.
그이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부동산 사장님도 안타까웠는지 "제가 0천은 빌려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씀해주기까지 하셨다. 그 마음은 감사했지만 나는 슬슬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너무 어지러웠다. 이미 상황은 명확하게 이집은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정하는 건지, 아니면 도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한순간 사라져버린 신기루를 본 듯, 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부동산을 나왔다.
아파트 옆으로 한강이 윤슬을 반짝이며 고고하게 흐르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변을 따라 여유롭게 조깅을 했다. 그걸 보며 남편은 더욱 울적해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차피 가볍게 둘러보러 간 거였지 않냐며, 여러 이유를 대면서, 운좋게 그 집에 들어가도 아마 힘들었을 거라며 그를 위로했다.
사실 방금 전 그가 부동산에서 고민할 무렵, 나는 그곳의 또 다른 손님과 다른 중개사의 대화를 듣고 적잖은 충격을 받은 참이었다. 우리를 보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말을 순화하자면 '경기도 사람들이 하도 이곳으로 이사를 오려고 해서 동네 물이 안좋아지는 느낌이다. 얼른 이 동네를 떠야겠다.'라는 것이다.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아파트 주민 같았는데, 그의 오만하고 격 떨어지는 말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덩달아 그 동네에 대한 인상이 나빠졌음은 물론이다. 만약 남편도 그 말을 들었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집의 가격표가 사람을 가르는 잣대가 되는 순간을 직접 목도하고 나니 정신이 아찔했다. 이날의 집은 삶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속하고 어디에 닿지 못하는지 규정해주는 잣대였다. 남편은 내게 부동산 공부를 시켜주려 나를 데리고 이곳에 왔겠지만, 이날부터 내 마음은 그의 의도와는 정 반대가 되었다.
부동산, 그리고 집값 이야기가 언젠가부터 좀 불편했는데, 이날 완전히 질려버렸달까. 그가 그토록 바라는 '한강변 아파트'가 어떤 삶의 장면이나 터전을 의미하기보다는 경제적인 프로젝트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와 나의 견해 차이는 더 뚜렷해지고 말았다.
그는 나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감이 떨어지고 어리석다 여긴다. 실제로 우리가 봤던 그 집은 그 후 수억이 뛰어 지금 사는 집과의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으므로. 그러나 집을 가격으로만 바라보고 사는 건, 그건 내게 영원히 가시지 않는 갈증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과도 같았다. 꼭짓점을 향해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옮기고 또 옮기고...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의 삶을 꿈꾸는 부동산 문외한의 입장에서 적어본다. 지금의 나는 살아가는 공간보다 살아가는 방식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싶다고. 집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정서적 공간에 가까웠으면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