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병동 신규에서 유방암 PA까지
어느덧 만 20년 4개월, 연차로는 21년 차.
그동안 나는 병원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환자의 아픔과 회복,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살아왔다.
나의 간호 인생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암 병동에서 시작되었다.
신규 간호사로서 보낸 5년은 지금 돌이켜도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시간이다.
그곳은 매일처럼 삶과 죽음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첫 사망 확인을 했던 날의 떨림, 보호자의 손을 붙잡고 울던 밤,
그리고 너무 아파하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웃어주던 환자들.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환자를 살리는 기술뿐 아니라,
떠나보내는 법, 견디는 법,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법을.
5년 남짓 일하던 중, 나는 에티오피아 KOICA 파견을 꿈꾸며 사직서를 냈다.
합숙훈련까지 마쳤지만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그 길을 가지 못했다.
그 후 1년간은 개인의원에서 비교적 가벼운 업무를 하며 숨을 돌렸고,
뜻밖의 발목 수술까지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을 떠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시기를 '경력의 공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시간은 공백이 아니었다.
나는 간호대학 조교로 2년을 보내며,
행정 업무와 함께 예비 간호사들의 기본간호학 실습을 지도했다.
그리고 기술보다 먼저 갖춰야 할, 간호사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르쳤다.
방황하던 학생을 붙잡아 밥을 사 먹이며 방향을 잡아주기도 했고,
진심으로 응원했던 아이들이
“선생님 때문에 간호사가 되기로 했어요”라고 말해주던 순간들.
그 시간은 환자 대신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법을 배운, 아주 소중한 내 삶의 한 챕터였다.
건강이 회복되자 나는 가장 치열한 곳으로 돌아갔다.
대학병원 일반외과 PA(Physician Assistant).
이 3년은 내 간호 인생에서 가장 바빴고, 가장 정신없었고, 가장 많이 배우고, 가장 많이 성장한 시간이었다.
병동–응급실–수술실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고, 당직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응급 호출이 울리면 잠에서 튀어나왔고,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쉴 새 없이 환자를 보던 날도 많았다.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재미있었다.
교과서의 지식이 내 손끝에서 현실이 되는 경험.
병실, 응급실, 수술실에서 배우던 술기와 판단력이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자산이다.
이후 나는 유방암 전문 PA로 영역을 좁혀, 새로운 시작을 했다. 그리고 유방암 PA로 근무하던 중, 출산과 육아로 인해 약 2년 4개월간의 휴직 기간을 가졌다.
복직 후, 원 부서로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 수술실에서 1년, 원내 보건관리자로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곳에서도 각 분야에 필요한 공부를 하고 전문성을 흡수했고, 간호사로서의 시야를 입체적으로 넓혔다.
그리고 현재 나는 유방암 병원에서 PA로 5년 넘게 근무 중이다.
이제는 환자의 걸음걸이만 봐도 컨디션이 보이고,
검사 결과의 변화를 보며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가 보인다.
“경험이 쌓이면 보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지금의 나는 몸으로 안다.
과거의 나는 열정과 체력으로 버텼고, 지금의 나는 경험과 통찰로 환자를 지킨다.
화려한 의학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삶은 아니지만,
소독약 냄새 배어 있는 진짜 병원의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 용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 내게 큰 의미이고, 글을 쓰는 기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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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부 무상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 의료인들은 주로 ‘해외 봉사단’으로 파견되어 의료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활동한다.
- PA (Physician Assistant):
의사의 지도 아래 검사, 시술 보조, 의무기록 등을 수행하는 진료지원 간호사. 국내에서는 전공의 인력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며 진료 흐름을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