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늦깎이 엄마의 시작

병원 일은 답이 보였는데, 육아는 정답이 없더라

by 온 이든

“결혼은 안 한 거야, 못 한 거야?”

30대 중반이 되면서, 명절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마다 지겹도록 묻던 질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충 웃으며 얼버무렸다.


사실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나의 신앙관과 가치관에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한 것도 있었고, 녹록지 않은 경제적 현실 때문이기도 했으며, 그저 내 삶에 충실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 결혼이 늦어진 이유는 ‘안 했다’와 ‘못 했다’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렇게 35세가 되던 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2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고 감사하게도 결혼 일 년 만에 아이가 찾아왔다. 38세, 서른아홉이 되기 직전의 출산이었다.


당시 나는 유방외과 수술과 항암 치료를 담당하는 PA 간호사였다.
일은 익숙했고, 위기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수술 전후 케어, 항암 스케줄 조정, 각종 동의서 작성, 환자 교육,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병원에서 ‘안 되는 것’을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케모포트 니들링이 어려울 때면, 병동에서는 자연스럽게 나를 불렀다.


직장에서 나는 해결사였다.


그래서 육아도 별문제 없이 해낼 거라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엄마’라는 자리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초기화시켰다.
혈관을 단번에 찾던 손이 기저귀 테이프 하나 붙이는 데도 버벅거렸고, 항암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를 돌볼 때는 담담했던 내가, 이유 없이 우는 내 아이 앞에서는 같이 울고 싶어졌다.


병원에서는 선생님이었지만, 집에서는 젖병 소독 타이밍 하나 틀리는 최고령 신입이었다.


그렇게 좌충우돌 키운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나는 이제 ‘학부모’라는, 병원 일보다 더 어려운 타이틀을 달았다.


낮에는 유방암 환자들을 케어하는 PA 간호사이고, 밤에는 알림장과 숙제 앞에서 한숨을 쉬는 늦깎이 엄마다.


이 기록은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아두기 위한 일이다.
너무 정신없어서 흘려보냈던 순간들을,
병원에서는 무적이었지만 육아에서는 서툴기만 했던 나를,
있는 그대로 써보려 한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들에게 이 기록을 남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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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든의 덧붙임

- PA(Physician Assistant)

한국 명칭: 진료지원 간호사, 전담 간호사, 코디네이터 등 (병원마다 상이)

의미: 의사의 지도/감독 하에 진료, 검사, 수술 보조, 처방(입력 대행), 의무기록 작성 등 의사 업무의 일부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간호사입니다.

배경: 전공의(레지던트/인턴) 부족 현상으로 인해 생겨난 직군으로, 의료 공백을 메우는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최근 흐름: 과거에는 법적으로 모호한 영역이었으나, 최근 ‘간호법 제정안’ 및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 등을 통해 ‘진료지원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공식 제도화되는 추세입니다.


- 케모포트 (chemoport):

항암제를 안전하게 투여하기 위해 가슴 피부 아래 심어두는 전용 주사장치입니다.

팔 혈관을 반복 자극하지 않아 혈관 손상을 줄이고, 시술 후엔 일상생활·샤워 모두 가능합니다.


- 케모포트 니들링(Port Needling):

케모포트에 전용 바늘(Huber needle)을 꽂아 항암제를 연결하는 과정입니다.

감염 예방을 위해 소독이 가장 중요하고, ‘톡’ 눌리는 느낌과 함께 바늘이 수직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