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뉴스에 관심이 생기다.

by 승연


(*2년전 작성했던 글입니다.)


언젠가부터 모임에 나가면 꼭 한 번씩 듣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집, 집값, 부동산 이야기들이다.


아파트 주변으로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족히 열 곳은 되는 동네라 잘 들리는 건지, 아니면 머릿속 레이더가 유독 그쪽으로 뻗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보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오는 건 사실이었다.


커피숍에 느긋하게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다가도 집값이나 동네 시세와 같은 대화가 들리면 그 순간 온 신경은 그쪽으로 쏠리고 말았다. 어쩔 수 없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얼마간 대출금을 갚아나갈 사람으로서 이 동네 집값 얘기는 가장 궁금하고 듣고 싶은 주제중 하나이니까.




몇 년 전, 둘째를 낳고 집 근처 조리원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 무렵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았다. 당시 거주하던 지역에서도 집값이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다. 말 그대로 자고 나면 다음날 몇 천씩 올라 있었다. 매일 수직으로 상승하는 집값은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자 축복이였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당시 세입자이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곳의 많고 많은 아파트들 중에서 어디에도 내 집 하나 없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즈음 주변 지인들 몇몇도 집과 관련한 다툼이 잦아지면서 이혼을 하네마네,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내가 크게 속상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둘째 출산에 온 정신이 쏠려 있던 덕분이었다. 방금 태어난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집값이고 뭐고 다른 일들은 저만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문제는 조리원의 다른 산모들이었다. 그들과 안면을 트자마자, 다들 것마냥 자연스레 집값 이야기를 해왔다. 그 시기 스몰토크의 단골 주제가 '치솟는 집값'이기는 했다. 물론 대화 상대자가 누구냐에 따라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지만.


주로 화제를 꺼낸 쪽은 자가를 소유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복권 1등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굴었다. 어떤 여자는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각각 아파트 분양에 당첨돼서 현재 2주택자라고 했다. 두 아파트 벌써 모두 수 억씩 올랐다고 했다. 와...부럽네요. 내 말에 그녀는 행복한 듯 까르르 웃었다. 앞으로 정말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이상, 그녀와 한번 벌어진 자산 규모의 격차는 절대 좁혀지지 않으리라. 해사한 표정의 여자와 마주앉은 내 표정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어둡지 않았을까 싶다.


그 후로도 조리원에서 산후 마사지를 받을 때에도, 식당에서 밥먹을 때에도, 이벤트용으로 제공되는 신생아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릴 때에도...! 만나기만 하면 다들 , 집, 집 이야기였다. 한번은 참다못한 내가 현재 세입자이고 벼락 거지임을 밝혔다. 그러면 그들이 화제를 바꾸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였다.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새콤이 엄마, 지금이 막차 탈 기회예요. 아직 안 늦었으니까 빚을 내서라도 빨리 하나 사요. 나도 대출을 얼마 받아서 샀는데 지금 집값이 얼마냐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얼마 후 우리부부 역시 집을 샀고, 벼락 거지 스트레스를 받던 그후 어떻게 변했냐면... 놀랄 것도 없이 딱 조리원에서 마주쳤던 그녀들처럼 바뀌었다. 일단 집을 사니 머릿속에는 온통 집, 부동산, 재테크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집도 가격이 뛰었는데, 그 차익이 교사로서 성실히 버는 월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컸다. 그로 인해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게 됐더랬다. 안타깝지만 한동안 근로 의욕을 떨어트리는 데도 한 몫 했다.

그즈음 나는 친정 부모님에게도 참지 못하고 집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볼일이 있어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막 서울을 빠져 나오려는데, 한 아파트 근처를 지나자 아빠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아파트 지을 때 나도 거기 있었는데."


알고보니 아빠는 이십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로 아파트 건설 현장일을 했던 적이 있었단다. 그 옛날 강남 건설 현장에서 스무 살의 아빠가 힘들게 시멘트 포대를 날랐을 모습을 떠올렸다. 아빠의 고된 시절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하던 것도 잠시, 문득 머릿속에 아파트 집값이 얼마였더라, 하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지금 부모님이 거주중인 아파트는 20년 전과 비교해서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서울과 멀어질수록 비례해서 집값은 내려만 갔다. 그동안 대도시로 이사를 나간 아빠의 친구들이 집 한 채가 얼마가 올랐네, 몇 억을 벌었네, 쉴 새 없이 자랑을 해오던 시기였다.


"아빠가 저길 샀으면, 지금 얼마를 벌었겠어요."


불쑥 튀어나온 내 말에, 아빠는 혀를 끌끌 찼다. 그런 소리 말라고 지금도 행복하게 잘만 산다고 했다. 평생 선비처럼 살아오신 아빠였다. 그래도 난 끝까지 투덜거렸다. 저길 샀어야지. 아빠, 서울에 집을 샀어야 해요.




한동안 부동산에 미쳐버린 사람처럼 지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똑같이 부동산에 미친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집 이야기는 영 껄끄럽고 불편한 주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때쯤 주변에 수차례 분양을 넣어봤지만 당첨이 되지 않아 의기소침해하던 지인이 있었다. 그녀가 최근에 넣었다는 아파트의 분양 경쟁률이 2대 1도 채 되지 않은 걸 확인한 후, 나는 축하를 해줄 의도로 분양 당첨 됐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다 쉽게 집을 사고 자산을 잘만 불리는데 자기만 이게 뭐냐면서. 집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고 우울하단다.


그날 그녀를 위로해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집과 관련한 이야기를 삼가야겠다고 느낀 순간이. 그 후에는 집 이야기는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고, 혹 얘기가 나와도 듣기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오늘도 이 동네 집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며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 나는 이제 그런 류의 이야기에는 좀 지친 상태가 됐다. 지금 사는 동네에 오기까지도 나름 굉장한 대장정이었고, 이제는 정착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반면 '나는 아직 배고프다'인 남편은 요즘도 여전히 재테크와 부동산 카페에서 관련 지식을 쌓으며 서울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는 집과 이사에 관해서는 그와 나의 의견이 잘 맞았으나,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정착과 안정을 꿈꾸는 나와 서울 입성을 꿈꾸는 그 사이에서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련지.


어제도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다가 집 값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지금이 상급지로 갈아탈 기회 같아."


집을 보러 온 듯한 남녀 한 쌍이 아파트 단지를 서성였다. 젊은 남녀는 몇 달 전 나와 내 남편이 그러했듯, 신중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은 마음에 드는데 매매가 나을지 전세가 나을지 고민이라는 말들도 들려왔다.


이런, 또 다시 그들에게 한껏 집중하고 말았다. 안 듣고는 못배길 것만 같은 집 이야기. 두 귀만은 앞으로도 한동안 쫑긋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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