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호수공원에서
1. 일주일간 내게 길을 물어온 이들이 두 명이나 있었다. 이곳에 오래 산 주민처럼 보이는 건가 싶어 좋았다. 뜨내기처럼 보이는 것보단 낫지 않나. 처음에는 "저도 어제 이사를 와서..."라고 답했는데 너무 과한 정보를 준 것 같아서 두번 째에는 "저도 처음 와봐서..."라고 바꿔 말했다. 좀 나았다.
2. 조금 엉뚱하지만 현재까지는 '수압이 센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3. 두 아이도 새 학교와 어린이집에 잘 적응 중이다. 표정들이 제법 밝다.
4. 반면에 기대했던 백화점이나 호수공원에는 둘다 오늘 처음 가봤는데 사람과 강아지들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역시 나는 시골 사람인가. 세련된 공원을 걸으면서 옛 동네의 소박한 공원이 그리워졌다.
5. 공원에서 본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동성의 연인이 그들을 닮은 개 두마리를 유모차에 태우고 걷는 모습이었다. 연인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스트라이프 패턴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쌍둥이 트위들디와 트위들덤을 연상케 했다. 그들의 강아지들도 미니어처 핀셔로 종이 같았는데, 둘 역시 날씬한 몸에 러플 달린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다. 귀엽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해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확실히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6. 그외에도 인상깊은 장면들이 많았는데 요약하자면 아주 다양한 견종과 인종들을 접했다는 것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무슨 펫 관련 행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호수공원을 걷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아아,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 맞구나.'라는 것이었다.
7. 일단은 천천히 적응하기로 했다. 낯섦에 적응하는 과정이 조금은 피곤하다.
8. 내가 이 동네에 왜 이사를 왔더라. 깨끗하고 번화하고... 그러면서도 조용하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살펴 보았더랬지... 호수 공원... 아이 학교도 가깝고... 욕심껏 신중하게 고른 곳이 아니었더냐.
9. 그런데 왜 이렇게 심란한 것일까.
10. 쓸 말이 더 없다.
참, 생각났다, 다시.
10. 며칠 전 분식집에서 딸과 점심을 먹는데 뒷자리에서 익숙한 고향 사투리가 들렸다. 근처 공사장 인부들이었다. 나잇대는 5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쯤? 친정 아빠와 동년배인 듯했다. 가만 보니 그들은 키오스크 주문을 어려워했다. 한참 화면을 눌러보는 듯 하더니 결국 원래 먹고 싶어하던 음식들 대신에 국수 여섯 그릇으로 통일해서 직원에게 돈을 건넸다.
조용히 국수를 기다리던 일행 중 한 명이 내 딸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딸은 까맣고 낯선 얼굴을 보자마자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대신해서 고개를 조금 숙이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다 먹고 집에 걸어가는 길에 갑자기, 이유모를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듣는 고향 사투리 때문이었나. 친정 아빠 생각이 나서 그랬나. 그들이 키오스크 앞에서 헤맬 때 일어나 도와드릴 걸, 하는 늦은 후회를 했다. 예전 동네였다면 좀 더 쉽게 용기가 났을 일이었다.
아직은 낯선 새 동네에서 글을 쓴다.
오늘의 이사 소감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