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집은 숲에 둘러쌓인 아파트였다. 지은지 몇 년 안된 아파트였는데 내 직장과도 거리가 멀지 않아 좋았다. 남편이 급히 전셋집을 구해서 이삿짐을 옮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출산했다. 가족은 셋에서 넷이 되었고 둘째는 이 네 번째 집에서 생을 시작했다.
이 곳은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좋은 집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한창 개발중인 신도시의 역동성과 부산스러움이 잘 느껴졌지만 일단 집으로 돌아오면 한적한 숲속 펜션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창문 밖으로는 사시사철 옷을 갈아입는 나지막한 산이 보이고 여름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그때쯤 나는 매일 새벽마다 아파트 주변을 걸었다. 걷다보면 숲에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닿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공기가 상쾌했다.
아들은 이곳에서 숲 유치원을 다니며 잠자리와 개구리를 잡는 방법을 터득했다. 내가 아기를 돌보는 동안 남편이 아들을 데리고 뒷산으로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등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은 가끔 내게 예쁜 낙엽이나 돌멩이, 사마귀와 여치 같은 것들을 선물이라고 내밀었다.사마귀를 본 내가 놀라비명을 지르면 아들이 웃으면서 다시 놓아 주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내 안에서 죽어가던 무언가가 서서히 다시 피어났다. 치유의 집에서 나는 많이 회복되었다.
지금의 다섯 번째 집에서는안정된 행복을 느꼈다.
신축 아파트이자 우리의 명의로 된 첫집이기도 했다. 분양을 받은 후 집값이 약간 올라 한때는 부부가 쌍으로 들뜨기도 했다. 엄청난 자산 증식의 방법을 알아낸 것처럼 재수없게 굴었다. 들뜬 표정을 자제하려 했지만 이미 가족들이나 친한 지인들에게는 못 볼 꼴을 보였다. 다섯 번째의 집에서 나는 속물이 될 뻔했다.(분위기가 가라앉은 지금은 다시 겸손해졌다.)
한편 이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선했다. 공무원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새로 사귄 동네 이웃들도 다들 공무원 아니면 그와 비슷한 직업들이 많았다. 그곳에서는 대단한 부자나 대단한 빈자 둘 다 보기 힘들었다. 다들 비슷하게 살았고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편했다. 이 곳을 떠날 생각을 하면 정든 사람들 때문에 아쉽고 슬펐다.
그러나 어느 새 시간은 나를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보내려 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로 가게 될 집은 남편과 나의 직장 가운데 쯤 위치한 경기도의 한 아파트이다. 근처에 도서관과 공원도 많고 대형 쇼핑몰도 있는 쾌적한 신도시다. 이번에는 정말 오래 머무르고 싶어서 많이 알아보고 정했다. 미래의 경기도민으로서 제 부모와 함께 꼼꼼하게 동네를 둘러 본 아들은 다행히도 그 동네의 분위기를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엄마, 여기에 토스트 가게도 있네. 저기가 내가 다닐 학교야?" 아홉 살의 나이에 이미 세 번이나 다니던 기관을 옮긴 아들은 이제는 더 이상 전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빨리 이사가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단다. 그래, 엄마도 빨리 이사가고 싶다. 또다시 낯선 지역 낯선 동네에서 적응하고 사느라 힘은 들겠지만 이미 다섯 번의 이사를 겪어냈으니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나를 이웃으로 만나게 된다면 부디 반갑게 맞이해주기를 바란다. 나 역시 기꺼이 당신의 다정한 이웃이 되겠다. 여섯 번째의 집에서는 마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가장 따뜻하고 밝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