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도시에는 어중이떠중이가 산다.

여기 왜 왔냐고요?

by 승연




이곳의 아파트에서는 거의 매일,

이사를 들어오고 나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라 하루에도 여러 팀이 이사를 했다. 나 역시 이곳에 이사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인지 다른 이들은 어느 곳에서 이사를 오고 또 어디로 가는지가 궁금해졌다. 영업용 차량은 번호판에 지역명이 나오기 때문에 이사차량을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돌려 번호판을 유심히 살폈다.


오늘 본 트럭의 번호판에는 광주라 써 있었다. 멀리서 오셨네요. 괜히 속으로 말을 걸어본다. 며칠 전에는 충북과 전북에서 왔고, 또 어제는 이사를 나가는데 트럭 외벽에 [해외이사 전문]이라고 써있었다. 해외라면 어느 나라로 가는 것일까? 나는 고작 차로 두 시간 거리로 집을 옮겼을 뿐인데도 너무 낯설었는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바쁘게 이삿짐을 날라오는 아저씨들 사이로 동네 주민들이 빠르게 교차하여 지나갔다. 엘리베이터 두 대 중 하나를 이사차량이 독점했기 때문인지, 바쁘게 종종걸음을 치는 얼굴마다 약간의 짜증이 묻어났다. 나 역시 겉으로는 무심한 얼굴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속으로는 '반가워요. 이곳에서 우리 함께 잘 적응해봐요.' 라는 오지랖 넓은 말을 이삿짐 사이에 남겨둔 채였다.





일전에 서울 사는 부자인 친척 어른이 나에게 이사를 올 거면 서울로 오지 왜 경기도로 이사하냐고 물었다. 나는 서울로 이사를 갈 경우, 직장까지의 거리가 왕복 3시간인데 길 위에 시간을 흩뿌리긴 싫다고 했고, 특히 서울의 '마음에 드는' 동네에서 살 돈은 없다고 답했다. 그분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래도 나중에 돈이 더 모이면 어중이떠중이가 모이는 동네 말고 서울의 괜찮은 지역에 와서 살기를 권유했다. 남부 지방 작은 산촌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것 치고는 이미 토박이 서울 깍쟁이가 다 된 듯한 말씀이었다.


그러나 어쩌나, 이미 일생의 대부분을 어중이떠중이로 살아온 것을. 서울 인왕산 자락의 어딘가에서 전라남도의 허름한 고시원 방까지, 길든 짧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살아왔다.


이번에 이사온 신도시 여기도 불과 이십 년 전에는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작은 촌이었다고 한다. 처음 지어진 아파트들은 들어올 사람이 적어 미분양 사태가 났고 주로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았단다. 그러던 것이 점차 살기 좋아지면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미분양이었던 그 아파트들은 지금은 최소 -억을 넘겼으니, 부동산 시장은 참 알다가도 모를 요지경 세상 같다.


그러고 보면 나 말고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십몇 년을 넘기지 않았으니 전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겠는가. 넓고 넓은 세상에서 여러 이유로 이 동네에 모여든 어중이떠중이들끼리(비하 아님)다 같이 잘 지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와 남편은 이 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우리는 개미처럼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아꼈다. 사실 알뜰하다고 해야할지 구두쇠나 수전노에 가까웠다고 써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기 좋게 '알뜰하게'로 쓰고 싶다.


나는 택시를 타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횟수를 확 줄였다. 주로 외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버릇도 고쳤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전단지를 보고 메모해 둔 최저가 상품들을 고르는 걸로 습관이 바뀌었다.


남편은 원래부터 짠돌이였으나 이사를 위해 더욱 돈을 아꼈다. 그는 옷값으로 삼만 원이 넘어가면 구입을 심각하게 고민했고 저렴한 SPA 브랜드에서 구입한 가장 기본적인 옷가지들로만 한 철을 버텼다.(우리 남편 같은 사람만 있다면 패션업계는 금방 망하고 말겠지.)


우리는 지독한 꼽꼽쟁이들이라는 시부모님의 놀림 반 걱정 반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다가 드디어 마흔이 넘어서야 은행의 도움으로 이곳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사하던 날은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거실 밖 낯선 풍경만 봐도 배가 부르더랬다. 우리 부부는 그날 짜장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우리의 이사를 자축했다.





얼마 전에는 아들이 다닐 학원을 알아보다가, 한 학원의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인 그녀와는 처음부터 이야기가 제법 잘 통했다. 그러나 그녀가 던진 "여긴 왜 왔어요?" 라는 질문에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아주 간단한 질문이었는데 말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직장 때문에 왔다고 답했다. 그녀는 내가 일명 공무원의 도시라 불리는 지역에서 이사를 왔다고 하니 호기심이 드는 모양이었다. 거기도 좋지 않냐고 물어왔다. 나만큼이나 이 동네 사람들에 대해 궁금증이 많은 편이었다.


그녀는 인천 송도에서 살다가 왔다고 했다. 그녀 말로는 여기 먼저 살던 사람들은 돈을 더 모아 근처의 또다른 신도시나 강남으로 간다고 했다. 주로 자녀의 학군에 불만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녀도 왠지 송도로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아니면 그 역시 강남을 꿈꾸는 걸지도. 그녀의 눈에 이제 막 이사를 온 나는 어떻게 보일까. 어쩌면 이곳의 자리를 새롭게 메꿔주는 풋내기?


그러나 그녀는 잘 모르고 있었다, 나와 남편이 콧대높은 서울 사람들은 쳐주지도 않는 이 동네로 오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이곳에 입성하여 얼마나 감격해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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