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이게 나의 방식이야.
첫째 아이가 돌을 갓 지났을 무렵, 빈혈이 심해 병원 진료와 피검사가 일상이었다. 울고불고 자지러지는 아이를 달래는 다른 엄마들 사이에서, 그 당시 15년 차 간호사였던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대했다.
“자, 잘 들어. 바늘은 찌를 때만 아픈 거야. 그 후에는 안 아파.”
“아플 때만 울어도 돼. 안 아플 땐 굳이 울지 않아도 되는 거야.”
다정하게 등을 토닥이며 “무서웠지?”라고 묻는 대신, 나는 내가 아는 ‘의학적 사실’을 아이의 언어로 번역해 주었다. 이게 위로인지 설명인지 그땐 나도 잘 몰랐다. 그저 바늘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이 ‘T' 엄마인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진심이었다.
그 후로 둘째도 마찬가지였고,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그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독감이든 폐렴이든 해열제 등 수액을 맞기 위해 바늘이 들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만, 우리 아이들은 “엥-” 하고 한 번 짧고 굵게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바늘이 자리를 잡으면 이내 눈물을 뚝 그친다. 울음을 참는 아이를 보며 대견함보다 ‘벌써 나처럼 건조해진 건가’ 하는 미안함이 앞서기도 한다. 엄마보다 낫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본래 'F' 성향인 아이들이 나 때문에 벌써 ‘T’가 되어가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첫째가 계단에서 넘어져 이마가 찢어진 날, 얼굴에 피가 흐르는 걸 보면서도 내 머릿속은 분주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혈됐고, 24시간 안에 봉합하면 흉터 예후에는 큰 차이가 없다.’
밤은 깊었고 아이는 이미 사고의 충격으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서 아이를 공포로 몰아넣느니 차라리 한잠 푹 재우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 섰다.
나는 담담하게 아이를 재웠고, 다음 날 아침 성형외과 문이 열리자마자 1등으로 입장했다. 남들은 맛집 줄을 선다는데, 나는 아들 이마 봉합을 위해 '성형외과 오픈런’을 한 것이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겠지만, 사실 나도 속으로는 숨을 참고 있었다. 아이 얼굴에 생길 흉터 때문에 너무너무 속상하기도 했다.
다만 내가 흔들리면 아이는 더 당황하고 무서워할 테니까, 나는 그저 미리 세워둔 ‘계획’ 뒤로 숨어 담담한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둘째는 유독 코피가 자주 난다. 어느 날에는 무섭게도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주변이 조금씩 분주해졌고,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아이를 안고 콧방울을 눌렀다. 그리고 시간을 보기 시작했다.
‘딱 20분만 버티자.’
그 안에 멈추지 않으면 바로 응급실에 가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를 달래며 괜찮다고 말해주면서도, 내 눈은 시계 초침을 쫓으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20분이 되었을 때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보니 비로소 코피가 멈춰 있었고, 그제야 나도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간호사 엄마’였지만, 속으로는 혹시 아이에게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스치며 걱정과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그 숨 막히는 20분의 카운트다운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사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대단한 연봉을 받거나, 모두의 선망을 받는 화려한 자리는 아니다. 그저 묵묵히 아픈 분들의 곁을 지키는, 때로는 고단하고 투박한 노동의 현장일 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들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엄마가 간호사라는 사실을 세상에서 가장 큰 훈장처럼 달고 다닌다.
“선생님, 우리 엄마 간호사예요. OOO 병원에 다녀요!”
“얘들아, 우리 엄마 간호사야. 멋지지? OOO 병원에 다녀.”
아이들이 친구나 선생님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외칠 때면, 나는 가끔 뒷걸음질을 치고 싶을 만큼 민망해진다. ‘아니, 병원 이름까지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는데...’ 싶은 마음에 멋쩍은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단순히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과 공포를 설명해 주고 다스려 주는 든든한 가이드였나 보다.
“아플 때만 울어도 돼”라는 나의 건조한 위로가,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어”라는 가장 강력한 확신으로 들렸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아이들에게 감정보다 정보를 먼저 건네는 엄마였다. 괜찮다고 다독이기보다 왜 괜찮은지를 설명하려 했고, 무조건 울지 말라고 하기보다 언제 울어도 되는지를 알려주려 애썼다.
원래는 'F' 성향인 우리 아이들은, 이런 엄마 덕분에(?)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울고 멈추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가끔 그런 아이들을 보며 ‘엄마가 너무 설명충(?)이라 미안해’라고 속으로 사과하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21년 동안 병원에서 배운 게 ‘감정보다 앞서는 대책’인 것을. 투박하고 건조한 나의 설명들이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조금 덜 무서워하게 만드는 작은 방패가 되어주면 좋겠다.
========================
- 상처 봉합의 ‘골든타임’ 24시간:
피부가 찢어지는 열상을 입었을 때, 지혈만 잘 된다면 24시간 이내에 봉합해도 상처 회복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밤늦게 응급실에서 고생하기보다, 지혈 후 아이를 안심시키고 다음 날 숙련된 전문의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지혈이 안 되거나 상처가 깊다면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 아이 코피, ‘20분’의 인내심:
코피가 날 때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콧방울을 꾹 눌러주세요. 이때 피가 멈췄나 궁금해서 자꾸 손을 떼면 안 됩니다. 딱 20분만 인내심을 갖고 눌러보세요. 20분이 지나도 지혈되지 않는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응급실을 방문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 유치원 선생님과의 통화: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오늘 OO이가 장난감에 손가락 피부가 끼었는데, 다행히 피는 안 나고 벗겨지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보통 다른 아이들은 다칠 뻔한 상황만 돼도 울고 아프다고 하거든요. OO이는 울지를 않아서 '아프면 울어도 돼'라고 했더니... '안 아파요. 안 아파서 안 울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씩씩하고 투정이나 어리광이 없어요."
전화를 끊고 조금은 웃음이 나고, 조금은 마음이 쓰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