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야구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서툰 일탈이 불러온, 뜻밖의 과잉(?) 보호

by 온 이든

1990년대 중반, 대구의 야구 구장은 지금의 화려한 축제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노후한 시설과 성적 부진 탓에 시민들은 홈 구단을 외면했고 관중석은 늘 한산했다. 그 자리를 채우는 사람은 대개 술잔을 기울이는 아저씨들이었다.


그 삭막한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한 여고생이 있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었기에 나는 늘 혼자 야구장을 찾았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색지를 오려 만든 응원 플래카드를 들고 혼자 열심히 응원하고 돌아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즐거운 방식이었다. 형형색색의 플래카드 문구는 늘 '최강삼성', '라이언킹 박충식'이었고 그 덕에 나는 전광판의 단골손님이 되기도 했다.


어느 평일, 사건은 시작되었다. 사실 '사건'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등굣길의 햇살이 너무 눈부셨고, 야구가 너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무지했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무단결석이 학생부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조차 몰랐던 무지와 순진 사이 어디쯤의 나이.


하필 평일 낮 경기 시즌 때라, 나는 아주 잠깐의 고민을 했다. 그리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교복을 입은 채 책가방을 메고 학교가 아닌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혼직관'을 즐겼다. 하지만 일탈의 하이라이트는 경기 후에 기다리고 있었다. 선수들이 식사한다는 근처 백반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나는 백인천감독님도 만나고 다른 선수들도 만났다. 그리고 마침내, 동경하던 투수 박충식 선수를 만났다.


떨리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사인을 받으며 설레는 마음도 잠시, 그가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너 학교 안 갔어? 교복 입고 여기 오면 안 되지. 다음에는 학교 빠지고 오지 마라."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 팬 서비스를 해주는 스타의 친절함보다는, 길 잃은 학생을 바른길로 돌려놓으려는 어른의 단호함에 가까웠다. 나를 꾸짖는 그 묵직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 나 지금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거구나.'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며, 다시는 무단결석을 하지 않겠노라 그와 약속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부모님 생각에 비로소 뒤늦은 걱정이 몰려왔다. 매 맞을 각오까지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본 부모님의 눈빛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것은 걱정이었고, 안도였고, 어딘가 모르게 연민이 섞인 눈빛이었다.


"딸, 니 무슨 일 있나? 힘든 일 있으면 말해봐라"

"아니... 내 아무 일 없다. 미안... 잘못했다."

"그래. 별일 없으면 됐다. 그래도 힘든 일 있으면 꼭 말해야 된데이. 알겠제?"


평소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집안 분위기가 갑자기 경건해졌다. 부모님은 내가 성적이나 교우 관계 때문에 인생의 쓴맛을 보고, 탈선하기 일보 직전인 '위기의 청소년'이라 오해하신 게 분명했다.


나는 그냥 야구가 보고 싶었을 뿐인데, 졸지에 마음의 병을 앓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다음 날 학교에서도 예상 밖의 일이 이어졌다. 담임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지만, 무단결석을 '사고결'이 아닌 '병결'로 처리해 주셨다. "이번 한 번뿐이다"라는 다정한 타이름과 함께.


선생님은 내가 걱정되셨는지 2학년 때도 내 담임을 자처하셨고, 3학년이 되어서도 다음 선생님께 "이 아이는 특별히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까지 남기셨다. 방송반 담당 선생님도, 선배들도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는 그저 야구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눈에 나는 '보호와 사랑이 절실한 위태로운 영혼'이었고, 그 다정한 오해 덕분에 나는 과분할 정도의 배려를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야 인사를 드린다. 삶의 작은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신 좋은 어른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그 사랑과 관심 덕에,

나는 결국,

삐뚤어질 기회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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